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6.25 때 납북된 나의 아버지가 내 여동생에게 지어준 영어 이름이 단테의 연인 이름 베아트리스였다. 난 프랭클린.
단테가 베아트리스를 처음 보고 반했다는 플로렌스의 아르노 강을 가로지르는 베키오 다리에 인접한 보르고 산 자코포 식당에서 레드와인을 마시다 보니 아버지 생각이 문득 났다. 홍시 빛으로 지는 해 때문인지 레드와인의 취기가 강렬한데 황혼을 온몸에 받은 베키오 다리와 주위 풍경이 명암이 극적 대조를 이룬 짙은 물감으로 그린 한 폭의 그림이다.
지난 2일부터 한 열흘간 플로렌스와 베를린 그리고 부다페스트를 다녀왔다. 이탈리아 행은 지난 12일부터 방영이 시작된 케이블TV 스타즈의 새 시리즈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젊은 시절을 그린 ‘다 빈치의 악마들’의 현장 방문 차였다. 시리즈는 웨일즈에서 찍었는데도 플로렌스로 초대 받은 이유는 이 도시가 다 빈치의 활동무대였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의 본향인 플로렌스(이탈리아명 피렌체)는 부활절 연휴를 맞은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한 때 여자 감옥이었던 7세기에 지은 비잔틴 양식의 팔리아차 타워의 잔해에 붙여 만든 숙소 브루넬레스키 호텔처럼 도시는 온통 고물시장 같이 늙어 쇠잔한 모양이다.
건축가 브루넬레스키가 돔을 지은 두오모 성당도 다 빈치가 벽화를 그린 플로렌스의 장사꾼 통치자 메디치의 저택 팔라초 베키오도 모두 지나간 영광처럼 공허하다. 안내원 라파엘라에 의하면 콧대 높고 다양한 장르에 재능이 뛰어났던 다 빈치는 후배로 팔라초 베키오의 벽화를 함께 그린 미켈란젤로를 환쟁이 취급, 알기를 우습게 알았다고 한다.
언덕이 많은 터스카니 지방에 자리한 플로렌스에서 서쪽으로 차를 타고 1시간가량 떨어진 빈치시의 언덕 꼭대기에 있는 다 빈치의 생가는 보잘 것 없는 돌집(사진). 마구간을 들여다보자니 다 빈치가 그린 마구간에서 태어난 예수의 ‘최후의 만찬’이 생각났다.
우리를 환영 나온 다리오 파리니 빈치 시장에 따르면 도시 인구는 총 1만5,000명 정도. 이 지방의 특산물 중 하나가 키안티인데 이 포도주는 식인 시리얼 킬러 한니발 렉터가 인간의 간을 안주로 즐긴 술이다. 그런데 우리의 안내자는 이탈리아를 대변하는 세 단어는 첫째가 차우 둘째는 피자 그리고 셋째가 키안티라고 알려 줬다.
다 빈치가 세례를 받은 성당을 거쳐 다 빈치 뮤지엄에 들어서니 천장에 시리즈에도 나온 커다란 날개 모양의 비행체 모델이 매달려 있다. 나는 이 모델을 보면서 다 빈치가 오만한 이카러스가 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했다.
라파엘라의 말처럼 다 빈치는 미술가라기보다 과학자요 발명가인데 뮤지엄의 그가 고안한 탱크와 잠수복과 다총열 기관총 등을 보면서 다 빈치가 시대를 훨씬 앞서간 미래에 산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라파엘라는 다 빈치가 골이 깨어질 정도로 비전이 많았던 천재라고 자랑했다. 사생아 천재이니 드라마 주인공으로 안성맞춤이다.
플로렌스 일정은 또 다른 언덕 꼭대기에 있는 15세기에 지은 수도원을 개조한 빌라 산 미켈레 호텔에서의 시리즈 제작자와 배우들과의 인터뷰로 끝났다.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정문을 빠져 나오니 저 아래로 플로렌스가 마치 고전처럼 아득하니 절경이다.
플로렌스 여행서 내가 잠시나마 경건한 경험을 한 것은 도착 첫날밤 어느 한 성당에서였다. 고색창연한 식당 라 지오스트라(회전목마)에서 포도주와 함께 스파게티를 먹고 빗길에 숙소로 돌아가는데 길가 성당에서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들려 왔다.
촛불 전구가 어둠을 채 밖으로 밀어내지 못한 캄캄한 성당 내 벤치에 앉아 오르간 소리를 들으니 신의 영광을 위해 작곡한 바흐의 오르간 음악이 떠올라 마음이 숙연해졌다. 아니 바흐가 아니라 빈센트 프라이스의 공포영화의 음악이 연상돼 으스스한 공포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플로렌스는 내가 좋아하는 사랑의 노래 ‘세프템버 송’이 나오는 영화 ‘세프템버 어페어’(1950)의 장소이기도 하다. 로마 여행 후 미국으로 귀국 길에 사무착오로 여객기 추락 사망자 명단에 오른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건축가 데이빗(조셉 카튼)과 콘서트 피아니스트 마니나(조운 폰테인)가 자신들의 과거를 묻고 사랑의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곳이다. 그러나 영화는 둘의 이별로 끝난다.
이번 여행서 내가 또 한 번 깨달은 것은 나의 무지였다. 다 빈치하면 냇 킹 코울이 “당신은 신비한 미소를 지닌 여자”라고 찬양한 ‘모나 리자’를 그린 흰 수염이 길게 난 할아버지(그런데 왜 다 빈치의 젊은 초상화는 없을까) 정도로 알았던 나의 무지. 최근 들어서는 댄 브라운과 탐 행스의 ‘다 빈치 코드’ 때문에 괜히 그를 잘 아는 것처럼 생각했던 나의 무지.
라파엘라의 다 빈치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나의 지식의 천박함이 부끄러워 혼자서 쩔쩔맸다. 이런 경험은 외국 여행 때마다 느끼는 것이다. 이런 지식 갖고는 죽었다 깨어나도 다 빈치 코드를 풀기는 틀렸다.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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