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의 여왕 김연아 선수의 아버지는 나의 중학교 동기동창이다. 며칠 전 이번 소치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시합이 다 끝난 후 그가 딸에게 보냈다는 편지를 읽어 보았다. 아버지의 애틋한 부정이 담긴 글이 나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흔들어 놓았다. 일부를 소개한다.
오늘 새벽 집에서 TV로 너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아빠는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 지난 17년간 늘 그랬던 것처럼 너의 마지막 경기를 지켜보는 것이 부모로서는 고통스러운 일이었어… 아빠는 너에게 금메달 따오라고 하지 않았어. 가서 최선을 다 하라고 했을 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빠는 내심 금메달도 기대하고 있었어…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고 너의 순서 앞에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가 받은 점수를 확인하고 나니, 이 점수를 뒤집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우리 연아가 마지막 순서인데 얼마나 떨고 있을까. 우리 연아가 실수하면 어떡하나. 너의 순서를 기다리면서 아빠는 입술이 바짝 마르고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
지난 주 며칠 간 사무실 식구들과 업무시간 중 짬짬이 김연아 선수의 피겨 스케이트와 그 외의 한국 선수들이 출전한 경기들의 실황중계를 보느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한국 선수들의 성적에 따라 환희와 탄식을 번갈아 했다. 특히 김연아 선수의 프리스케이팅이 끝난 후 잘했다고 금메달을 확신하며 불끈 쥐었던 기쁨의 주먹이 점수 발표 후 심판들을 상대로 허공을 나르는 분노의 주먹으로 변하기도 했다.
내가 김연아 선수를 먼발치서나마 처음 본 것은 2008년 7월이었다. 중학교 동창 친구 몇 명이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만나 당시 그 곳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 17세 김연아 선수의 훈련장을 찾아갔다. 김연아 선수와 그리고 같이 훈련하던 ‘리틀 김연아’라고 불리던 중학생 윤예지 양의 연습을 방해 할 수 없었다. 대신 두 선수의 어머니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윤예지 양의 어머니는 나의 중학교 후배이다. 그 때의 사진은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동창의 딸이라서 그런지 그 후에도 김연아 선수의 행적에 남다른 관심이 갔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최고의 성적으로 금메달을 땄을 때는 마치 우리 집 애 일처럼 기뻤고, 부상을 입거나 부진할 때는 괜히 마음이 쓰였다.
위에 소개한 편지 내용처럼 아버지로서의 안타까움을 전해들을 때에는 가슴이 아렸다. 이제 현역 선수로는 은퇴해 먹고 싶은 것도 맘대로 먹고 더 이상 아버지가 가슴 졸여야 할 시합 참여는 없을텐데 그 동안 정말 수고 많았고 잘 했다는 감사와 축하의 인사를 김 선수와 그 부모님에게 전하고 싶다.
그런데 이번에 피겨 스케이팅 경기를 보며 금메달을 ‘도둑질’ 당한 것만 같은 김연아 선수의 경우 못지않게 나에게 아픔으로 찾아 온 것은 일본인 아사다 마오 선수의 어이없는 실수들이었다. 김연아 선수의 동갑내기 라이벌로 이번에 진검승부를 펼쳐주기를 내심 기대했다. 물론 그래도 금메달은 김연아 선수가 따 주기를 바랐지만 마오 선수가 절대로 그렇게 무너지기를 바라지 않았다.
김연아 선수와 마찬가지로 그도 어느 집의 귀한 딸이며 자기 나라 국민들의 기대와 열광적인 응원을 받고 있는데 일평생 연마해 왔던 기량을 아낌없이 발휘했어야 했다. 그런데 첫 날 경기 후 억지로 울음을 참아내는 마오 선수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고통은 김연아 선수의 월등한 점수가 가져다주는 희열 보다 나의 마음에 더 오래 머물었다. 누구도 그런 잔인한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되는데 운동 시합과 경쟁의 매정함을 여실히 보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지난 주말에 지역 고등학교 학생들의 레슬링 경기를 여럿 관전했다. 그런데 승리한 선수들의 자랑스러움 보다 패자들의 안타까움이 더 마음에 각인 되었다. 경기 마지막 몇 초를 남기고 승부가 뒤집어 졌을 때도 그렇지만 일방적 열세를 면치 못하며 참패하는 경우 더욱 그랬다.
그 누구도 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관중들 보기 민망할 정도의 패배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선수들 사이에 기량의 차이는 있지만 열정의 차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승패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혼신을 다해 경기에 임한 선수들 모두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시합 장 밖 복도에 주저앉아 얼굴을 두 손에 파묻고 있는 어린 학생들에게 전할 위로의 말을 제대로 찾지 못한게 몹시 후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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