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소식을 들은 것은 마침 우리 가족이 LA공항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뉴욕에 사는 딸의 가족이 LA에서 휴가를 보내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사고경위나 규모가 채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 우리는 사고 장소가 LA공항이 아니라는 사실에만 안도했다. 공항이 폐쇄되어 비행기 탑승에 차질이 생길 경우 갖가지 크고 작은 불편들을 감수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속속 전해지는 속보를 보니 사고는 한가하게 ‘불편’ 따위를 말할 수준이 아니었다. 꼬리가 잘려나간 채 내동댕이쳐진 비행기 몸체 뒤로 거대한 검은 연기가 콸콸 치솟고 그에 비하면 개미처럼 작은 사람들이 죽을힘을 다해 대피하고 있었다. 화염에 휩싸인 동체가 혹시라도 폭발한다면 그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음의 마수에 빨려 들어갈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다행히 비행기는 폭발하지 않았고 인명피해는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참하게 부서지고 시커멓게 불탄 비행기 잔해는 한가지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죽음은 의외로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다.
죽음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을 향해 다가간다”는 정도이다. 하지만 때로 죽음은 우리가 다가가기를(나이 들기를) 기다리지 않고 한순간에 덮친다. 사고로 희생된 두 중국 여고생의 가족들이 절감했고, 아직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을 탑승자들이 실감했으며, 24시간 뉴스채널 덕분에 생생하게 사고를 목격한 우리 모두가 깨달은 사실이다.
가족들과 함께 여행길에 올랐던 한 남성은 이번 사고가 “온가족이 삶의 중요성을 분명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죽음이 턱밑까지 다가든 듯 가깝게 느낀 결과일 것이다.
비행기 사고에서 생사를 가르는 골든타임은 90초라고 한다. 90초 내에 대피하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90초가 지나면 죽을 위험이 높다는 말, 죽음은 90초 바깥까지 다가와 있다는 말이 된다. 그날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면서 승객 중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일이다.
삶과 죽음이 다급하게 가까이 붙어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비유가 불교의 안수정등(岸樹井藤) 이야기이다. 어떤 사람이 광야를 지나다가 사나운 코끼리에 쫓겨 언덕 아래의 우물 속으로 피신한다. 위로부터 늘어져있어 넝쿨을 잡고 버티는데 우물 속이라고 안전한 게 아니다. 아래에서는 4마리의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며 그가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위에서는 흰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넝쿨을 쏠고 있다.
그런데 그 순간 위에 있던 벌집에서 꿀이 떨어지자 그는 꿀맛에 취해 자신의 위태로운 처지를 까맣게 잊는다. 넝쿨은 생명줄, 흰쥐와 검은 쥐는 낮과 밤의 시간을 의미한다. 죽음은 그렇게도 가까이 있는데 중생은 순간의 욕망에 취해 눈먼 삶을 살고 있다는 비유이다.
갑작스런 죽음들이 요즘은 유난히 많은 것 같다. 흰쥐와 검은 쥐가 넝쿨을 갉아서 끊어버릴 나이가 아닌 데도 사고로, 질병으로 죽는 케이스들이 적지 않다. 노후 대비하겠다며 일만 하던 사람이 은퇴자금 한푼 못 쓰고 덜컥 쓰러지고, 평생 고생만 하다가 먹고 살만하니 암에 걸려 안타까운 케이스도 있다. 지난해에는 두 친구가 40대의 동생들을 암으로 잃더니 지난달에는 딸의 친구가 30대 중반에 역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찾아들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사람을 ‘네 개의 방이 있는 집’에 비유하는 속담이 있다. 러머 고든이라는 영국의 여류작가 가 인도의 속담을 소개하며 이를 그의 자서전 제목으로 삼았다. 사람은 육체, 정신, 감정, 영혼이라는 네 개의 방으로 되어 있어서 매일 각 방에 들어가 살펴야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어느 한 방에 틀어박혀 사느라 다른 방들을 방치해서 문제가 생긴다. 감정의 방이 미움과 회한의 잡초로 무성할 수도 있고, 영혼의 방에 먼지가 그득해 앞이 안보일 수도 있다.
지금 죽음을 맞는다면 어떤 후회를 할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성공 강박증이 심한 사회, 그래서 잠시라도 손 놓고 있으면 괜히 불안한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삶은 늘 분주하고 복잡해서 가족들조차 얼굴 마주하기 힘들 정도이다. 덕분에 가진 것은 많아졌지만 상대적 결핍감에 만족은 없다.
죽음이 닥치면 놓고 갈 것들, 소유의 비중이 너무 커졌다. 존재에 시선을 돌려야 하겠다. ‘네 개의 방’ 모두 잘 정돈되어 있는지 살펴보자. 삶과 죽음의 사이가 그렇게 먼 것이 아니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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