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에 가면 수원 화성행궁이 있고 건릉과 융릉이 있다. 건릉(健陵)은 정조와 효의황후의 능이고 융릉(隆陵)은 추존 장조와 현경황후의 능이다.
화성행궁 주변에 복원된 성곽은 1~3시간 거리의 둘레길과 동북각루의 방화수류정 용연 주변이 이름난 명소로 늘 사진작가와 연인들로 붐빈다. 동북각루는 용두바위 위에 지은 군사시설인데 2층에는 왕을 위한 온돌방으로 창문도 설치되었다 한다. 방화수류정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수원천이 지나는 화홍문이 있고 그 아래 한옥까페에서 파는 커피나 차는 모두 맛있는 것이 아리따운 분위기를 마시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원은 정조(1752~1800) 덕분에 문화도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 화성행궁을 둘러보다 보면 경복궁이나 덕수궁 못지않게 잘 지어진 것을 알 수 있다. 화성행궁(華城行宮)은 정조가 능원에 참배할 때 머물던 임시처소로서 평소에는 부사 또는 유수가 집무하던 곳이다.
정조는 1789년 배봉산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현재의 자리인 화산으로 옮기고 이름을 현륭원으로 바꾸었다. 1800년(정조24년)까지 22년간 13차례에 걸쳐 능원에 참배하고자 화성에 행차했고, 이때마다 행궁에 머물렀다.
화성행궁은 576칸으로 정궁 형태를 이루며 국내 행궁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지만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지내며 파괴된 것을 1996년 복원 공사를 시작하여 작년 4월24일 복원이 완료되었다.
화성행궁의 정문은 신풍루로 ‘풍, 땅은 새로운, 또다른 고향’이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정조에게 화성은 고향과 같았다. 정조는 이 앞에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눠주고 죽을 끓여 먹이는 행사를 했었다.
봉수당에서는 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진찬례’를 거행했으며 노래당(老來堂)은 정조가 왕위에서 물러나 노후생활을 꿈꾸며 지었다는 건물이다. ‘노래’ 라는 말은 ‘늙는 것은 운명에 맡기고 편안히 살면 그곳이 고향이다’ 라는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시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세자가 15세가 되는 1804년에 자신은 왕위를 물려주고 어머니 현경황후를 화성으로 모셔 여생을 보내겠다 하는 염원이 담겨있으나 정작 정조는 1800년 사망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서울은 주상의 수도로, 수원은 상왕인 자신의 수도로 남겨두려고 한 정조, 수원에 가면 정조가 뒤주에 갇혀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운을 얼마나 슬퍼하고 또 사모했는지 저절로 느끼게 된다.
그런데 정조는 왜 자신의 사후를 준비하지 않았을까?
조선의 제22대 국왕으로 탕평책을 계승하고 문화정치를 추진한 가장 이성적이고 지성적인 군주가 정적에게 자신이 음독사할 수도, 또 과로하지 않고 오래 살아 아들의 입지를 든든히 해줄 생각을 못한 것이 안타깝다.
47세로 승하 직전에야 어린 세자가 걱정되어 안동 김씨 김조순의 딸을 세자빈으로 간택했지만 이는 세도정치 배경이 되게 한 결과가 되었다. 어린 순조대신 수렴청정을 시작한 정순왕후는 정조가 만든 친위군 장용영을 해체해 버렸다.
그래도. 아버지의 능에 참배를 가는 정조는 백성들에게 효의 모범을 선보였고 아버지와 아들은 같은 화산의 지근거리에 묻혀있다.
정조대왕능행차는 7~10일이 소요되며 말, 가마, 수레, 악대, 군사, 관료들 6,000여 명이 동원되었다. 능행기간동안 백성들의 신문고를 운영하고 과거시험과 군사훈련도 했다지만 주기적인 능행은 과연 민폐가 없었을까 싶다. 피해 입은 주민들에게는 보상을 했다고 한다.
또한 ‘원행을묘정리의궤’(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행사를 정리소에서 총 8일간 날짜별로 정리하여 1797년 간행한 의궤)에 110장의 그림이 남겨져 있는데 그중 현륭원 참배 그림은 없다고 한다. 이는 33년 전 죽은 아버지의 반대세력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배려로 보여진다는 것이다.
정적과의 대립이 아닌 화해의 정신이 보인다. 현재 정조대왕능행차는 매년 10월, 서울시와 경기도가 공동주최하는 문화 축제로 남아있다. 축제로만 끝나지 말고 정조의 화해의 정신이 한국 정치계에도 흘러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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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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