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콜럼보도 좋아한 웨스턴하면 대뜸 생각나는 배우가 존 웨인이지만 나는 지난 1950년대 중반 여러 편의 걸작 웨스턴에 나온 글렌 포드를 좋아한다. 나는 중고등학생 때 서울의 2류 극장을 전전하면서 포드의 웨스턴 ‘주발’ ‘살아 있는 가장 빠른 총’ ‘3:10 유마행 열차’ ‘카우보이’ 및 ‘양치기’ 등을 봤는데 그 중에서도 ‘3:10 유마행 열차’를 보면서 느꼈던 깊은 감동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생전에 진가를 제대로 평가 못 받은 웨스턴의 대가인 델머 데이브스로 그는 이 영화 외에도 포드와 함께 ‘주발’과 ‘카우보이’ 등을 만들었다. 그는 이 밖에도 ‘교수목’과 ‘부러진 화살’ 및 ‘마지막 역마차’ 같은 훌륭한 웨스턴을 만들었다.
자기 영화들 중에서 포드가 가장 좋아했던 ‘3:10 유마행 열차’(3:10 to Yuma·1957·사진)는 흑백촬영과 연기가 아름답고 뛰어난 심리 웨스턴이요 부부애에 관한 드라마이자 선과 악의 애매모호한 경계를 살펴본 도덕극이며 또 인물의 성격을 탐구한 영화다. 원작은 엘모 레너드의 소설.
군더더기 없는 강건하고 사납고 서스펜스 가득한 영화로 게리 쿠퍼가 나온 ‘하이 눈’과 유사한 데가 많다. 압축된 시간 내 일어나는 죽음을 각오한 남자의 결의와 초조감 엄격한 흑백촬영 그리고 반복되는 우울하고 불길한 주제가를 비롯해 지평선을 향해 뻗은 철로 등이 서로 닮았다. 주제가는 ‘O.K. 목장의 결투’ 등 여러 웨스턴의 주제가를 부른 프랭키 레인이 불렀는데 그는 ‘교수목’의 주제가도 불렀다.
레인의 우렁찬 목소리가 흐르는 중에 카메라가 롱샷으로 애리조나의 광야를 달려오는 역마차를 찍은 메인타이틀 장면이 광야와 하늘의 고독을 시적 이미지로 화면 가득히 담는다. 데이브스는 롱 샷과 크레인 샷을 자주 써 자연과 그 안의 인물들을 극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인자하고 품위 있는 아내 앨리스와 두 어린 아들을 둔 작은 목장주 댄 에반스(밴 헤플린-‘셰인’)는 3년 가뭄에 급전 200달러가 필요한데 이 돈 때문에 총이란 쏠 줄도 모르는 그가 카리스마 있는 악명 높은 역마차강도단 두목 벤 웨이드(포드)의 호송임무를 맡는다.
벤의 졸개들이 집요하게 뒤를 따르는 중에 댄은 수갑을 찬 벤을 교도소가 있는 유마행 열차가 떠날 마을까지 호송, 열차가 도착할 오후 3시10분까지 호텔방에서 기다린다. 영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이 호텔방에서의 댄과 벤의 신경전이 숨이 막힐 정도로 긴장감 있다.
가족과 목장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 댄을 간교하기 짝이 없는 벤은 교활한 미소와 함께 뱀의 혀를 놀리며 계속해 유혹한다. “7,000달러를 줄 테니 날 놓아 달라. 그렇지 않으면 넌 결국 죽고 만다”는 벤의 설득과 협박을 댄은 단호히 물리친다. 그러나 댄의 이마에선 진땀이 흐르고 얼굴에는 두려움이 그늘을 짓는다. 영화는 이렇게 남자의 자존심과 용기와 명예 그리고 양심과 비겁과 체면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마침내 열차가 수증기를 내뿜으며 기적을 울리면서 정거장에 도착, 댄은 샷건을 벤의 등에 대고 호텔을 나와 정거장으로 향한다. 둘의 뒤를 벤의 졸개들이 따라 붙는다. 상황이 급반전을 이루며 끝이 난다. 그리고 긴 가뭄 끝에 비가 내린다. 이 영화는 지난 2007년 러셀 크로우(벤 역)와 크리스천 베일 주연으로 리메이크 됐었다.
반세기 배우생활에 100여편의 드라마와 웨스턴과 느와르와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던 포드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가 절정을 이룬 작품이다. 얇은 입술에 간사한 미소 그리고 독기를 품은 냉정한 눈의 쿨한 포드가 카우보이모자를 눈 바로 아래까지 내려 쓰고 조용한 음성으로 마치 타이르기라도 하듯이 안절부절 못하는 헤플린을 어르고 위협하는 모습이 마치 독사가 먹이를 노리는 것 같다. 헤플린의 꾸밈 없는 연기도 좋다.
그러나 벤은 사악한 킬러인데도 밉지 않은 악인이라는 점이 그의 매력이다. 그는 선과 악의 경계를 흐려놓는 야누스적 인물로 우리는 악인인 그를 오히려 응원하게 된다. 그런데 처음에 댄 역이 포드에게 주어졌으나 포드가 이를 거절하고 악역을 맡았다. 호남 포드로선 보기 드문 악역이다. 생전 한식을 즐긴 포드는 웨스턴을 좋아했는데 한 인터뷰에서 “웨스턴은 영어를 몰라도 그 내용을 알 수가 있다”면서 “이젠 턱시도를 입는 것이 매우 불편하다”고 말했다.
‘3:10 유마행 열차’와 함께 ‘주발’(Jubal·1956)이 크라이티리언에 의해 DVD와 블루레이로 나왔다. 포드와 어네스트 보그나인 및 로드 스타이거가 나오는 ‘주발’은 질투와 배신이 판을 치는 셰익스피어적인 심리 웨스턴이자 멜로드라마. 떠돌이 카우보이와 그를 고용한 사람 좋은 촌뜨기 목장주 그리고 화냥기 짙은 목장주의 아내와 이 여자를 탐내는 또 다른 카우보이가 뒤엉켜 엮는 흥미진진한 작품으로 총 천역색 시네마스코프 촬영과 연기 빼어나다. 그런데 ‘3:10 유마행 열차’와 ‘주발’에서 포드의 여자로는 모두 펠리시아 파가 나온다.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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