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키가 작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그랬다. 한국에서 학교에 다녔을 때는 교실에서 항상 앞 쪽에 앉았다. 교육위원으로 활동하며 단체 사진을 찍을 경우 앞에 서거나 발뒤축을 올리지 않으면 카메라에 안 잡힌다. 키 큰 여성과 포옹이나 가벼운 뺨키스로 인사 해야 할 때 어색하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는 내가 당신을 꼭 빼 닮아서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웃으시며 머리도 당신을 닮았기에 좋은 것이라고 덧붙이곤 하셨다.
그런데 최근 처음으로 내 키가 크다는 말을 들었다. 내 귀를 의심했다. 베트남 커뮤니티 장학금 수여 행사에 참석했을 때였다. 나는 두 명의 초청 연설자 중 하나였다. 10분 정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격려인사를 할 기회가 주어졌다. 사진을 몇 장 보여주기로 했다. 나는 연단을 사용하지 않고 반대편에 위치한 사진이 비쳐지는 자막 앞에 서서 했다. 그 후 학생들에게 장학금 수여가 있은 다음 두번째 연설자 차례였다. 이 분은 당연히 연단에서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첫 마디가 내 이름을 거명하며 나는 키가 크지만 당신은 작기에 그냥 연단에서 인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정말 이 분은 나보다도 작았다.
그 행사 이후 그 분의 집으로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다. 행사 당일 그 분의 연설이 너무 좋아 그렇지 않아도 다시 한 번 만나 보고 싶었는데 잘 되었다 싶어 서슴치 않고 초대에 응했다. 이 분은 현재 워싱톤 지역의 한 유수한 대학교에서 단과대학 학장으로 계시다. 그 대학교에는 12명의 학장들이 있는데 자신이 유일한 소수민족 출신이라고 했다. 보통 학장들이 몇 년 하다 그만 두는데에 반해 당신은 2001년부터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으니 장기집권(?)하고 있는 셈이란다. 다음에 총장 하셔야죠 했더니만 손사래를 쳤다. 그 보다는 기회가 주어지면 교무처장(provost)은 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이 분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1972년에 독일로 유학을 가셨단다. 조국인 베트남에서는 프랑스계 학교를 다녔지만 공학을 공부하고 싶어 독일행을 택했다. 유학 전에는 다낭에서 살았는데 사업을 성공적으로 하고 계시는 부친 덕에 유학생활 처음에는 경제적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가 1975년 베트남 패망 시 모든 가족들이 빈손으로 베트남을 떠났다고 했다.
사이공 함락 몇 주 전이었는데 당시 급히 떠나기도 했지만 사실 그 보다도 미국정부가 한 달 정도만 피해 있으면 될 것이라고 해서 그대로 믿고 아무 것도 챙기질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베트남이 공산화되어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더 이상 부모님께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되자 나머지 유학 생활의 모든 비용을 스스로 벌어 해결했어야 했다. 식당은 물론 몇몇 친구와 밴드를 구성해 디스코텍에서 음악 담당 일을 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1978년에 미국으로 건너와 학업을 계속했다. 독일에서 미리 해 둔 공부가 많이 도움되어 석사는 6개월만에 그리고 박사는 2년 반 만에 끝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현재 몸 담고 있는 대학에서 1982년 이후 계속 교수로 가르치다가 2001년에 학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전 부터 공산치하에 있는 조국을 위해 인재를 키워 내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당신의 학교와 베트남의 대학이 공동으로 2+2 프로그램을 개발해 베트남 대학서 2년 공부 후 당신의 대학에서 2년을 마치면 이 곳 대학에서 졸업장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곳에 오는 학생들에게 학비의 절반을 장학금으로 준다고 했다. 대신 최고 수준의 학생들이 오기에 이 곳 학생들에게 귀감과 자극이 되고 있다고 했다. 빨리 공부를 끝내 학비와 생활비를 줄이려고 26학점까지 수강하면서도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는 베트남 학생들을 보는 미국 학생들이 도전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란다. 이런 베트남 학생들이 이 곳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사고와 문제 접근 방식을 터득한 후 고국에 돌아가 낙후되어 있는 고국의 산업, 경제, 사회 구조를 개선하는데 일익을 담당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념문제와 상관 없이 조국을 아끼는 마음을 엿 볼 수 있었다.
24세의 나이에 미국에 와 많은 것을 해 낸 작은 거인, 본받을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게 해 준 분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