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그것이 마지막이 되고 말았지만 내가 처음 어네스트 보그나인을 만난 것은 지난 2007년 11월 베벌리힐스의 페닌슐라 호텔에서였다. 그가 출연한 TV 영화 ‘크리스마스를 위한 할아버지’ 인터뷰 때였다.
난 먼저 와 자리에 앉아 있는 보그나인에게 다가가 “미스터 보그나인 이렇게 만나 보게 돼 정말 반갑습니다”고 인사를 했다. 이어 그의 손을 꼭 잡고 “난 한때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프랭크 시내트라를 때려죽인 당신을 미워했지만 이젠 용서했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그래 모두들 날 미워했지”라며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거구의 보그나인은 영화에서 하와이 주둔 육군부대의 새디스틱한 영창장 팻초(뚱보)로 나와 자신에게 박박 대어드는 약골 시내트라를 때려죽여 시내트라 팬들로부터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었다. 보그나인을 만난 것은 내겐 하나의 꿈의 현실화였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울면서 본 ‘지상에서 영원으로’는 내 인생을 영화 인생으로 만들어놓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 때 90세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건강하고 생명력이 가득했던 보그나인이 지난 8일 95세로 별세했다. 이 소식을 듣자 내 눈 앞에 그의 상표가 되다시피 한 벌어진 앞니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던 보그나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부진 체구에 황소 눈알 그리고 고릴라 같은 얼굴을 해 보그나인은 악역을 많이 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를 비롯해 ‘블랙 록의 흉일’ ‘자니 기타’ 및 ‘북의 황제’ 등이 다 그런 영화들이다.
그러나 실제로 만난 보그나인은 마음 좋고 장난기 있는 나이 먹은 아저씨 같았다. 그는 내가 “미스터 보그나인”이라고 부르자 “콜 미 어니”(어네스트의 애칭)라고 당부했다. 나는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고집 센 졸병으로 나온 몬고메리 클리프트(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다)를 비롯해 흘러간 할리웃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캐물었는데 이에 대해 보그나인은 자상히 대답해 주었다.
사람이 매우 소박하고 솔직하고 꾸밈이 없는데다가 유머가 풍부해 처음 보는데도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이웃집 아저씨 같아 정이 갔다. 그러고 보니 옛날엔 고릴라 같던 얼굴이 귀엽기까지 한 불독처럼 보였다.
보그나인의 이런 보통사람의 모습은 그가 오스카 주연상을 탄 ‘마티’(1955·사진)에서 여실히 표현 되었다. 그는 뉴욕 브롱스에서 정육점을 경영하며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34세난 고독한 노총각으로 나와 민감하고 사실적인 연기를 했다.
“마티야, 넌 도대체 언제나 착한 여자 얻어 장가 갈래”라고 독촉하는 어머니에게 “엄마, 엄마는 이해 못해요. 난 못 생기고 못 생긴 놈이란 말이에요”라며 안타까워 하는 보그나인의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난다. 아름다운 연기다. 그러니까 보그나인은 팻초라기 보다 마티다.
보그나인은 비록 악역을 많이 했지만 “난 꼭 필요하지 않으면 영화에서 욕을 절대로 안 했고 나체 역도 거절했다”면서 “실제 인물로 악마나 다름없는 알 카폰으로 나오면 50만달러를 주겠다는 제의도 거절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보그나인은 “과거 우리들에겐 연기가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진짜 의미였다”면서 “요즘 영화들을 보면 도무지 감정을 느끼지 못하겠다. 섹스와 폭력과 컴퓨터 효과가 남발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다섯 차례 결혼한 보그나인의 결혼 에피소드 중 할리웃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것이 32일 만에 끝난 브로드웨이의 수퍼스타 가수 에셀 머맨과의 혼사. 보그나인과 그의 네 번째 부인인 머맨은 신혼여행 차 일본 등 아시아 국가를 방문했는데 팬들이 보그나인만 알아보고 머맨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것이 아내의 자존심을 크게 건드렸다는 것이다. 보그나인은 “후에 머맨이 쓴 자서전을 읽어 보니 나에 대해선 한 마디도 없더라”며 큰 눈알을 굴리면서 껄껄대고 웃었다.
이탈리아계 이민자로 2차 대전 때 해군으로 근무한 보그나인은 제대 후 어머니의 “넌 늘 남 앞에서 바보처럼 구니 연기나 해 보렴”이라는 권유에 따라 GI 빌로 연기를 공부했다. 생애 모두 115편이 넘는 영화에 나왔는데 그의 다른 영화들로는 ‘피닉스의 비행’ ‘오스카’ ‘바이킹’ ‘더티 더즌’ 및 ‘와일드 번치’ 등이 있다. 그는 인기 TV 시리즈 ‘맥헤일의 해군’과 ‘에어울프’ 등에도 주연, TV 배우로서도 맹활약을 했다.
5년 전 인터뷰 때 보그나인은 자신의 건강비결을 “잘 자고 물 많이 마시고 독서를 하면서 단순한 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귀띔해 준 뒤 “내가 사람들의 가슴에 작은 행복을 줬다면 난 행복하다”며 겸손해 했다.
나는 인터뷰 후 보그나인과 기념사진을 찍을 때 “부디 100세 넘도록 사세요”라고 작별인사를 했더니 그는 “댕큐”라며 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 100년에 5년을 채 다 못 채우고 보그나인은 세상을 떠났다. 굿바이 어니!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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