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 미국산 미녀로 차가우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데보라 카가 연상된다) 할리웃 황금기의 빨강머리 빅스타 엘리노어 파커가 9일 팜스프링스 자택에서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엘리노어 파커가 도대체 누구야’ 하고 궁금해 할 사람들일지라도 오스카 작품상을 탄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1965)에서 아이를 일곱이나 둔 홀아비 오스트리아 해군함장 본 트랩(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여남작 애인 엘자(사진)는 기억할 것이다.
본 트랩 집에 보모로 들어온 예비수녀 마리아(줄리 앤드루스)에게 애인을 빼앗긴 엘자가 바로 엘리노어 파커다. 그런데 파커는 스튜어트 그레인저가 주연한 멋있는 칼싸움 영화 ‘스카라무슈’와 프랭크 시내트라가 마약중독자로 나온 ‘황금의 팔을 가진 사나이’에서도 각기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를 재넷 리와 킴 노박에게 빼앗긴다.
파커는 묘하게도 5일 NBC-TV가 새로 제작한 ‘사운드 오브 뮤직’을 라이브로 방영한지 나흘 뒤에 세상을 떠났다. 캐리 언더우드가 마리아로 나온 이 뮤지컬에서 엘자 역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코미디 스타 로라 베낸티가 맡아 노래 불렀다. 한편 신판 뮤지컬은 14일 하오 8시에 재방영 된다.
그런데 파커는 생전 ‘사운드 오브 뮤직’의 엘자 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아들이자 배우인 폴 클레멘스는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10년 전에서야 모든 연령층의 사랑을 받는 영화에 나온 것을 기뻐하셨다”고 말했다.
파커의 사망이 알려진 직후 플러머(13일로 84세가 됐다)는 성명을 내고 “엘리노어 파커는 내가 안 숙녀들 중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다”면서 “난 그가 마법에 싸인 여자로 영원히 살 줄 알았다”고 애도했다.
1940~60년대 30년간에 걸쳐 왕성한 활동을 한 파커는 클라크 게이블, 윌리엄 홀든, 커크 더글러스, 글렌 포드 및 프랭크 시내트라와 로버트 미첨 등 수퍼스타들의 상대로 출연하면서 생애 모두 세 차례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었다.
본인도 인정했듯이 파커는 성격파 배우로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극적이면서도 민감하고 또 뉘앙스가 다채로운 연기를 구사해 ‘100개의 얼굴을 가진 스타’로 불렸다. 이런 연기파인데도 빼어난 미모 때문에 연기력이 그 아름다움의 그늘에 갇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나도 어릴 적에 파커의 많은 영화들을 보면서 그의 얼음처럼 차가운 미모에 빠져들었던 팬이다. 윌리엄 홀든과 공연한 웨스턴 ‘브라보 요새의 탈출’, 클라크 게이블이 나온 웨스턴 ‘왕과 4명의 여왕’, 찰턴 헤스턴의 아내로 나온 모험영화 ‘벌거벗은 정글’ 그리고 ‘스카라무슈’ 및 둘 다 프랭크 시내트라가 주연한 ‘황금의 팔을 가진 사나이’와 주제가 ‘하이 호프스’가 오스카상을 탄 ‘호울 인 더 헤드’ 등이 기억난다.
파커가 제일 먼저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영화는 순진한 여자가 교도소에 수감돼 살벌한 환경에 의해 재생불능의 범죄자가 되는 ‘케이지드’(1950)이고 두 번째 영화는 삶에 지친 뉴욕 형사 커크 더글러스의 비밀을 지닌 아내로 나온 ‘형사 이야기’(1952).
마지막 수상 후보작은 소아마비와 투쟁을 하는 호주의 오페라 가수 마조리 로렌스의 실화를 다룬 ‘중단된 멜로디’(1955)로 글렌 포드가 공연한다. 그런데 오페라 팬인 파커는 이 영화의 아리아들을 모두 배웠으나 마지막에 소프라노 아일린 화렐의 노래로 더빙됐다.
오하이오주 세다빌에서 태어난 파커는 어려서부터 무대에 섰는데 20세 때 패사디나 플레이하우스에서 공부하던 중 워너브라더스에 의해 발탁됐다. 데뷔작 ‘버스들의 소음’(1942)은 졸작이고 파커가 비로소 연기력을 보여준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2차 대전 영웅담 ‘해병의 자랑’(1945)에서 주연 존 가필드의 애인으로 나오면서였다.
파커의 ‘사운드 오브 뮤직’ 이후의 영화들은 타작들로 그는 영화 활동이 뜸한 후에도 ‘러브 보트’와 ‘팬터지 아일랜드’ 및 ‘머더, 쉬 로우트’ 등 여러 편의 TV 시리즈에 출연했다. 파커는 1991년 TV 영화 ‘데드 온 더 머니’를 끝으로 연기생활에서 은퇴했다.
내가 어렸을 때 보고 즐긴 영화들의 스타들은 이제 대부분 하늘에 올라가 떠 있다. 누가 남았나. 이들이 하나씩 떠나갈 때마다 마치 내 순진했던 과거가 피부에서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듯이 소량의 통증이 느껴지곤 한다. ‘굿 바이 엘리노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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