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인지 나의 첫 직장이었던 동아일보 편집국에 들렀다가 모든 원고 작성과 편집이 컴퓨터로 이뤄지는 것을 보고 내가 요즘의 젊은이였으면 기자도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59년 동아일보 1기생으로 11명의 동료 견습기자들과 수련에 들어갔을 때는 볼펜 조차 모르던 잉크병과 철 펜 시절이었던 탓이다. 더구나 손기술이나 재주는 타고 나지 못했을 뿐더러 부지런히 새것을 배우고자 하는 진취성마저 결여된 사람이라 그랬던지 동료 기자와 함께 체신부에서 주최했던 단기 텔레타이프 송수신 프로그램을 이수하고도 영문 타이프 치는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 과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1964년 미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1969년에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써야 했던 모든 과목의 리포트들로부터 석, 박사 논문을 일일이 아내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던 처지였다.
특히 박사 논문의 경우 까다로운 지도교수의 지적에 따라 여러 번 고치다가 결국 보면 나의 첫 내용으로 낙착이 되는 경우가 많았던 과정에서 일주일에 40시간씩 직장 생활하던 아내가 밤늦게까지 수동식 타이프라이터를 치느라고 자정을 넘기기가 일쑤였던 것을 회상하면 내 아내에게는 P.H.T.(Pushing Husdand Through)란 ‘학위’가 있다고 해야 한다. 남편의 등을 밀다시피하여 학위를 받게끔 했다는 표현이다.
이제서야 간신히 두 손가락으로 소걸음 속도로 영어 자판 만을 칠 수 있을 뿐 한글 자판은 외계어 쯤으로나 보이는 나에게는 컴맹이란 말이 꼭 맞는 말이다. 글 같지도 않은 글을 그나마 볼펜으로 괴발개발같이 악필로 써서 한국일보 편집진을 고생시키는 배경이다.
나 자신이 컴맹 임을 고백하다 보니 얼마 전 모 신문에서 읽은 ‘한자에 캄캄한 대한민국’이란 기획기사가 연상된다.
한글 전용화 정책이 1970년부터 44년간 실천되어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우려할만한 현상을 파헤치는 것으로 몇차례 더 계속될 듯하다. 서울에 사는 성인남녀의 거의 절반이 자녀들의 이름을 한자로 쓰지 못한다는 여론 조사가 있는가 하면 한자의 뜻을 몰라 세대간의 불통 현상이 일어날 뿐 아니라 한문 문화권 아래 축적되어온 대학 도서관의 자료 중 90%가 대학생들의 한맹 때문에 사장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한자 교육 부활론도 제기되는 모양이다.
여러 대학 교수들의 도움을 받아 쓴 시리즈의 첫 회에는 웃어야 될 지 울어야 될 지 분간키 어려운 예들이 많이 나와 있다.
어떤 일류 대학교수의 2007년 조사 결과로는 대학 신입생의 20.3%가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쓰지 못했단다. 이른바 명문대의 어느 교수는 학생 하나와 대화 중 “김구 선생이 암살로 돌아가셨다”고 했더니 학생은 “그 분은 암에 걸려 돌아가신 거예요?”라고 질문했다는 데야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어떤 교수가 학생들에게 전공학과를 한문으로 쓰라고 했더니 ‘行正學科’나 ‘火學科’라고 잘못 써서 제출한 학생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한 학생이 서류를 떼러 동사무소에 갔는데 도장을 안 가지고 와서 직원이 ‘지장(指章)도 괜찮다”라니까 학생 대답이 “지장도 안 가져 왔는데요”라 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러니 여관을 여자들이 자는 집이라고 생각하며 조인식(調印式)을 동아리에 가입하듯이 영어로 ‘join’ 인 것으로 이해한다는 예들도 있다. 그런 현상에는 대학원 학생들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어떤 교수가 대학원생 조교에게 도서관에 가서 ‘국어학개론’을 찾아오라고 시켰더니 빈손으로 돌아와서 하는 말이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책이 없었다는 보고였다. ‘國語學槪論’(국어학개론)이라 쓰인 제목을 읽지 못해서 그랬다는 것을 나중에나 알게 되었다는 게 교수의 회고였다. 그런 판에 재주가 뛰어난 젊은 여성이라는 의미의 ‘재원’이란 말을 남자들에게 적용시킨다던지 카드 결제를 결재라고 잘못 읽는 일이 허다하다.
한자 문맹 현상의 가장 큰 문제는 지식의 확장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우려한다. 성균관대 어느 중문과 교수는 “국어 어휘의 70%, 학술 용어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한자인데, 그걸 가르치지 않는 것은 지름길을 놔두고 돌아가는 격”이라고 말한 것으로 인용되어 있다. 최소한의 한자 교육 부활론이 대두되는 연유이다.
그러나 44년 동안이나 지속되어온 한글 전용화 교육 때문에 내 글의 독자 수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서 이제는 절필을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특히 나의 컴맹 현상 때문에 볼펜으로 쓰는 악필로 편집국의 바쁜 분들을 괴롭히고 있지나 않은 것인지를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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