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세일즈맨으로 보낸 윌리 로만의 죽음은 모든 보편적 서민의 죽음이다. 그것은 우리 보통 사람들의 죽음이어서 그 통증이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살아온 평생이 헛된 꿈과 가치관에 매달려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갈 곳은 과연 어디인가.
윌리는 나이 60에 비로소 자신이 지녀온 꿈과 가치관의 오류와 허상을 발견하고 죽음을 택했다. 세상에 기만당했다는 느낌과 함께 배신감 때문이다.
모기지 페이먼트와 보험료 지불을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한 가장의 집요한 생존과 신기루 같은 꿈에의 집착 그리고 이 꿈이 무너지면서 스스로 택한 죽음을 강렬하고 사실적으로 그린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다임에 12개짜리’ 우리 모두의 드라마다.
아서 밀러가 1949년에 써 퓰리처상을 받은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은 아메리칸 드림과 물질주의에 대한 가차 없는 기소이다. 미국의 꿈과 희망 그리고 이것들의 좌절과 허상을 그린 음울한 현대판 고전으로 브로드웨이서 장기 공연돼 토니상을 받았다.
첫 윌리 로만 역은 리 J. 캅이 했고 그 뒤로 프레드릭 마치, 흄 크로닌, 빈센트 가데니아, 조지 C. 스캇, 브라이언 데니히, 핼 홀브룩 및 더스틴 호프만 등이 무대와 스크린과 TV에서 윌리 역을 했다.
내가 처음 본 ‘세일즈맨의 죽음’은 중학생 때 본 프레드릭 마치가 나온 흑백영화(1951ㆍ사진)였다. 명 제작자이자 감독인 스탠리 크레이머가 제작하고 라즐로 베네딕이 감독했는데 어렸을 때인데도 깊은 감동을 느꼈었다. 특히 마치의 처절한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를 지난 9일 웨스트LA의 아만드 해머 뮤지엄 내 빌리 와일더 극장에서 다시 봤다. 눈물이 나도록 충격적인 감동을 받았다. 이 영화는 올해로 출생 100주년이 되는 크레이머의 업적을 기념, UCLA가 마련한 ‘챔피언: 스탠리 크레이머 100주년’(9월29일까지 계속)의 개막작이었다. 크레이머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깊었던 휴머니스트로 독립영화의 태두였다.
내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기증한 돈으로 복원판이 완성돼 초청 받은 자리에는 크레이머의 부인 및 그의 영화에 나온 시드니 포이티에, 미키 루니, 루이스 가셋 주니어 등이 참석, 크레이머의 업적을 기렸다.
콘크리트와 창으로 둘러싸인 뉴욕의 아파트에 살면서 여행을 하며 여자 스타킹 같은 물건들을 팔아 착한 아내 린다(밀드레드 던녹)와 둘째 아들 해피(캐메론 미첼)를 부양해온 윌리는 평생 세일즈맨 노릇에 영육이 몽땅 뭉그러져 있다. 윌리가 갖다 주는 돈으로 집 페이먼트 내고 간신히 살림을 꾸려 나가느라 린다도 시들대로 시들었다. 직장에 다니는 해피는 윌리의 기대에 못 미치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
윌리가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 장남 비프(케빈 매카시)인데 비프는 이상주의자여서 평범한 직장인이 되기를 거부한다. 윌리는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몽땅 한 때 장래가 촉망되던 비프에게 거는데 비프가 이를 이루어주지 못하자 크게 실망한다.
아들을 통해 자기 꿈을 대리 실현시키려는 윌리와 이를 거부하는 비프는 그래서 충돌이 심하다. 윌리가 자살하기 직전 비프가 아버지의 멱살을 부여잡고 “나는 다임에 12개짜리에요. 그리고 당신도 마찬가지에요”라며 헛된 꿈을 깨라고 울부짖는 장면이 숨이 막힐 정도로 통렬하다.
36년간의 세일즈맨 노릇에 지쳐 헛소리까지 하면서 정신이 붕괴되어 가는 윌리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이 성공적인 것으로 생각해 오면서 낡아빠진 자존심과 보잘것없는 가치관에 매달려 살아왔다. 그런 그가 ‘아 결국 나는 다임에 12개짜리였구나’라고 깨달았을 때 그는 결국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윌리의 무덤에서 린다가 “여보 오늘 마지막 집 페이먼트했어요”라고 독백하는 모습이 처연하다. 집의 소유라는 아메리칸 드림이 모질게 이뤄지는 장면으로 한 평범한 인간과 가정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처참하다.
밀러는 꿈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역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임에 12개짜리’라는 아들의 말에 윌리는 “나는 다임에 12개짜리가 아니야. 나는 윌리 로만이야”라고 응수한다. 결코 꿈과 자존심을 버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윌리가 가상하지만 현실을 직시 못하는 그의 어리석음이 측은하다윌리는 그릇된 가치관과 물질주의적 생활관으로 인간성을 느낄 마음이 마모된 사람인데 먹고 사는데 급급해 물질숭배자들이 되어버린 대부분의 우리들이 다 윌리 로만이다. 그러니 ‘세일즈맨의 죽음’은 ‘샐러리맨의 죽음’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평생을 봉급쟁이로 보낸 나의 한때 분주했던 꿈과 희망 그리고 가치관의 행방을 찾아 보았다. 가슴이 막힌다.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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