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니 뎁은 과연 아메리칸 인디언인가. 피부색이 약간 가무스레한 자니는 자기가 체로키나 크리인디언 피를 가졌다고 말하지만 그 것이 사실로 확인된 바는 없다. 설사 그가 자기 말대로 인디언의 먼 후손이라고 한들 그를 인디언이라고 볼 사람도 없다.
그런데 자니는 지난 달 뉴멕시코주 산타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마치 자기가 100% 인디언이나 된다는 듯이 인디언 자랑을 늘어 놓았다. 3일 개봉된 웨스턴 ‘로운 레인저’에서 코맨치 인디언 톤토(사진)로 나온 자니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미국을 인도라고 생각한 콜럼버스를 “x킹 덤 애스”라고 욕을 해대면서 인디언들을 학살한 미국인들과 그들을 일차원적으로 묘사한 할리웃을 싸잡아 비난했다.
나는 그런 자니를 보면서 영화배우들은 자기가 나온 영화 선전을 위해서라면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하고 그의 인디언 대변인 노릇에 혀를 찼다.
백인 자니가 인디언 역을 한 이 영화 때문에 할리웃에선 다시 한번 ‘백인 인디언’에 대한 시비가 있었다. 인터뷰 때도 이 문제가 거론됐는데 이에 대해 영화를 감독한 고어 버빈스키는 “자니의 연기력을 따라갈 만한 아메리칸 인디언 배우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러나 그 건 괜히 하는 소리고 자니가 톤토로 나온 것은 순전히 흥행 때문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자고로 할리웃은 흥행을 위해서라면 인종묘사를 비롯해 역사까지 자기 멋대로 바꿔 왔다. 할리웃은 무성영화 때부터 유색인종 묘사에 백인을 써 왔는데 특히 웨스턴 전성기인 1950년대 많은 백인 배우들이 인디언 역을 했다.
록 허드슨(윈체스터 ‘73)과 찰스 브론슨(북 소리)과 오드리 헵번(언포기븐)을 비롯해 빅터 마추어(추장 크레이지 호스) 및 척 노리스(제로니모) 등이 다 인디언 노릇을 한 배우들이다. 당시 스크린에 묘사된 인디언들은 대부분 할리웃의 상투적인 수법대로 일차원적이거나 인종차별적인 우스꽝스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가끔 백인 이주자들에 대항해 싸우는 인디언들이 긍정적이거나 동정적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이런 영화들 중에 가장 훌륭한 것이 제프 챈들러가 용맹한 아파치 추장 코치즈로 나온 ‘부러진 화살’이다. 챈들러는 이 역으로 오스카 조연상 후보에 올랐었다.
그리고 버트 랭카스터가 아파치족의 마지막 용사 마사이로 나온 ‘아파치’와 로버트 테일러가 남북전쟁에 참전했다가 귀향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 동족을 위해 싸우는 인디언으로 나온 ‘악마의 문턱’도 인디언 편을 든 영화들이다.
진짜 인디언 배우들도 더러 있었는데 이들 중 역사에 남을만한 사람이 북밴쿠버가 삶의 터전이었던 치프 댄 조지다. 그는 시인이자 작가요 배우였는데 더스틴 호프만이 나온 웨스턴 ‘리틀 빅 맨’에 나와 오스카 조연상 후보에 올랐었다.
그리고 존 포드의 웨스턴 ‘역마차’에서 인디언의 습격을 받고 질주하는 역마차의 말에 올라 타는 아슬아슬한 스턴트를 보여준 야키마 카눗도 유명한 인디언 스턴트맨이다.
그런데 산타페에서 내가 묵은 호텔방에 들어가니 침대 위에 치프 댄 조지가 쓴 시 ‘러브’가 놓여 있다.
‘사랑은 당신과 내가 소유해야할 무엇이다/우리는 그 것을 가져야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혼이 그 것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우리는 그 것을 가져야한다. 왜냐하면 그 것이 없으면 우리는 약해지고 가냘퍼지기 때문이다/ 중략/그 것과 함께 우리는 지칠 줄 모르고 행진한다/그 것과 함께 오직 그 것과 함께만 우리는 남을 위해 희생할 수가 있다.’ 그의 글을 읽는 마음이 숙연해졌다.
할리웃은 과거 인디언 뿐 아니라 아시안 역에도 백인들을 썼다. 펄 벅의 소설이 원작인 ‘대지’에서는 중국인 시골부부로 각기 폴 뮤니와 루이즈 레이너가 나와 레이너는 오스카 주연상까지 탔다. 물론 많은 아시안들도 인디언들처럼 우수꽝 스럽게 그려졌는데 그 중에서도 최악의 묘사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의 미키 루니의 꼴. 알이 큰 뿔테 안경을 쓰고 뻐드렁니를 한 그가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면 지금도 같은 아시안으로 모욕감에 피가 거꾸로 흐른다.
이런 할리웃의 유색인종에 대한 상투적 묘사 때문에 자니 뎁도 톤토역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런 노력이 주효했는지 영화를 본 코만치 리더 코피는 영화에 크게 만족했다는 것이 자니의 전언. 이 영화를 계기로 자니는 코만치족에 입양이 됐는데 그의 인디언 이름은 ‘마우메’. 자니는 “내 이름은 ‘모양을 바꾸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자랑했다.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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