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날의 총성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1961년 5월16일 새벽 나는 멀리서 들리는 총성에 놀라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시 나는 고3으로 명보극장 근처 초동에 살고 있었는데 총성의 발원지를 찾아가다 보니 을지로 입구에 있던 내무부 청사 앞에 도착했다.
완전 무장한 군인들이 M1을 쏘면서 잠긴 청사의 문을 따고 있었다. 우연히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한 고3 동기가 “이건 분명히 쿠데타야”라고 흥분해서 말했다. 이 날부터 18년6개월간의 박정희의 철권통치가 시작된다.
나는 최근 한국여행 때 처남집이 있는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인근의 박정희 대통령 기념 도서관을 찾아갔다. 제1 전시실의 안내 아저씨에게 “요즘은 사람들이 기념관 앞에서 데모를 안 하느냐”고 물으니 “이미 개관해 더 이상 데모는 없지만 처음 지을 때부터 반대가 심해 완공하는데 무려 13년이나 걸렸다”고 말한다.
‘5.16혁명은 민족중흥과 근대화 혁명’이라고 적힌 팸플릿을 들고 앞을 보니 벽에 대형 박정희 초상화(사진)가 걸려 있다. 맹호부대 청룡부대 교체 환송식 사진을 보니 고교 친구로 육사를 나와 맹호부대 소대장으로 월남전에서 부상을 입고 전공을 세운 신양호가 머리에 떠올랐다.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 뒤늦게 월남전에 졸병으로 참전했던 경험을 ‘탑’이라는 단편으로 쓴 역시 고교 친구 황석영이도 생각났다. 나도 육군졸병 때 월남전에 투입되기 직전 명령이 취소돼 쌌던 더플백을 풀었었다.
전시실에는 자유당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학생들의 데모사진과 파독 광부와 간호사 앞에서 눈물의 연설을 하는 박정희의 모습, 인형으로 만든 가발(이 가발로 부자가 된 LA 한인들 많다)과 봉제공장 공원들 그리고 머리카락과 가위를 든 엿장수의 엿가락과 바꿔 먹는 소년의 인형들이 지난 60년대의 한국의 사회상을 재현하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 따라 한결같이 상의 밖으로 내놓은 장관과 수행원들의 하얀 와이셔츠 칼러가 새삼 눈에 띈다.
전시물들은 한국의 당시의 가난한 모습과 혁명의 당위성을 연결시켜 보여주고 있다. 보릿고개와 초근목피를 면하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기 위해선 혁명이 필요했다는 것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다.
제2 전시실에는 새마을 운동과 고속도로 건설, 치산치수와 중화학공업 육성 그리고 국민 교육헌장 발표와 함께 선언한 국적 있는 교육에 관한 자료와 사진들이 있다. 당시 신문과 뉴스필름에서 자주 본 밀짚모자를 쓴 박정희가 모를 심는 사진도 보인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되는 국민 교육헌장을 읽으면서 내가 대학 졸업 후 인천서 선생시절 교무회의 때 이 헌장을 외워 낭독해야 했던 해프닝이 생각나 실소가 터져 나왔다.
박정희는 고속도로 인터체인지도 직접 그려 도안했고 또 부산 수영공항 화장실이 불결하다고 시정을 지시한 교통부장관에게 보낸 서한도 있는데(당시 교통부장관이 누구였는지 편지 받고 까무러쳤을 것이다) 한자를 많이 쓴 글이 달필이다.
제3 전시실은 인간 박정희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와 세계 정상들과의 만남과 육영수 여사를 카메라에 담는 박정희와 그와 자녀들과의 한가한 한 때 그리고 어린 아이들을 맞는 박정희의 모습이 평화롭기까지 하다. 물론 전시실은 박정희의 공만 보여주고 있지 과에 대해선 일절 언급이 없다.
전시실을 나오는데 방명록에 한 방문객이 ‘건대화(경상도 사람임에 틀림없다) 사업에 노력하신 박정희 대통령 감사합니다’라고 적어 놓았다. 기념관 앞에 박정희에게서 지독히도 괄시를 당한 호남에서 올라온 관광버스에서 방문객들이 내린다.
박정희가 저개발국가인 한국을 근대화시킨 공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결코 군사정권의 가혹한 압제와 시민에 대한 자유박탈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
나는 군사정권 하에서 모진 시련을 겪은 신문사의 기자 노릇을 해 자유롭게 말하지도 또 쓰지도 못하는 고통을 철저히 겪어야 했다. 우리들은 언론 자유가 겁탈 당하는 치욕과 수모를 허구한 날 막걸리로 달래야 했다.
기자뿐만 아니라 소설가와 시인 그리고 학생들과 자유 투사들이 모두 희생자들이었다. 그 희생이 결실을 맺어 지금 우리 모두가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과연 독재는 보다 잘 살기 위한 목적의 필연적인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해 아웅산 수치 여사는 이렇게 답한다. “정의와 자유 그리고 번영은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같이 가는 것이다.”
박흥진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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