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도시로 ‘모타운’이라 불리며 한창 때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였던 디트로이트가 파산했다. 도시 사정이 얼마나 나쁜지 소방관들을 강등에 감봉하고 경찰력 부족으로 시민들이 마치 서부시대처럼 총을 차고 집을 지킨다고 한다.
도시 전체 건물 중 무려 7만8,000천개가 폐물이 돼 사진을 보니 마치 유령도시와도 같고 어떤 동네는 6.25 때 한국의 판자촌을 보는 것 같다(사진). 전성기 200만명이던 인구는 현재 78만명으로 줄어들었고 중간 연소득은 2만5,000달러로 미 30대 도시 중 최하위이며 도시의 가로등 40%가 고장 난 상태다.
언론들은 도시 파산이 시정부, 정치가, 은행 및 인종차별과 노조 등의 총체적 실패의 결과라고 지적하면서도 도시가 이렇게 부러지게 된 명확한 이유를 딱 잡아내기가 쉽지가 않다고 말한다.
나도 오래 전에 취재차 들러 거대한 원통형의 GM 빌딩 내 일본 철판요리 집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는 디트로이트는 요즘 사람들만 떠나는 것이 아니다. 일찌감치 1960년대부터 이 도시를 떠나겠다고 투정을 한 가수가 컨트리 싱어 바비 베어다.
베어가 1963년에 불러 그래미상을 탄 노래 끝 부분에 암송이 있는 ‘디트로이트 시티’는 내가 좋아하는 곡으로 미 남부 시골에서 성공하겠다고 도시로 북상한 한 노동자의 소외감을 영탄조로 노래한 귀거래사다. ‘딩동 딩동’ 하면서 기타가 노래 내용과는 달리 경쾌하게 전주를 올린 뒤 ‘아이 원트 투 고 홈, 아이 원트 고 홈, 오 로드 아이 원트 고 홈’하며 시작되는 노래는 목화밭이 있는 고향을 떠나 북행하는 화물열차를 타고 디트로이트에 와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남자가 도시에서의 허송 세월을 후회 하면서 삶에 지치고 실망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탄하고 있다.
“어젯밤 나는 디트로이트 시티에서 잠이 들었지/그리고 나는 목화밭과 집을 꿈꾸었지/나는 나의 어머니와 다정한 아버지 그리고 여동생과 남동생 꿈을 꾸었지/그리고 나는 너무나 오래 기다리고 있는 그 여자를 꿈꾸었지.” 그러면서 어리석은 자존심을 버리고 남쪽으로 가는 화물열차를 타고 멀리 남기고 떠났던 사람들에게로 돌아 가겠다고 다짐하나 과연 뜻대로 귀향이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베어가 애절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고향 사람들은 내가 디트로이트 시티에서 성공한 줄 알지/그러나 난 낮에는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바에서 일하지”라며 청승맞게 얘기하는 식으로 부르는 노래를 듣자니 공연히 요즘 디트로이트의 몰골이 생각난다.
디트로이트의 쇠락은 벌써부터 여러 영화에서도 묘사된 바 있다. 로저 모어는 기록영화 ‘로저와 나’(1989)에서 자기 고향인 디트로이트에서 북쪽으로 1시간가량 떨어진 플린트의 GM 공장들이 폐쇄되면서 무려 3만명의 실직자가 나온 지역의 부정적 경제충격을 고발하고 있다.
공상과학 액션 스릴러이지만 ‘로보캅’(1987)에서도 디트로이트는 지금처럼 범죄 천국으로 그려졌다. 재정적자로 도시가 붕괴하면서 범죄가 늘자 구도시를 철거하고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사설업체가 경찰업무를 대행, 반인 반기계의 로봇 경찰 로보캅(피터 웰러)을 생산해 범죄퇴치에 쓴다는 내용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주연한 ‘그랜 토리노’(2008)도 이 도시의 몰락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한국전 베테런으로 최근 자동차 공장 근로직을 은퇴한 이스트우드가 혼자 사는 동네는 디트로이트의 하일랜드 팍이다. 이곳은 크라이슬러 본부와 포드 공장이 있던 장소로 2000년에 1만6,000명이던 인구가 2010년에는 1만1,000명으로 줄었다.
과거 백인 블루칼러들이 살던 곳이었으나 이들이 교외로 빠져나가면서 그 자리를 아시안들이 메우고 있다. 영화는 보수적인 이스트우드의 자기 집 주위의 아시안들과의 갈등과 화해 그리고 아시안 갱을 상대로 한 M1 단신대결을 극적으로 잘 그렸다. 그리고 에디 머피가 물 떠난 물고기 형사 노릇을 하는 ‘베벌리 힐스 캅’의 액셀 폴리의 고향도 디트로이트다.
디트로이트는 프로농구 피스톤스의 홈으로 1980년대 말 포인트 가드 아이제야 토머스가 뛸 때 두 번이나 챔피언을 차지했지만 요즘 실력은 그저 그렇다.
요즘 풀 죽은 디트로이트 시민들의 사기를 그나마 북돋워줄 수 있는 것은 프로야구 타이거스의 승전보일 것이다. 타이거스 하면 대뜸 생각나는 선수가 강타자 아웃필더 타이 캅인데 캅의 얘기는 타미 리 존스 주연으로 ‘캅’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캅 못지않게 타이거스를 빛낸 사람이 고 스파키 앤더슨 매니저일 것이다. 단단하게 생겼으면서도 인자한 모습을 한 앤더슨은 1979~1995년 매니저로 활약하면서 1984년 팀을 월드시리즈 챔피언으로 올려놓은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지금 타이거스가 도시의 기운과는 달리 맹활약, 아메리칸리그 센트럴 디비전 1위를 달리고 있다. 갓 블레스 디트로이트!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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