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국에 유학을 왔던 시기는 고국 한국에서 유신독재가 극에 달해있던 때였다. 대통령 긴급조치 2호인가 3호인가를 마지막 뉴스로 듣고 친구들이 마련해준 송별회에 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 정부의 으름짱은 너무나 무서웠다. 대통령 욕을 하면 사형까지 시킬 수 있는 엄청난 것이었다. 떠나는 친구를 위해 송별회를 해준 친구들이 하나같이 “넌 떠나서 좋겠다”고 할 정도로 일반시민들은 매일 매일 무서움에 떨며 지냈던 시기였다.
그때 내 친구들과 주위의 모든 이들이 반정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당시의 세상은 선과 악, 진실과 두려움의 차이가 분명한 시기였다. 정부를 위해 일하던 이들까지 사석에서는 “살려면 어쩌겠는가”가 오직 할 수 있는 얘기였으니까, 그 시기의 분위기를 모르고 자란 지금의 30대, 40대가 간접학습 효과로 배운 유신독재의 두려움은 당시 우리 세대에겐 매일 피부로 와 닿던 일상이었다. 내 개인적인 스토리로는, 한 분 있는 형님은 동아투위 일로 직장을 몇 년 동안 13번이나 바꾸다가 한겨레신문 창간 이후 초대 편집국장(편집위원장이라고 불렀다)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게 되고, 그 때문에 집안도 함께 어려워했으며 대학동기였던 민권변호사 조영래, 민주투사가 된 김근태, 손학규군을 비롯한 친구들도 그 당시 많이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그 이후 세월이 많이 흘렀다. 경제라고는 수출 백만 달러 달성이 꿈이던, 정말로 형편없던 나라가 세계경제에서 12강국에 들고, 그 덕분에 나라의 위상도 많이 승격되었다. 북쪽의 김씨 일가 독재가 국제무대에서 창피해서 그렇지, KOREA란 나라는 이제 정치도 그런대로 모양이 잡혔고, 미국에 와서 이 나라의 자유스러움이 공기처럼 고맙게 느껴지던 그 민주정치도 이제 정권교체 몇 번 이후로 어렴풋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잘못도 있지만 정권마다 공적이 있어서 이정도 나라가 발전한 게 아니겠는가. 이승만 정부는 건국을 하고 토지개혁을 성공적으로 했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를 발전시켜 굶는 이들이 많던 가난한 나라를 번듯하게 키웠다. 김영삼 정권은 하나회를 없애서 군부독재를 영원히 막는 역할을 했고, 김대중 정권은 그동안 쌓인 호남의 한을 풀어주었고, 노무현 정권은 정치판이 그래도 좀 덜 썩도록 한 공적이 있다.
그런데 오늘 이글을 쓰게 된 동기는, 지금 돌아가는 한국의 정치가 “이건 아니다”싶은 절박한 마음이 들어서다. 자기가 유신 때 당한 아픔이나, 자기가 운동권 때 한 일을 자랑삼아 자기 자신들의 정치적 필요로 쓰려는 정치판의 여러 사람들의 이기적 행태가 도를 넘어서,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장래에 위협이 될 정도가 된 것이다.
풋볼 시즌이 한창인데, 이 시즌동안 열리는 시합 중 챔피언십이 걸린 중요한 시합에서도 때로는 심판들의 오심이 나온다. 잘하고도 심판의 오심 때문에 마지막 승부에서 지게 되는 경우가 종종 나온다. 그런데 그 이후를 잘 보면, 우리같이 중진국 정도에서 온 외국출신들을 감명시키는 것이 있다 : 억울하게 지게 된 팀에서 시끄럽게 불평을 하지 않고, 다음을 기약하는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일단 시합이 끝나면 그 결과에 승복해야 여론으로부터 욕을 먹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 의아하던 우리들에게 오랜 세월이 지나고서야 그 이유가 분명히 보인다. 승복을 하지 않으면 판이 깨어져 버리는 것이 두려워서다. 혼돈과 무질서는 아무 조직 구성원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의 세계경제에서 나라사이의 경쟁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치열할 것이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 사이에 끼어서 외세의 침범을 항상 받아온 한민족에게, 약소국이라 당하고만 살던 시대에는 판정불복이 한민족이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었다. 항상 지고만 살던 약소국이 패배에 승복하고 지냈다가는 나라와 민족이 거덜 났을 것이다. “우리는 힘이 약하지만, 고개를 숙이지는 않을 것이다”란 약자의 자존심이 한민족을 지탱해온 기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한민족은 약소국이 아니다. 패배에 승복하지 않으면 판이 깨어진다. 우파정권이 들어섰다고 40년이 넘은 유신독재 핑계로 “유신의 딸”로 치부하고, 대선이 끝난지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날이면 날마다 정권반대운동이나 하고, 이다음 언젠가 좌파정권이 들어서면 우파 쪽에서 승복하지 않은 채 또 5년을 지내고…이렇게 정치판이 유치하고서야 정치가 경제를 망치는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본국의 정치인들이여. 정신 좀 차리자. 대한민국의 장래가 위험한 지경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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