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클어진 모래빛 머리의 키다리 갈비씨 피아니스트 밴 클라이번이 지난달 27일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자택에서 78세로 영면했다. 나는 이 뉴스를 듣자마자 RCA 빅터가 출반해 무려 300만장이 팔린 클라이번이 치고 키릴 콘드라신이 RCA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협주곡 제1번을 계속해 몇 차례 들었다.
로맨틱하다. 예술적 쇼맨십이 느껴지는 기교가 뛰어난 연주로 강할 때는 질풍노도와도 같고 약할 때는 여인의 섬섬옥수와도 같은데 음량은 넘치도록 가득하고 음색은 다양하다. 사람의 마음을 격정으로 뒤흔들어 놓는 연주로 들을 때마다 전기충격을 받는 듯이 아찔하다.
차이코프스키의 많은 음악들은 매우 감상적이고 멜로디가 고와 팝송으로도 편곡됐는데 이 피아노협주곡도 ‘투나잇 위 러브’라는 노래로 만들어졌다. 카테리나 발렌티가 부르는 노래가 좋다. 또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도 ‘디스 이즈 더 스토리 오브 어 스타리 나잇’으로 편곡돼 델라 리스가 우렁차게 부른다.
클라이번은 미소 간 냉전이 한창일 때인 지난 1958년 4월 23세 때 모스크바서 열린 제1회 차이코프스키 경연대회에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협주곡 제1번을 쳐 1등상을 탔다. 미소가 서로 핵의 공포와 불안감에 사로 잡혀 치열한 적대감정으로 맞서고 있을 때 텍산이 적지에서의 첫 번째 대회에서 1등을 한 것은 음악사에 길이 남을 센세이셔널한 사건이었다.
당시 미국은 반년 전 소련이 먼저 쏜 인공위성 스푸트닉 때문에 코가 납작해져 있을 때여서 클라이번의 이 문화적 소련 정복은 더 값진 것이었는데 그래서 클라이번은 ‘아메리칸 스푸트닉’이라고 불렸다.
클라이번이 결선에 올랐을 때는(19개국에서 49명 참가) 그의 연주에 완전히 매료된 모스크바 시민들이 클라이번을 ‘바냐’와 ‘바뉴샤’ 및 ‘바니치카’라는 애칭으로 부르면서 응원을 했는데 결선 연주장은 1,500여명의 청중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사진)
클라이번이 콘드라신이 지휘하는 모스크바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반주로 협주곡 연주를 마치자 청중들은 일제히 “1등! 1등!”을 외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가 두 번째로 친 곡은 기교적으로 연주하기가 엄청나게 힘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제3번.
그런데 소련과 소련 위성국들의 심판들은 미국인에게 1등상을 줬다가 보복이나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문화성 장관이 이 문제를 직접 당시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흐루시초프에게 들고 갔다. 흐루시초프는 장관에게 “전문가들이 뭐라고 그래? 그들이 최고라면 1등상을 줘야지”라고 허락했다는 후문이다.
클라이번은 귀국해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마치 구국 영웅처럼 티커 테입 카퍼레이드 속에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의 인기는 록가수보다 더 높았는데 귀국 후 20년간 매년 100회의 콘서트를 가지면서 주로 자신의 간판곡이 된 차이코프스키와 함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했다.
그래서 평론가들로부터 연주곡목을 넓히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런 과도한 연주 일정에 지쳐 지난 1978년 은퇴했다. 클라이번은 지난 1990년대 중반 컴백을 시도, 순회공연에 나섰으나 매우 보잘 것 없는 비평을 받았다.
내가 클라이번이 치는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제1번 연주를 들은 것도 이 때였다. 그가 지난 1994년 할리웃 보울서 연주했을 때 나는 거금을 들여 가족과 함께 콘서트에 참석했다. 감회가 컸다.
그런데 병약해 보이던 클라이번은 차이코프스키를 친 뒤 몸이 불편하다면서 두 번째 연주곡인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을 포기했다. 그는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한 뒤 쇼팽과 슈만과 리스트의 곡을 연주했다. 그가 60세가 되던 해로 자니 마티스가 무대에 올라 클라이번에게 커다란 카우보이모자를 씌워주면서 “해피 버스데이 투 유”를 선창하며 청중의 합창을 유도했다. 나도 따라 불렀다.
내가 클라이번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에 남달리 애착을 갖는데 나름대로의 센티멘털한 이유가 있다. 나는 6.25가 나기 직전 집에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전쟁통에 피아노를 포기해야 했다. 그 후 중학생 때 서울의 명동극장에서 본 영화가 시작되기 전 돌리는 리버티 뉴스에서 클라이번의 모스크바 연주와 뉴욕 카퍼레이드 장면을 보면서 음악과 함께 학처럼 고고한 모습의 클라이번을 동경하게 됐었다.
그러나 클라이번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은 한편으로는 그가 보다 원숙한 연주가가 되는데 장애가 되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사람들의 지나친 기대에 부합하려고 과도하게 애를 쓰는 바람에 탈진해 버렸다는 것이다. “굿바이 바뉴샤!”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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