미국에서 필자의 두 번 째 직장은 버지니아주 노폭주립대학(NSC)이었다. 1969년부터 가르쳤던 하와이대학에서 신문학 주임교수가 박사학위도 없는 사람이라서 박사학위 소지자가 종신직에 오르면 자신의 위치가 위태로울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여 방해했던 탓인지 새 직장을 찾던 중 노폭대학의 신문과 과장이 부교수로 오라는 전화를 해서 몹시 기뻤던 생각이 아직도 난다.
집이 팔리지 않아 가족은 하와이에 두고 노폭에 도착한 것이 1974년 8월이었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의 수도였던 리치몬드시가 주청 소재지라는 사실이 암시해주는 것처럼 인종차별과 편견을 잠간씩 살았던 캘리포니아, 위스컨신 그리고 하와이 보다 더 절실하게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을 했다. 우선 노폭 규모의 도시에 대학이 둘이라는 게 놀라웠다. 하나는 올드 도미니언 유니버시티(ODU)라고 백인들이 90%였고 또 하나가 당시에는 종합대학교가 아닌 칼리지란 명칭을 가진 NSC로 흑인들이 역시 90% 정도였다. 시설만 평등하면 인종을 분리시켜도 연방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연방대법원의 플레시 대 퍼그슨 판례(1896년)가 공립교육에 있어서 인종을 분리시키는 것만으로도 불평등을 초래하니까 위헌이라는 역사적인 대법원 만장일치의 판례로 대치되는 브라운 대 (토피카시) 교육위원회 사건 결론이 꼭 60년전인 1954년에 이루어졌었다. 그렇다고 공립학교들의 인종 차별과 분리가 금방 이뤄진 것은 물론 아니다. 버지니아의 여러 군들은 백인 일색의 학교에 흑인 학생들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대규모적인 저항운동의 일환으로 공립학교들을 폐쇄하는 극단조처까지 취했었다. NSC의 역사를 보더라도 ODU와는 달리 열악한 시설에서 흑인 아동들을 가르칠 흑인 선생들을 배출하고자 출발했기 때문에 위치부터 공장 지대 부근의 철로에 면해 있었다. 당시의 학장은 미시간 대학 출신의 박사였지만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내내 학교 구내 식당에서 웨이터 노릇을 했었다고 회고하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대다수가 흑인들이었던 NSC의 흑인 교수들 대다수가 몇 안되는 외국 교수들에게 편견없이 호의와 친절을 보였던 것은 자신들이 당해왔던 뼈저린 차별대우 때문에 생긴 동병상련(同病常鱗)적 인정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백인 아이들마저 어른 흑인들은 ‘얘’ ‘쟤’(boy)라고 부르던 흑백차별 그리고 열악한 시설과 냉대를 극복하면서 석박사를 획득한 그분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존슨 정부의 민권법 채택 등 획기적 변화와 더불어 소수민족들에게도 미국교육제도의 균등한 참여가 가능해졌다. 이민자들이 흑인들과 양식 있는 백인들의 민권운동의 공헌을 기억해야 될 이유다.
그러나 교육위원회 등 정부기관이 공교육에 있어서 인종 차별을 할 수 없다는 브라운 판례와 후속 판례들이 많은 변화를 가져온 동시에 근본적인 사회 변혁에 있어서는 아직도 멀었다는 결론도 가능하다는데에서 미국의 모순을 볼 수 있다.
콜버트 킹이란 워싱턴 포스트의 흑인 칼럼니스트의 최근 글이 그 점을 잘 예시한다. 킹은 역사적 브라운 판례가 발표된 바로 그 해에 흑인 학생들이 100%였던 DC의 던바 고등학교에 진학했단다. 오늘날에는 던바 학생의 97%가 흑인이고 백인은 0%란다. 그가 다녔던 중학교의 현황은 조금 더 나은 편으로 73%가 흑인 내지 히스패닉이고 백인 학생도 16%라는 것이다.
DC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 전체가 흡사하단다. 2012년도의 UCLA 민권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80%의 라틴계 학생들과 74%의 흑인학생들이 대다수 학생들이(50%에서 100%) 비백인학교에 다닌다는 것이다. 오늘날 공립고등학교의 보통 흑인학생들은 1970년대보다도 백인학생들과의 접촉이 덜하다는 결론이다. 킹은 이렇게 표현한다. “그러나 브라운 판례는 (사람들의) 마음과 가슴을 변화시키지 않았고 변화시킬 수도 없었다. 우리가 어디서 살든지, 누구를 이웃으로 삼을런지, 어떤 동네에 정착할런지는 브라운 판례의 범위 밖으로 남아있다. 학교 통합의 결정들은 학교를 목표로 한 것이지 사회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다.”
워싱턴 DC 부근으로 이사오는 한국인 부모들이 DC나 프린스 조지스 군을 피하고 몽고메리나 버지니아 페어팩스 학군을 선호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맹모삼천지교라고 좋은 학군을 찾아가야 자녀들이 공부를 잘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상식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학군이 좋은, 따라서 집값이 비싼 동네에 이사갈 수 없는 많은 흑인들 가정 그것도 홀어머니 집은 어떤가. 빈곤과 사회 문제의 대물림-법적인(de jure) 분리는 없어도 사실상(de facto) 분리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 앞에서는 미국도 속수무책인가?
<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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