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 네 가지가 있다고 했다. 측은해 하는 마음, 부끄러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그리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맹자의 사단(四端) 인의예지는 여기서 출발한다.
차마 모질게 하지 못하는 측은(惻隱)의 마음에서 인(仁), 의롭지 못하면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수오(羞惡)의 마음에서 의(義), 겸손하게 양보하는 사양(辭讓)의 마음에서 예(禮), 그리고 옳음과 그름을 판단하는 시비(是非)의 마음에서 지(智)가 싹튼다고 했다. 맹자는 특히 군주 즉 국가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인과 의를 꼽았다. 지도자가 어질고 의로운 마음을 구체적 현실에 적용하며 정치를 펼쳐나간다면 국민은 편안하고, 나라는 안정될 것이다.
그런 지도자 찾기가 요즘 참으로 어렵다. 이민1세들의 마음이 쏠리는 한국이나 몸담고 사는 미국이나 정치판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특히 최근 한국에서는 독단과 폭주, 후안무치와 이전투구가 끝도 없이 이어져 보고 있기 역겹다. 인의예지와는 담을 쌓은 모습들이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던, 존재만으로도 빛나던 몇몇 지도자들이 그립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는 조지 워싱턴과 에이브라함 링컨이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인 독립과 노예해방을 성취한 인물들이다. 독립전쟁을 이끌고 신생 미합중국의 기틀을 잡은 워싱턴은 국민들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국민들은 그를 군주처럼 아버지처럼 추앙했다. 말 그대로 국부였다.
반면 링컨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가난한 환경에서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고 정치인이 된 그는 질시와 조롱, 비난과 증오를 달고 살았다. 노예제 종식이라는 거대과제 앞에서 나라는 둘로 갈라졌고, 링컨이 지휘하는 연방 내에서도 해방노예 대우 문제로 사사건건 의견이 대립했다. 이쪽에서 보기에 링컨은 너무 급진적이고, 저쪽에서 보기에 그는 너무 느리고 우유부단했다. 온갖 다름에 지칠 법도 한데, 그 모두를 현실로 품어 안으며 가장 현실적 관점에서 이편과 저편을 설득하며, 함께 나아갈 길을 모색한 데 그의 위대함은 있다. 성의를 다해 다름을 다독이며 조율하는 태도야말로 그의 성공의 원천, 정치의 기술이었다.
당시 링컨은 사방에서 비난을 받았다. 백인사회는 흑인을 왜 동등하게 대해야 하는 지 납득하지 못했고, 노예제 폐지운동 진영에서는 왜 흑인의 평등을 당장 보장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얽힌 마음들을 링컨은 진솔함으로 풀어냈다. 프레드릭 더글러스의 만남도 그 한 예이다.
메릴랜드에서 노예였던 더글러스는 북부로 탈출한 후 노예제 폐지 운동에 앞장섰다. 탁월한 웅변가이자 저자, 신문발행인으로서 흑인사회 내 그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링컨에 대한 그의 입장은 지지와 비난을 반복했다. 기대가 크니 실망도 큰 탓이었다.
1861년 남북전쟁이 터지자 흑인사회는 희망에 부풀었었다. 링컨이 즉각 노예해방령을 선포할 줄 알았다. 하지만 링컨은 마냥 뜸을 들였다. 더글러스는 그를 위선자라고 비난했다. 1862년 9월 링컨이 마침내 노예해방 선언을 하고 다음해부터 시행되자 더글러스는 해방노예들의 북군 입대를 독려했다. 노예해방전쟁에 참전하면 노예제를 뿌리 뽑는 데 일조하니 좋고, 시민 될 자격도 증명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했다. 아울러 군대에서 흑인은 백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고 그는 자신의 명성을 걸고 확약했다. 당시 그의 두 아들도 입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흑인병사는 봉급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차별을 받았다. 똑같이 남군 포로가 되어도 백인은 전쟁포로로 안전을 보장받지만 흑인은 처형되었다. 여러 전투에서 흑인군대는 대학살을 당하기도 했다. 흑인병사가 처형될 때마다 남군포로를 처형하는 보복정책이 필요하다고 흑인군대는 요구했다. 하지만 링컨은 또 감감 무소식이었다.
더글러스는 링컨을 만나 담판을 짓기로 했다. 1863년 8월 10일 백악관을 찾은 더글러스를 링컨은 더할 수 없이 따뜻하게 맞았다. 그가 자신을 맹비난한 연설문을 읽었다며 자신이 매사 뜸을 들일 수밖에 없는 정치현실을 설명했다. 백인들의 뼛속 깊은 편견이 문제였다. 흑인을 북군에 받아들이는 자체만으로도 반발이 너무 커서 백인과 같은 군복을 입게 하는 간단한 일을 결정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흑인에 대한 편견이 깊은 백인들, 기대대로 되지 않아 실망하는 흑인들 - 링컨은 양측을 달래며 곡예 하듯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갔다. 해방노예들이 북군으로 싸우면 남부 연맹은 일꾼을 잃으니 손해고 북부 연합은 병사를 얻으니 일거양득이라고 백인들을 설득하고, 당장 평등정책을 시행하면 백인사회의 반발이 너무 커서 오히려 일을 그르친다고 흑인들을 달랬다.
때가 무르익기를, 공감대가 형성되기를 기다리며 느리지만 확실하게 그리고 함께 전진하는 것이 링컨의 실용주의적 접근법이었다. 백악관 회동 후 더글러스는 링컨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
정치란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 가능해지는 것. 아무리 높은 이상을 가져도 사람들이 외면하면 뜻을 펼칠 수 없다. 어질고 의롭게 반대자들을 다독이고 지지자들을 품어 안을 때 통합은 이뤄지고 정치는 가능해진다. 정치의 고수, 링컨이 보여준 정치의 기술이다.
<
권정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국가지도자에게 필요한덕목으로 "인과의"를 꼽았다... 글귀에서 요즘엔 미국과 한국에선 인과의는 커녕 선동질과 음모론 그리고 폭력조장으로 가득찬놈들이 대통하겟다고, 염병들을 하니..이런니미~ 나라를 다스려야할놈이 자기 몸뚱아리도 못다스려, 돼지처럼 살찐데다, 스지도않는 물건으로 돈주고 떡이나 치러다니고, 그걸 숨기려고 회계장부 조작하고, 세상종말이 곧 올것같다는 느낌.
압색이나 날리는 멧돼지한테 우이독경이 안타깝네. 윤짜장한테 링컨을 기대하기는 좀 그렇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