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러스 맥아더는 드라마틱한 인물이었다. 2차대전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의 영웅인 맥아더는 전장에서는 나폴레옹과 같은 명장이었지만 성격상으로는 결함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 것이 모든 영웅들의 공통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전장에서는 지장이요 용감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오만하고 허영과 야망에 찬 자기도취형 인간이었다.
거울 앞에서 자신의 상표인 옥수수 속대 파이프를 물고 배우가 연기 연습하듯 폼을 재던 속물이자 자신을 거의 불사의 존재로 생각한 과대망상증자이기도 했다. 2차대전의 또 다른 영웅인 패튼과 닮은데가 있다. 맥아더는 이렇게 표리가 부동한 극적인 인간이어서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었다. 그에 관한 영화중 가장 유명한 것은 그레고리 펙이 나온 ‘맥아더’일 것이다.
오는 연말 개봉을 앞두고 현재 후반작업 중인 피터 웨버 감독의 ‘천황’(Emperor)도 맥아더에 관한 역사극이다. 타미 리 존스(65)가 주연하는 영화는 패전 일본의 절대 통치자로 군림했던 맥아더가 미국민의 여론과는 달리 히로히토 천황을 전범으로 기소해 처형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실과 함께 일본을 자본주의 민주국가로 변환시킨 업적을 다루고 있다.
폐허가 된 일본의 모습은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와 웰링턴에서 찍었고 제작진은 영화의 매우 중요한 한 장면을 일왕궁에서 찍기 위해 1년간의 교섭 끝에 허락을 얻어냈다고 한다.
얼마 전 기자회견에서 만난 타미 리 존스는 이 영화에 관해 “‘천황’은 맥아더에 관한 영화라기 보다 그가 어떻게 일본을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새로운 국가로 탈바꿈 시켰는가를 그리고 있다”면서 “맥아더의 모습을 모방하기 보다 그의 생각과 그의 결정 등 본질적인 것을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맥아더하면 내겐 잊지 못할 귀한 추억거리가 하나 있다. 지난 1979년 8월 26일 내가 김포공항 출입기자였을 때 한국에서 찍은 인천 상륙작전을 다룬 영화 ‘인천!’에서 맥아더역을 맡은 영국의 명배우 로렌스 올리비에(사진)를 공항에서 단독 인터뷰한 일이다.
이 날 영화를 찍기 위해 첫 방한한 올리비에(당시 72세)는 장거리 비행과 더위에 매우 지치고 피곤한 모습이었는데 질문에는 조용한 음성으로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의 상의 왼쪽 단추구멍에 꽂힌 빨간 카네이션 한송이가 일생을 통해 연극과 영화에 정열을 불태운 노배우의 뜨거운 가슴을 상징하는듯 했다.
그 때까지만해도 한국에 대해선 별로 아는게 없다는 올리비에는 “역을 위해 내 친구인 그레고리 펙의 ‘맥아더’를 두 번이나 봤다”면서 “한국을 이제부터 배우겠다”고 말했다. 자기가 제작과 주연을 겸한 ‘햄릿’으로 오스카 작품과 주연상을 탄 올리비에는 “예술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서 ‘햄릿’과 멀 오베른이 공연한 ‘폭풍의 언덕’을 잊지 못할 작품이라고 회상했다.
공항 수하물 찾는 곳의 의자에 앉아 “한국의 여름은 이렇게 덥냐”고 물으면서 벗어든 모자로 부채질을 하면서 더위를 쫓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나이 탓인지 ‘폭풍의 언덕’에서 보여준 심장을 꿰뚫고 들어올 것 같던 날카롭고 찬란한 눈길을 더 이상 찾아 볼 길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올리비에는 맥아더 역에 대해 “나는 미국영화에는 몇 편 출연 안했고 미국인으로 나온 경우는 더욱 적다”면서 “그런 내게 맥아더 역을 맡긴 것을 보면 내가 해낼줄 알고 특별대우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분이 너무 좋고 맥아더 역을 할 생각에 흥분에 들떠 있다”면서 즐거워했다.
모두 세 번의 결혼 중 두 번째 부인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으로 나온 비비안 리를 맞았던 올리비에경은 취미가 정원 가꾸기라며 소박한 서민의 삶을 산다고 알려 줬는데 “연기 생활은 언제까지 할 것이냐”고 묻자 손가락으로 공중을 가리키며 “그 것은 하늘만이 알 일”이라고 대답했다.
당시 30대였던 나는 칠순의 올리비에를 인터뷰 하면서 만감이 교차했었다. 사색하고 고민하고 마침내 결단을 내리던 그 젊디 젊던 셰익스피어의 대가가 양볼이 푹 패인채 피로에 지쳐 있는 모습을 보면서 시간의 흐름이 우리를 감동시키던 세기 최고의 연기자를 앗아 가는구나 하는 아쉬움을 거둘 수가 없었다. 올리비에는 그로부터 딱 10년 후인 1989년 7월 11일 82세로 사망했다.
그런데 유감천만인 것은 통일교재단이 수천만 달러를 들여 만든 ‘인천!’이 1980년대 최악의 영화중 하나로 남게 됐다는 사실. ‘007 시리즈의’ 테렌스 영이 감독하고 재클린 비셋과 벤 가자라 및 도시로 미후네 등 세계적 스타들과 한국의 이낙훈과 남궁원 등이 나온 ‘인천!’은 비평가들의 혹평과 함께 흥행서도 참패했다. 올리비에의 연기도 신통치가 않았다. 역시 오만한 장군 보다는 사색의 왕자가 그에겐 더 잘 어울리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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