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덮친 북극 한파와 눈으로 도시의 기능이 마비되어 공짜로 쉬는 날이 생겼다.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TV를 틀어 소치 동계올림픽을 볼 수 있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행운으로 느껴진다. 개막식에서 러시아는 나라의 생성과 역사를 최신 디지탈 기술로 감동적으로 소개했다.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참가한 흥분된 표정의 올림피언들, 관전하는 수십억의 인구도 신나는 지구촌 최고의 스포츠 제전이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느낀다. 무언가 이상함을. NBC의 한 앵커는 티셔츠를 입고 경기에 임하는 선수의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동계올림픽은 소치가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한다고 농담한다. 소치는 올림픽에 필요한 적설량을 준비하기 위하여 지난 4년 동안 71만 큐빅 미터의 눈을 적재해 놓았고 500개의 제설기로 올림픽 기간 동안 인공눈을 만들어 냈다.
소치는 러시아 남부, 아열대성 기후대 흑해 연안 도시로 절경의 휴양지이다. 야자수가 늘어서 있고 해변 기념품 가게에서는 바다놀이 용품을 판다. 해변 가까이에서 시작되는 이머르틴스카야(Imeretinskaya) 저지대는 대규모의 철새들의 서식지로 청정지역이다. 그러나 이곳은 시멘트 기둥과 각종 건축쓰레기로 메꿔 지고 그 위에 올림픽 개폐막식을 위한 스타디움이 세워졌다.
올림픽 경기장들은 해변에서 약 4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해발 600미터의 크리스마야 포랴나(Krasnaya Polyana)산에 설치되었다. 이 사이에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지구 자원 보호림이 있는데 유럽에서 몇 안되는 대규모 천연림이다. 자연의 다양한 형태 호수, 강, 폭포, 동굴이 있고 다양한 종류의 동식물들이 풍부하게 분포되어 있다. 다양한 서양 난 종류의 자생지로도 유명하다. 이 보호림의 8천 에이커는 올림픽 행사장을 연결하는 철로와 고속도로를 건설하는데 사용되었다. 이 보호림의 개발이 법으로 제한되어 있었지만 푸틴은 법을 바꾸어 버렸다. 동식물들은 삶의 터를 빼앗기고 아름드리 고목들은 여지없이 쓰러졌다.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길목에 70여 가구가 사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아크스티르(Akhshtryr)라는 마을의 운명도 이와 다르지 않다. 공사 트럭들이 쉴 새 없이 지나다니면서 버린 쓰레기로 쓰레기장이 되었고 두텁게 쌓인 먼지로 농업 및 목장업이 불가능 해져서 생계를 잃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조상대대로의 식수원이었던 므심타(Msymta)강이 쓰레기 더미로 오염되어 버린 것이다. 그 강에는 연어가 살았고 강물은 그냥 떠먹을 수 있을 정도로 깨끗했다. 러시아 정부는 일주일에 한번씩 트럭으로 병물을 공급해 준다. 마을 주민 알렉산더 코로포브는 “올림픽을 저주합니다.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었으니까요. 나는 올림픽 거지가 되었습니다.” 라고 가디언 지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IOC는 지속가능 올림픽을 상당히 중요시 한다. 푸틴은 유치 당시 IOC에 “탄소 제로, 쓰레기 제로, 신재생에너지원이 주가 되는 녹색 올림픽”이 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올림픽 공사로 인한 환경파괴와 인권문제는 세계러시아자연보호협회, 녹색러시아, 코카서스 자연 자원보호협회 등에 의하여 계속 제기되어 왔다. 푸틴은 그들의 입을 막기 위해 감옥에 보냈다. 대표적인 예로 북코카서스 환경보호그룹의 저명한 환경학자인 예브제니 비티스코 박사는 체포되어 3년이 구형됐다. 비티스코 박사는 소치에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것이 애초부터 잘못된 선택이라고 말해 왔다.
푸틴은 왜 그렇게 소치올림픽 유치에 집요했을까? “거기에서 푸틴이 스키를 하고 싶기 때문이지요.” 라고 ‘푸틴의 게임’ 이라는 소치올림픽으로 집을 빼안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는 사이몬 보우맨이 한마디로 대답한다. 영국의 지속가능스포츠 컨설팅 회사 사이몬 루이스 사장은 IOC와 유엔환경위원회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소치에 올림픽을 연다는 것은 애초에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한다. 러시아 정치학의 저명한 전문가이며 마퀘테 대학의 정치학과 과장인 로웰 바링톤 박사도 “푸틴은 러시아를 지구적 힘의 중심이 되게 하고자 노력해 왔다. 올핌픽은 분명히 국가적 자존심을 높여 주겠지만 문제는 소치 올림픽 자체가 푸틴의 지도력과 의사 결정력에 의심을 품게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올림픽에 대한 푸틴의 국수주의적 집착을 보면서 윤극영씨의 동요 ‘반달’이 떠 오른다. 은하수라는 강물에 떠 있는 배, 지구라는 별, 그별에서 흐르는 구름과 바람과 강물은 국경이 없다. 타고르의 시 ‘키탄잘리 35’의 기도가 그 어느 때 보다도 간절해지는 시간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세계가 스스로의 벽으로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지지 않는 곳, .... 맑은 이성의 물결이 무의미한 관습의 거치른 사막으로 흘러가지 않는 곳, .... 주여! 자유의 하늘로 이 나라를 깨우쳐 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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