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주 오로라의 극장 내 총격사건의 범인 제임스 홈스가 범행 당시 영화 ‘다크 나이트’의 악인 조커처럼 머리에 빨간 염색을 하고 경찰에 체포될 때 “나는 조커다”라고 말해 그가 조커(사진)의 흉내를 냈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대형 유혈폭력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거론되는 것이 사건과 영화의 모방범죄 상관 가능성으로 이때마다 지탄을 받는 것이 할리웃의 폭력영화다. 그러나 도매금으로 폭력영화를 실제 사건을 부추긴 촉매로 볼 수는 없고 이는 경우 별로 다뤄야 한다.
‘다크 나이트’와 이의 속편으로 홈스가 범행을 저질렀을 때 상영 중이던 ‘다크 나이트 라이지즈’는 모두 등급 PG-13(13세미만 부모의 사전 지도 필요) 영화로 유혈폭력이 자심한 것들이 아니다. 비록 홈스가 조커 흉내를 내긴 했지만 그것을 영화를 본 딴 모방범죄로 몰아붙인다는 것은 다소 억지다.
과거에도 이런 일이 더러 있었다. 버지니아텍 살육사건 때도 범인 조승희가 두 손에 망치를 든 사진이 TV로 나가자 뉴욕타임스는 이 사진이 박찬욱의 ‘올드보이’에서 주인공 대수가 오른 손에 망치를 치켜든 모습과 같다며 사건과 영화의 상관 가능성을 내비쳤었다.
또 컬럼바인 총격사건의 장본인들인 2명의 10대가 사건 당시 ‘메이트릭스’의 주인공인 키아누 리브스처럼 긴 망토를 입어 이것 역시 영화를 모방한 범죄라고들 했었다. 그리고 레이건을 저격한 존 힝클리 주니어도 ‘택시 운전사’의 사이코 트래비스 빅클을 모방했다는 말을 들었었다. 빅클이 대통령 선거에 나온 연방 상원의원에 대한 암살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인범들이 자기가 저지른 사건을 실제로 영화 내용을 따라 했다고 고백한 경우가 있다. 스탠리 큐브릭의 ‘클라크웍 오렌지’ 경우 영국의 10대들이 영화에서처럼 ‘빗속에 노래하며’를 부르면서 소녀를 강간했고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는 역시 영화처럼 3명의 10대들이 재미로 노숙자를 불태워 죽였었다. 이 때문에 큐브릭은 자기 영화를 25년간 영국에서 상영 금지시켰었다.
또 오클라호마의 두 10대 연인은 올리버 스톤의 ‘내추럴 본 킬러즈’ 흉내를 내 살인을 해 희생자의 가족이 영화 제작자와 스톤을 상대로 고소를 했으나 패소했다.
미국은 표현의 자유가 철저히 보장된 데다가 폭력은 잘 팔리기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이 같은 자유를 마음껏 향유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그들은 자유만 누리지 그에 따른 책임은 방기하고 있는 듯하다.
‘톱’과 ‘호스텔’ 같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장르영화는 물론이요 요즘 상영 중인 올리버 스톤의 ‘새비지’와 오는 8월3일에 개봉될 윌리엄 프리드킨의 NC-17(17세 미만 관람 불가) 등급을 받은 ‘킬러 조’ 및 TV 시리즈 ‘브레이킹 배드’와 ‘덱스터’에 이르기 까지 할리웃 영화들은 잔혹하기 짝이 없다.
할리웃 영화는 이렇게 폭력에는 관대한 반면 섹스엔 과민하게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유럽 영화와는 정반대되는 현상이다. 그래서 유럽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은 사람의 목과 팔 다리가 잘려 나가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런 행위인 섹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고 비아냥댄다.
오로라 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하던 21일에도 케이블 TV AMC에서는 살인과 유혈폭력이 판을 치는 ‘더티 해리’ 시리즈를 계속해 내보내고 있었다. 이 나라가 아예 폭력에 중독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센세이셔널 한 총격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그 책임 소재를 놓고 총이냐 또는 사람이냐 아니면 폭력영화냐 하는 논란이 일어나곤 한다. 전문가들은 우선 청소년의 범행을 막기 위해선 부모의 가르침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폭력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퀜틴 태란티노 감독도 “아이들에게 폭력영화를 보여주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부모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도 과다한 폭력을 절제할 줄 아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폭력이든 섹스든 돈 벌이만 잘 되면 서슴지 않고 과용하는 할리웃엔 이런 조언은 마이동풍식 공언에 지나지 않는다.
대형 총기사건이 날 때마다 총기규제론이 거론되곤 하지만 총으로 나라를 세우고 헌법에 총기소지 권리를 명기한 이 나라에서 강력한 총기규제가 입법화 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공론이다. 홈스가 극장에서 난사한 살상용 반자동 소총을 마켓에서 소다 사듯 할 수 있는 것이 미국이다.
오로라 사건이 나자 오바마와 롬니는 선거전 상호 공방을 중단하고 반성과 조의의 시간을 가지자고 말하면서도 총기규제엔 대해선 일절 언급이 없었다. 그런 소리했다간 낙선하기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9%가 총기소지 권리를 지지했고 그 반대자는 45%였다. 부시에게 표 도둑을 맞다시피 한 고어가 시골 표를 잃은 까닭도 그가 총기규제 지지자였기 때문이었다. 하여튼 미국엔 총이 너무 많다.
<박흥진 편집위원/hipar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