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선생인 맹물 같은 남편이 옆에 누운 침대에서 신혼 2개월째인 레베카(마리안 페이스풀)는 정부 다니엘(알랑 들롱)과의 불타는 정사를 상상하다가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어 레베카는 알몸 위에 몸에 꼭 끼는 검은 가죽 점프수트를 입은 뒤 할리 데이빗슨 모터사이클을 타고 새벽안개를 뚫고 프랑스 알자스에서 다니엘이 있는 독일 하이델베르크를 향해 질주한다.
통풍이 안 된 인간 하복부의 욕망의 냄새가 퀴퀴하게 나는 에로틱한 유로트래쉬의 결정판 ‘모터사이클을 탄 여자’(The Girl on a Motorcycle·1968)의 첫 장면이다.
‘배스타드’와 ‘비치’의 육체에만 탐닉하는 관계를 치사할 정도로 야하고 상스럽게 선정적이며 또 몸살이 나도록 자극적으로 묘사한 이 영화는 지난 60년대 프리러브와 반사회적 분위기를 대변한 작품으로 결점이 있는 인물인 레베카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대학을 막 나온 뒤 학교 선생을 할 때 중앙극장에서 봤는데 성적인 것을 상징하는 장면과 대사와 함께 소녀의 얼굴에 무르익은 입술 그리고 긴 금발과 날씬하고 커브 진 몸매와 풍만한 젖가슴을 가죽옷 속으로 드러낸 페이스풀(당시 21세)의 모습에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자마자 술집으로 달려가 거푸 맥주를 마시면서 불타는 속을 진화시켜야 했었다.
알랑 들롱이 파이프를 물고 안경을 낀 철학교수로 나와 “프리 러브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라고 신소리를 해대는 도무지 믿기 어려운 내용의 영화이지만 한창 때의 미모의 들롱과 페이스풀이 땀으로 흠뻑 젖은 알몸으로 전투하듯 쾌락하는 섹스신만은 진짜로 화끈하다. 이 섹스신을 때론 약물에 취한 듯한 사이키델릭한 색깔과 얇은 천을 씌운 듯한 촬영으로 처리, 보는 사람의 육감을 감질나게 만든다.
섹스신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멋있는 것은 다니엘이 자기를 찾아온 레베카를 두 손으로 공중으로 번쩍 들어 올린 뒤 가죽옷의 지퍼 고리를 이빨로 물고 위에서 아래로 끌어내리면서 레베카의 탐스런 하얀 속살이 드러나는 장면. 카메라가 두 연인의 주위를 감싸고 뱅글뱅글 돌아 정신이 다 혼미해진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달리는 레베카의 회상으로 진행되는 영화의 대사도 유치하지만 솔직하다. “네 몸은 벨벳 케이스 속의 바이얼린” “내 몸에 대해선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알아요” 그리고 “나 그 것(레베카의 몸)에 내 손을 대고파 기다릴 수가 없어” “내 검은 핌프에게 날 데려다 다오”라는 말을 들으면 키들키들하고 웃음이 절로 나온다.
모터사이클을 탄 레베카가 “넓적다리 사이로 흥분감을 느낀다”고 독백할 때 카메라가 페이스풀의 벌린 넓적다리를 클로즈업하면서 피핑 탐의 아슬아슬한 쾌감을 충동질하는데 영화에는 이런 장면들이 많다.
고상한 것은 나름대로 품위의 멋이 있겠지만 진짜 즐겁고 노골적이며 또 감각적인 흥취는 싸구려에서 더 잘 맛볼 수 있다. 막걸리 집 작부에게서 맡을 수 있는 값싼 화장품 냄새가 나는 이 영화가 컬트무비가 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컬러가 눈부신 ‘분홍신’과 ‘흑수선’ 등을 촬영한 영국의 잭 카르디프가 감독한 영화는 레베카가 욕정의 죗값을 치르고야마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끝나는데 미국에서는 ‘가죽옷 속의 나체’라는 제목으로 상영됐었다. ‘모터사이클을 탄 여자’가 최근 Kino Lorber에 의해 DVD와 블루레이로 나왔다.
페이스풀은 배우보다 가수로서 더 유명하다. 1960년대 락그룹 롤링스톤스의 리드싱어 믹 재거의 애인이었던 페이스풀의 노래로 우리 귀에 익은 것들로는 재거와 롤링스톤스의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즈가 작곡한 ‘애즈 티어즈 고 바이’와 ‘디스 리틀 버드’ 및 ‘서머 나이트’ 등이 있다.
페이스풀은 모습뿐 아니라 목소리도 아주 질척하니 섹시하다. 어둡고 쉰 저음에 타락한 듯한 선정적 색깔을 입힌 뒤 한숨을 토해내듯 노래하는데 음악지 롤링스톤은 페이스풀의 음성을 ‘벌어진 상처와 고통과 자기 검사의 생생한 날 것의 휘장’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페이스풀의 공연을 지난 2002년 UCLA의 로이스홀에서 관람했다. 당시 56세인 페이스풀은 여전히 빼어난 금발 미모에 담배를 피우면서 ‘Xucking’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으며 노래를 불렀다. 페이스풀의 노래에는 마약중독 등 개인 경험과 사회적 메시지 그리고 반전 의식과 권위와 위선에 대한 비판과 조소가 담겨 있는데 그 날도 부시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다가 일부 청중의 야유를 받았다. 그의 음성은 술 취한 듯하면서도 엄청난 힘을 발산했는데 처절하니 아름다운 저음이었던 기억이 난다. 모든 인공적인 장식과 감상성을 제거한 음성으로 부르는 열창에 박수갈채를 보냈었다.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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