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예상 외로 선전한 런던올림픽이 오는 12일 끝난다. 내가 이번에 TV로 경기를 보면서 느낀 바는 승자와 패자를 불문하고 선수들이 흘리는 눈물이 매우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최선을 다한 자들의 눈물이 귀한 진주알처럼 값지게 느껴졌다.
내가 올림픽 때마다 어딘가 석연치 않게 느끼는 것은 금메달 순으로 석차를 매기는 한국의 셈법이다. 물론 1등이 좋은 것은 사실이나 난 은메달과 동메달까지 합해서 순위를 매기는 것이 올림픽 정신에도 맞는다고 생각한다.
올림픽에 관한 영화는 기록영화와 극영화를 비롯해 많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걸작은 모두 기록영화인 ‘올림피아’(1936)와 ‘도쿄 올림피아’(1965)다. 둘 다 우열의 순위를 가릴 수 없으리만큼 훌륭한 작품들이다.
배우 출신의 미녀 감독으로 생전 ‘히틀러의 여인’이라 불린 레니 리펜슈탈이 만든 ‘올림피아’(상영시간 220분)는 물 흐르듯 하는 카메라가 움직이는 인간의 육체와 영육을 모두 불사르는 경쟁 그리고 이상형으로서의 선수들과 경기장 밖에서의 환희와 좌절을 기록한 불후의 걸작이다.
이 영화는 히틀러와 그의 선전상 요젭 괴벨스가 막 득세한 나치스를 선전하고 아울러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다. ‘악을 선전한 작품’이라는 비난을 받았는데 그러나 이런 정치적 의도를 떠나서 본다면 이 영화는 고대 그리스의 이상주의를 예찬한 고전 걸작이다.
히틀러의 아리안족의 우수성 과시 의도는 미국의 흑인 육상선수 제시 오웬스가 금메달을 무려 4개나 따면서 코가 납작해지고 말았는데 영화는 오웬스의 달리는 모습을 박진하게 담았다.
‘올림피아’는 특히 한국인 손기정이 가슴에 일장기를 붙이고 마라톤에서 달리고 우승하는 모습을 자세히 기록해 한국인들에게는 특별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머리를 짧게 깎은 약간 깡마르나 강인한 몸과 얼굴을 한 손기정이 힘차게 달리다가 1등으로 올림픽 스테디엄 내로 들어올 때 아나운서가 “일본인 손이 1등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방송한다. 이어 일본 국가가 연주되는 중에 게양되는 일장기와 머리에 월계관을 쓴 어두운 표정의 손기정의 얼굴(사진)을 카메라가 교차로 보여주는데 볼 때마다 만감이 교차한다.
영화에는 무성 영화 코미디 ‘위대한 독재자’의 우스꽝스런 콧수염을 한 채플린을 닮은 히틀러가 관중석에서 괴벨스와 나란히 앉아 독일선수의 승패에 기뻐했다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당시 유대인 핍박으로 세계의 지탄을 받고 있는 히틀러를 인간적으로 노출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 영화는 단순히 경기장면과 선수들의 동작과 표정을 담는데 그치지 않고 경기와 함께 선수들의 내적 면모와 감정까지를 탁월하게 추출해 낸 한 편의 영화 문헌이다.
뛰어난 반전영화들인 ‘버마의 하프’와 ‘들판의 불길’ 그리고 섬세미가 화사한 ‘마키오카 자매들’을 만든 곤 이치가와 감독의 ‘도쿄 올림피아드’(상영시간 170분)는 기록영화라기보다 한 편의 시적인 인간 드라마라고 해야 좋겠다.
사실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작품으로 영화의 각본은 남편 영화의 각본을 여러 편 쓴 이치가와의 부인 나토 와다가 썼다. 이치가와가 ‘평화와 인간 평등의 시각적 시’라고 말한 이 영화 역시 단순히 운동경기를 보여주는 차원을 넘어 선수들의 감각적인 고뇌와 희열과 함께 경기를 구경하는 관중들의 모습을 와이드 앵글로 파노라믹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라톤 경기를 보려고 길에 나온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은 장면에서 인간 냄새가 물씬 풍긴다.
많은 올림픽 극영화 중 가장 뛰어난 것은 1981년도 오스카 작품상을 받은 영국 영화 ‘채리어츠 오브 화이어’다. 반젤리스의 음악이 멋있는 영화는 1924년 파리올림픽에 출전한 두 영국 육상선수의 실화로 승리의 의미와 그것을 이루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그리고 헤밍웨이의 손녀 매리엘 헤밍웨이가 주연한 ‘퍼스널 베스트’는 미국이 보이콧한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 나가기 위해 피땀 나게 노력하는 미 여자 육상경기 선수들의 관계와 감정을 진지하게 그린 수작이다.
이와 함께 1980년 레익 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서 강호 소련을 물리친 미 하키팀의 실화 ‘미라클’과 생전 눈이라곤 본 적이 없는 자메이카 밥슬레이드팀의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실화를 그린 코미디 ‘쿨 러닝스’ 그리고 뮤닉올림픽에서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에 의해 살해된 이스라엘 선수들에 대한 이스라엘 측 보복작전을 다룬 스필버그의 스릴러 ‘뮤닉’도 재미있다.
<박흥진 편집위원/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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