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국에서 중학교에 다니던 때였다. 1971년 아니면 1972년이었을 것이다. 여름 장마철에 난생 처음 수재민이 되었다.
계속된 비로 내가 살던 곳의 하천이 범람 위기에 처했다. 정부에서 제방의 한 쪽을 뚫을 수 밖에 없게 되자 결국 경제적 손실이 더 적은 지역이 희생양이 되었다. 그래서 더 가난한 우리 동네 쪽은 물바다가 되었다.
집에 허리까지 물이 차 오르기 전 일부 옷가지를 급히 챙겨 임시 피난처로 옮겼다. 물이 어느 정도 빠지자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다락방이 임시거처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다락방 안에서도 라디오로 고교 야구경기 중계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고교야구의 인기는 요즘의 프로야구 인기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정말 대단했다. 대통령배, 청룡기, 황금사자기, 그리고 봉황기 대회는 전 국민의 주목을 끌었다.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를 비롯해, 광주제일고, 부산고, 경북고, 경남고, 대구상고, 선린상고, 배명고, 중앙고, 동산고 등이 당시에 두각을 나타내던 학교들이었다. 선수로는 남우식, 장효조, 김봉연, 김일권, 김우근, 김재박 등이 생각난다.
70년대의 한국 고교야구에 버금가는 만큼 미국에서 인기 있는 것이 NCAA 대학농구 토너먼트이다. 3월의 광란(March Madness)이라고 불리는 이 토너먼트가 이번 주에 시작했다. 한국 고교야구 시합들이 해당 학교의 재학생이나 졸업생들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흥분을 자아냈던 것과 같이 3월의 광란 게임들도 그러하다.
4월 첫 주까지 이어지는데 각 대학 소속 리그의 우승팀들을 포함해 총 68개의 팀에게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 우선 64개의 팀을 16팀씩 4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각 그룹마다 1번부터 16번까지 시드 배정을 한다. 그리고 나머지 4팀은 추가 시드 배정을 받아 같은 시드에 배정된 8팀이 이번 주 화요일과 수요일에 먼저 첫 번째 경기를 마쳤다. 이번 주말 경기들을 마치면 16팀만 남는다.
토너먼트 기간 중 미국 직장동료들 사이에 가장 중요한 화제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 토너먼트라고 한다.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우승팀을 점치는 내기를 하기도 한다. 시드 배정을 보아 어느 팀이 객관적으로 우세한 지 가늠할 수 있지만 단판 승부의 토너먼트 속성 상 어느 팀이 이길지는 속단할 수 없다.
자신에게 직접 관련이 있거나 지역적 연고가 있는 팀을 응원하면서도 실제로 이길 팀을 점칠 때는 객관적으로 전력이 우세한 팀을 뽑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계속 승리를 거두고 올라가는 과정 중 버거운 상대가 될 수 있는 팀들이 도중에 탈락하기를 기원하기도 한다. 무조건 약체 팀을 응원하기도 한다. 부부나 부모와 자식 그리고 형제 사이에 응원하는 팀이 다르기도 하다.
매년 3월의 광란을 거치면서 느끼는 것은 이 것 만큼 평소에 전혀 상관 없거나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공통화제가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전날의 게임 내용을 갖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정책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정치인들도 농구 경기로 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지 않은 한인 동포 1세들에게는 큰 관심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평소 대화하기 힘든 자녀나 손주들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재로 이 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 같이 응원할 팀을 만들 수도 있고 일부러 서로 반대편에 서서 응원 경쟁을 벌일 수도 있다. 잘 모르는 부분은 자녀나 손주들로부터 배운다는 자세로 물어 보면 기꺼이 가르쳐 줄 것이다.
오늘 저녁의 게임들로부터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다. 이 지역 대학들 중에서는 아메리칸, 조지 워싱턴, 버지니아 커먼웰스, 마운트 세인트 메리 그리고 버지니아(UVA) 대학이 올해의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아쉽게도 마운트 세인트 메리와 아메리칸 대학은 첫 게임에서 탈락했으나 버지니아 대학은 1번 시드를 배정 받았다.
나도 동료 교육위원들과 작년에 이어 올해도 게임 결과를 예측하는 시합에 참여한다. 교육정책이나 현안들로 종종 대립하는 것을 다 뒤로 하고 같이 웃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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