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업 노크 높은 벽, 인터뷰 기회 얻기 자체가 `바늘구멍’, “손주 있느냐” “고교 졸업년도는?” 등 면접관 질문에 주눅
▶ 55세 이상 구직자 200만명, 대공황 당시 비해 두배나 많아, 경험과 연륜 오히려 큰 무기… 자신감 잃지 않는게 중요
트레이시 블레이클리(53)는 완벽한 조건을 갖추었으면서도 나이 탓에 구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 고령 취업희망자들의 애환
이전의 불경기에는 이렇지 않았다. 나이 들어 새로운 일자리를 잡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았다. 인터뷰를 따기도 힘들었으나 그 다음이 더 문제였다. 일단 거기까지만 가면 5부 능성은 넘었다는 느낌을 갖기 마련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트레이시 블레이클리(53)에게 인터뷰는 고문이었다. 노림수가 빤히 드러나 보이는 면접관들의 사생활 관련 질문이 나올 때마다 “여기서도 일자리는 물 건너갔다”는 생각에 맥이 풀리고 짜증이 돋았다.
면접관들은 대놓고 나이를 묻지 않았다. 그러나 빙빙 돌려가며 그녀의 나이를 파악하려 들었다.
“아이들이 있느냐”는 바람잡이 질문에 이어 곧바로 “손주는요?”가 뒤따르는 식이다.
고등학교 졸업연도를 묻는 질문도 자주 나왔다. 이건 나이를 잡아내기 위한 우회성 질문이다.
블레이클리는 나무랄데 없는 근무태도에 컴퓨터 실력도 뛰어나다. 긍정적인 성격 또한 플러스 요인이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얼마든지 원하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늘 나이가 문제다.
일자리를 찾는 50대, 60대, 심지어 70대 ‘노병’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재 55세 이상의 미국인 취업희망자는 200만명을 헤아린다. 대공황 이전에 비해 두배 이상 많은 숫자다.
만성적인 미국의 경기침체는 모든 연령대의 근로자들에게 타격을 주었으나 그중에서도 특히 베이비 붐 세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통계상으로 나이든 근로자들의 실업률은 전체 실업률에 비해 낮다.
연방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55세 이상 연령대의 실업률이 5.4%인데 비해 전체 노동인구의 실업률은 7.3%이다.
그러나 직장에서 튕겨져 나온 부머들의 실직기간은 나머지 연령대에 비해 훨씬 길어졌다.
설사 새로운 일자리를 구했다고 해도 불이익이 따른다. 임금수준이 이전에 비해 대폭 떨어지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삭감 폭이 젊은 연령대에 비해 훨씬 크다.
미 은퇴자협회(AARP) 공공정책 연구소의 선임 전략정책 어드바이저인 사라 릭스는 “아직도 일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이든 근로자들은 대단히 잘 해내고 있다”며 “하지만 일단 실직하게 되면 좀처럼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지 못 한다”고 밝혔다.
지난 주말 나이든 근로자들을 위해 AARP가 롱비치에서 개최한 잡 스킬(job skill) 컨퍼런스에는 1000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루었다. 당초 AARP는 600명 정도를 예상했었다. 취업전선에 재투입되기를 원하는 퇴역 노병들이 수두룩하다는 얘기다.
오랜 취업 대기상태는 재정적 타격은 물론 정서적 후유증을 초래한다.
17개월 전에 해고된 대릴 ?스톤(55)은 “집에 죽치고 앉아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리를 쥐어짜는 것 만큼 피곤한 일도 없다”고 말했다.
스톤은 “아직도 50세 이상의 많은 사람들은 ‘쓸모’가 있지만, 능력을 발휘할 곳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이유는 베이비 부머 세대의 노령화로 이 연령대에 속하는 사람들의 수가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 가운데 노후 걱정이 없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이들어서도 돈은 필요하다.
실제로 50세 이상의 구직자 10명당 네 명은 돈이 필요해 취업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AP-NoRC 공공사업리서치센터의 서베이 결과다.
나이 든 근로자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분명 부정적 편견이 거품처럼 섞여 있다. 젊은이들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지고 회사가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용이 늘어난다는 인식이 경영진의 머릿속에 뿌리박혀 있다.
급속히 변화하는 디지털 세계 속에서 적응력이 떨어지는 ‘노인 인력’은 자산이라기 보다 부담이라는 생각이 보편적이다.
고용주들은 특히 소셜미디어와 같은 필수불가결한 영역에서 이들이 필요한 스킬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우려한다.
55세를 넘긴 근로자들이 링크드인(LinkedIn)이라든지 비디오 인터뷰와 같은 현대적인 구직 기술에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럿거스대학의 존 J. 헬드리치 인력개발센터 소장인 칼 반 혼은 “고용주들이 나이가 많은 직원 채용을 꺼리기 때문에 55세를 넘긴 후 실직을 한 사람들은 재취업에 대단히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며 “고용주들이 나이든 사람들에 갖고 있는 인식은 잘못된 부분도 있지만, 정확한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과거 불경기가 닥쳤을 때 50대 이상의 연령층에 속한 근로자들은 비교적 선전했다. 보스턴 칼리지의 은퇴 연구센터 자료에 따르면 1990년대 초 불경기 당시 55세 이상 인구의 실업률은 5% 2000년대 초반 경기침체기에 기록된 4.3%를 웃돌았다. 그러나 2010년 8월을 기준한 이들의 실업률은 7.4%로 고점을 찍었다.
55세 이상 구직자들이 직면한 역풍은 만만치 않다. 일자리 잡는데 소요되는 평균 기간은 55주로 25~34세 연령층의 35주에 비해 훨씬 길다.
새로운 일자리를 잡았다해도 이전 일자리에 비해 보수가 형편없다. 55~64세에 재취업을 했을 경우 평균 18% 삭감을 받아들여야 한다. 재취업한35~44세 근로자들의 이전 직장 대비 임금삭감폭이 6.2%인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난다.
AP-NORC 서베이에서도 50세 이상 근로자 다섯명당 한명이 나이로 인해 진급에서 누락되거나 회사가 제공하는 직업훈련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나이든 재취업 희망자들의 무기는 경험과 연륜이다. 불이익의 근원인 나이를 역으로 활용하는 것이 최고의 반전 전략인 셈이다.
‘디지털 스킬’은 젊은 후배들에 비해 떨어지지만 오랜 경험을 통해 취득한 노하우와 성격 까칠한 ‘어린’ 동료들을 다독일줄 아는 팀플레이어로서의 면모를 최대한 활용하면 의외로 쉽게 자신의 직장내 입지를 굳힐 수 있다.
블레이클리는 구직 인터뷰에서 나이 탓에 번번히 좌절을 맞보았으나 반드시 맞춤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부추긴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할 수 있다, 해보자”고 되뇌인다. 자신감을 잃는 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것을 그녀는 너무도 잘 알고 았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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