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간 코리아타운에서 영업을 해온 동아서적(사진)이 25일로 문을 닫는다. 윤선옥 동아서적 대표는 “계속 문을 열고 싶지만 전망이 없다”면서 “나의 남은 삶을 전망이 없는 것에 매여 사느니 새 삶을 찾아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나도 이 책방을 가끔 이용해 폐업이 남의 일 같지 않게 섭섭하다. 200자 원고지에 글을 쓰면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나의 이 섭섭함은 단순히 한 책방의 폐업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 총체적인 활자매체의 고사에 대한 것이라고 해야 옳겠다.
컴퓨터 때문에 책방과 음반가게가 속속 문을 닫은 것은 오래 전 부터다. 내가 즐겨 찾던 선셋의 타워레코드가 오래 전에 문을 닫았고 대형 체인서점 보더스도 폐업했다. 요즘은 너 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과 아이패드로 음악을 듣고 책을 보는데 노트북하면 옛날에는 공책을 말했지만 이젠 휴대용 컴퓨터를 말한다.
평생을 기자로 살아온 나로서는 활자매체의 부진은 직접 생계에도 영향이 있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요즘 LA타임스의 초췌해진 모습을 보면 활자매체의 병의 증세의 심각성을 잘 알 수가 있다.
천하의 뉴욕타임스는 최근 최고 경영자로 영국의 BBC방송의 디지털화에 큰 성과를 낸 마크 톰슨을 선정했다. 신문 매출이 지난 6년간 계속 부진해 신문의 디지털화에 박차를 가하기 위한 결정이다.
신문뿐 아니라 잡지도 마찬가지.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미국잡지의 총판매 부수는 2,640만 부로 이는 5년전의 4,710만부에 비하면 절반이 줄어든 숫자다. 그리고 사람들이 전부 편지를 컴퓨터로 쓰는 바람에 우편물 토요배달 폐지 검토설까지 나돌고 있다.
요즘은 아이들이 걸음도 걷기 전에 컴퓨터부터 배우고 목사가 아이패드를 보면서 설교하고 또 찬송도 부를 정도로 컴퓨터는 우리의 전지전능한 아이콘이 되었다.
최근호 타임지는 ‘와이어리스 이슈’라는 카버스토리로 스마트폰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10개의 방법에 관해 심층 보도했다. 이 전화가 우리들의 투표와 소비행위와 오락과 학습 등에 관해 미치는 영향을 다루면서 아울러 미국, 영국, 한국, 중국, 인도 및 브라질 등 6개국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했다.
한국인 응답자의 62%가 기술이 공부와 다른 책임을 수행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답했는데 다른 5개국을 제치고 단연 1위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또 잘 연결된 나라다운 대답이다. 또 응답자의 48%는 너무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느라 다른 세상사를 안 본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응답자의 32%가 스마트폰에 의지하다 보니 일을 할 때 생각을 덜하게 된다고 답했다. 똑똑이폰이 자칫하면 멍청이폰이 되겠다.
이런 형편이니 누가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니면서 읽겠는가. 그러나 나는 여전히 종이의 감촉과 냄새 그리고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무게가 좋다. 나는 고등학생 때 헌 책방엘 줄창 드나들다시피 했다. 그 때는 근간 소설을 돈 받고 빌려 줬는데 일본의 걸작 반전소설 ‘인간의 조건’과 얄팍한 대중소설 ‘빙점’과 ‘가정교사’도 다 그 때 봤다.
책방에 들르는 행위 그 자체가 좋았는데 그 많은 책들을 다 읽지는 못해도 책들의 삼림 속에 도착하면 영혼이 푸르고 가득해지는 느낌을 경험하곤 했다. 그러나 학생 때 새 책을 살 돈이 없어 지난 정기 간행물을 파지로 파는 헌 책방엘 가서 묵은 현대문학과 자유문학을 저울에 근으로 달아 사다가 통독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종이책을 안 읽는다고 해서 반드시 책을 안 읽는 것은 아니다. 소위 전자책인 킨들로 책을 보는데 이렇게 책을 읽는 사람들은 그 것이 매우 편하고 또 쉽다고 말한다. 그러나 컴퓨터를 무서워하는 나는 결코 전자책과 가까워질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고백성사와 예배와 연애편지를 컴퓨터를 통해 하고 쓰는 세상에 참으로 시대에 뒤지는 소리지만 나는 좀 힘들더라도 고전에 목을 매달고 살고 싶다.
그런데 이런 수구파가 비단 나뿐만은 아니다. 아직도 글을 만년필과 볼펜으로 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뉴욕 맨해탄에 있는 펜전문 판매점 ‘화운튼펜 하스피탈’에는 단골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 온다고 한다. 나도 기사는 컴퓨터로 쓰지만 다른 글은 여동생이 유럽여행 때 사다준 몽블랑펜으로 쓴다.
‘화운튼펜 하스피탈에’ 펜을 공급하는 딕 크레인의 말이다. “쓰는 것은 표현의 형태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은 표현의 형태가 아니다.”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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