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는 늘 자신을 먼저 예술가로 생각했었던 사람이다. 그는 1차 대전에 참전했다 귀국한 뒤 비엔나 미술학교에 입학을 신청했다가 퇴짜를 맞은 미술가 지망생이었다. 독일작가 토마스 만은 히틀러가 독일 국민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자신을 정치가라기보다 신화를 창조하는 예술가로 내세웠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자칭 예술가가 자신의 정열을 정치가 아닌 미술에 쏟을 수 있었더라면 2차 대전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역사적 가설도 있다. 좌절한 미술가인 히틀러가 나치 총통이 된 뒤 독일은 물론이요 독일이 점령한 유럽 국가들로부터 귀중한 미술품들을 대량 약탈한 것은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런데 독일 당국이 지난해 히틀러가 노략질한 1,400여점의 미술품을 뮨헨의 한 아파트에서 발견했다는 사실이 최근에 밝혀지면서 이 뉴스가 세계 미술계의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회수된 그림들 중에는 마티스, 르느와르, 피카소, 샤갈 및 툴루즈-로트렉 등 우리가 잘 아는 화가들의 것들과 함께 히틀러가 소위 ‘퇴폐미술’이라며 몰수한 아방-가르드 작품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바그너를 좋아한 히틀러는 미술뿐 아니라 아방-가르드 음악도 독일의 순수성을 해치는 외국의 전염병이라며 증오했는데 그래서 나치 통치 당시 국외로 도주한 현대 음악가들이 많다. 현 LA오페라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인 제임스 콘론은 수년 전 이들의 음악을 ‘침묵당한 음성’이라는 제하의 시리즈로 LA필과 함께 연주한 바 있다.
아방-가르드 미술을 혐오한 또 다른 독재자가 후르시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 그는 모스크바의 한 추상화전에 참석했다가 그림을 보고 “이런 그림은 소변기 덮개로나 쓸 것”이라면서 “이런 개똥에는 국가가 한 푼도 보조해 줄 수 없다”고 호통을 쳤었다.
나치는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 약탈한 미술품들을 파리의 현대미술관인 죄 드 폼에 보관했었다. 독일 당국이 쉬쉬하다가 알려진 1,400여점의 미술품들도 여기에 보관됐던 것들로 알려졌다.
나치 패망이 가까워 오던 1944년 여름 죄 드 폼에 보관됐던 약탈 미술품들을 기차로 독일로 수송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저지하려는 레지스탕스의 활약을 그린 흥미진진한 흑백 액션 스릴러가 존 프랑켄하이머가 감독한 ‘기차’(The Trainㆍ1964)다.
버트 랭카스터와 폴 스코필드, 잔느 모로와 미셸 시몽 등 기라성 같은 연기파들이 나오는 이 영화는 서스펜스 가득한 액션영화이자 아울러 ‘예술의 보존을 위해서라면 과연 인명을 희생할 가치가 있는가’라는 제법 철학적인 명제까지 제시하고 있다.
미술의 미자도 제대로 모르는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 기차역의 철도 검사원 폴 라비시(랭카스터)는 미술품 수송 책임자로 미술애호가인 독일군 대령 프란츠 폰 발트하임(스코필드)이 탄 기차가 독일 땅에 들어서는 것을 막으려고 동분서주한다.
라비시가 그림들을 실은 기차를 전복시키면서 겉에 화가의 이름이 적힌 상자들이 철로 위에 떨어지고 라비시와 단 둘이 맞선 폰 발트하임은 이렇게 내뱉는다. “이것들은 네게는 원숭이에 진주 목걸이야. 미는 즐길 줄 아는 사람의 것이야”라며 “넌 네가 왜 이런 일을 했는지 그 이유도 모르지.” 이에 라비시는 아무 대꾸도 없이 들고 있던 경기관총으로 폰 발트하임을 쏴 죽인다.
프랑스에서 찍은 매우 지적인 전쟁영화로 거대한 생명체와도 같은 달리는 기차가 중요한 구실을 하는데 예술과 삶의 가치에 대한 질문까지 하고 있어 내용에 깊이를 더해 주고 있다.
나치가 약탈한 미술품들을 회수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적지에 뛰어들었던 미술관장과 미술사가 및 큐레이터 등으로 구성됐던 연합군의 별명이 ‘모뉴먼츠 멘’이다. 이번에 드러난 뮨헨의 미술품들 중 상당 부분도 이들에 의해 회수됐던 것들로 알려졌다.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활약을 그린 영화 ‘모뉴먼츠 멘’(The MonumentsMenㆍ사진)이 조지 클루니 감독 주연으로 현재 마무리작업이 한창이다. 클루니 외에도 맷 데이먼, 존 굿맨, 빌 머리 및 케이트 블랜쳇 등이 나오는 영화는 당초 12월18일에 개봉될 예정이었으나 후반작업 지연으로 내년 2월7일로 연기됐다. 예정대로 개봉됐더라면 최근 밝혀진 역사적 사건이 큰 공짜선전이 됐을 텐데 클루니가 속 썩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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