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는 고색창연했다. 낡아 빠져 무너질 것 같았는데 마치 버팀목으로 찬란했던 과거를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세인트 피터스버그를 방문했을 때처럼 부식미와 그 냄새가 몰락한 귀족의 자태를 연상케 했다. 도시는 아직도 채 공산체제의 때를 다 씻어내지 못한 듯 궁색해 보였다.
부다와 페스트를 가로 지르는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는 오히려 이런 모자람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도도했다. 강가에 서니 슈트라우스의 월츠가 귓전을 맴돈다.
한 때 하이든을 전속 음악가로 고용해 먹여 살린 귀족 에스터하지의 나라요 중부 유럽을 독차지 했던 막강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파트너의 시름시름 앓는 듯한 자태를 보면서 역사의 무상을 느꼈다.
이 달 초 올 가을시즌에 NBC-TV가 방영할 섹시하고 어둡고 화려한 미니 시리즈 ‘드라큘라’의 촬영 현장 방문차 부다페스트에 들렀다.
시내관광에 나선 우리와 동행한 안내원은 “나라가 자꾸 줄어들고 있다”며 쓴 미소를 지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때에 비해 나라 면적은 3분의 1로 줄었고 이혼율은 높은 반면 출산율은 낮고 이민자는 거의 없어 인구가 자꾸 줄어들고 있다고 걱정했다.
나라 걱정하기는 우리를 환영한 페렝크 쿠민 수상실 국제교류 담당 차관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는 인구가 계속해 줄어 곧 있을 선거에서 의회 의원 수도 현 400명에서 절반으로 줄인다고 알려줬다. 헝가리의 현재 총 인구는 990만명 정도로 개인당 월수입이 600유로라고.
이렇게 나라 걱정을 하던 쿠민은 굴라쉬를 곁들인 저녁식사 자리에서 날 보고 “북한의 핵공격 위협이 염려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나는 “당신네 주 북한 대사관에서 힘 좀 써 주세요”라고 대답했더니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우리 말 들을 나라가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부다페스트에는 세월의 굳은 살들이 겹겹으로 쌓인 품위 있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즐비해 도시 전체가 영화 세트장이다. 브루스 윌리스가 나온 ‘다이 하드’ 시리즈 제5편도 러시아가 무대인데도 여기서 찍었다. 옛 유럽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데다가 인건비가 싸 할리웃은 여기서 영화를 많이 찍는데 이런 도시 대여 값이 나라 경제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도시 한복판의 ‘드라큘라’를 찍는 건물도 나이 먹은 귀부인처럼 기품은 있지만 금방 주저앉을 것처럼 낡고 음습해 안으로 들어가자니 한기마저 느껴졌다. 시리즈 분위기에 딱 맞는 장소다.
이렇게 오래된 궁전 같은 건물들을 호텔업자들이 매입, 고급 호텔로 개조했는데 우리가 묵은 보스콜로 호텔도 19세기에 지은 것이다. 그리고 드라큘라로 나오는 조나산 리스 마이어스를 인터뷰한 다뉴브 강변의 포시즌스 호텔도 나이가 100년이 넘는다.
보스콜로 호텔의 식당은 마치 중세 귀족의 저택처럼 화려한 천장 벽화와 정교한 장식들로 치장을 했는데 조반부터 피아니스트가 미국의 팝 스탠다드를 친다. ‘사우스 오브 더 보더’와 ‘웬 아이 폴 인 러브’를 들으면서 어딘가 헝가리 제국과는 너무 소원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를 가나 미국의 문화가 침투하지 않은 곳이 없다.
미국은 ‘드라큘라’에 나온 헝가리 배우들의 동경의 나라였다. 부다페스트 일정을 마치고 시리즈 캐스트들과 쫑파티를 하는 자리에서 배우들은 할리웃이 있는 LA에 사는 우리들을 부러워했다. 우리는 ‘드라큘라’가 당신들의 할리웃 진출의 계기가 되기를 비란다고 그들을 격려했다.
쿠민 차관은 일요일인데도 우리의 안내를 맡아 다뉴브 강변의 문을 닫은 의사당을 열고 구경 시켜 줬다. 위풍당당한 의사당은 정치 터라기보다 거룩한 성당 같았다. 빨간 벨벳 의석을 비롯해 황금빛 기둥과 벽 그리고 전 내부가 광채를 내면서 화려함을 뽐낸다. 너무나 웅장하고 아름다워 한 눈 팔다가 국정 논의에 차질이나 있지 않을까 하고 공연한 걱정을 했다.
‘배고픈 나라’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헝가리를 내가 필름으로 처음 본 것은 중학생 때. 극장에서 본 1956년에 일어난 부다페스트 대학생들의 공산정권에 대한 격렬한 봉기를 담은 뉴스필름을 통해서였다. 부다페스트 시내를 구경하다가 당시 봉기 때 시민들을 향해 사격한 소련군의 총알 흔적에 검은 강철공을 박아 놓은 건물 앞을 지나갔다. 강철공이 십자가의 아픔과도 같은 핏자국 같았다.
숙소로 돌아가는데 햇볕 아래 오수를 즐기고 있는 다뉴브강 둑에 누군가들 벗어 놓은 구두들이 일렬횡대로 놓여 있다(사진). 2차 대전 때 나치가 유대인들을 이곳에 데려와 구두들 벗긴 채 사살한 것을 추념하고 있었다. 귀국해서도 ‘드라큘라’보다 인간의 살육기를 드러낸 건물 벽의 강철공과 다뉴브강 둑의 구두들이 더 자꾸 생각났다.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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