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번 한국여행에서 비로소 내 나이를 완전히 먹고 돌아왔다. 그동안 나는 내 나이를 속인 적은 없었지만 겉과 달리 속으로는 아직도 대학생이라면서 마치 늙음과 나는 무관하다는 듯이 세월을 속이려 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소매치기 같은 사고방식은 이달 초 경복고 졸업 50주년 기념행사 차 방문한 짧은 서울여행에서 폭삭 무너지고 말았다. 모교의 꾀꼬리동산에 올라 푸른 수목 사이에서 책을 읽던 청춘들이 어느덧 잿빛이 되어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의 하류 하는 오색천처럼 인생의 종착점을 향해 흘러 내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난 반세기의 걷잡을 수 없는 위력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정이 든 교문을 들어서니 입구 오른쪽에 옛날 수위실이 그대로 있다. 해외에서 온 우리를 반갑게 맞는 서울 친구들과 악수를 나누면서 모두들 목에 이름표를 걸었는데도 우리는 서로 “너 누구지”라는 말로 통성명을 하다시피 했다. 50년이 우리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놓았다. 벗들과 함께 교정과 꾀꼬리동산과 교실 그리고 돈만 내고 완공을 못해 졸업식도 못 치른 체육관 등을 둘러보자니 세월의 뒤 저만치로 달아난 청춘이 그리워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날 저녁 숙소인 프리마 호텔에서 나의 고3 담임이셨던 최태상 세계사 선생님과 남도영 국사 선생님 등 네 분의 스승을 모시고 졸업 50주년 행사가 성대히 열렸다. 선생님들에게 찾아가 깍듯이 인사를 드렸다. 애국가와 교가를 그렇게 힘차게 불러보기는 처음이었다. 한 때 명동을 주름잡던 명 DJ 이진을 비롯해 남충우, 신양호, 박호일, 윤병무 그리고 박언곤과 전진석의 손을 덥석 잡으니 감격일색이었다.
이튿날 우리를 태운 설악산행 7대의 버스는 안개가 끌어안은 미시령을 새색시의 걸음처럼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버스 안에서는 친구들의 추억담이 밖의 안개처럼 자욱이 피어올랐다. 김밥을 먹으면서 옛날 소풍 가던 때처럼 웃고 떠드는 우리들은 순진하고 순수했다. 여행의 이름은 ‘사동추 여행’(사랑하는 동문들과 추억 만들기 여행).
빈부와 귀천, 지위와 명예가 이젠 다 부질없는 것이 된 우리들은 당연히 늙음과 삶과 죽음에 관해서도 얘기했다. 이제야 비로소 어른들이 되었구나 하고 느꼈다. 과연 우리는 살만큼 살았는가. 우리는 여전히 생에 집착해야만 하는가. 나는 삶의 매 순간을 충분히 살았는가.
재회의 기쁨과 사라져 가는 것의 비애가 서로 섞여 동아리를 틀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회한과 아쉬움에 맥을 출 수가 없게 되면서 문득 나이를 먹어 자살한 헤밍웨이와 카와바타 야수나리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은 깨달음의 것이기도 하지만 슬픔의 여행이었던 것 같다.
설악산은 초록의 다양한 변용이었는데 내겐 그 푸름마저 단풍 빛으로 여겨진 것도 우리들의 나이 탓 때문일 것이다. 내가 군대시절 야간 보초를 서던 동해안의 파도는 여전히 지루한 반복 음을 내고 있었다. 설악산 구경 길에 우리는 황태구이와 순두부, 생선회와 산채정식에 소주와 막걸리를 곁들여가며 포식 폭음했다. 자리를 만들 때마다 난 고3 때 갑자기 키가 큰 최주호 등 그립던 친구들을 찾아가 대작했다.
설악산을 떠날 때 기념촬영(사진)을 한 뒤 다시 한계령에서 사진을 찍고 이어 다음 휴게소에서 해외동문들과 서울동문들이 미리 작별인사를 나눴다. 한 줄로 선 우리들 앞을 서울 동문들이 하나씩 차례로 지나가면서 악수를 하고 “잘 가라” “잘 있어라” “또 보자”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아, 이제 이 아이들을 살아서는 다시 못 보겠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솟아올랐다.
서울에 체류하는 동안 나는 내 청춘의 그림자를 찾아 명동엘 들렀다. 고1 때 학교 대신 개근을 하다시피 한 지하 음악감상실 ‘돌체’(Dolce)가 있던 곳을 확인하고 싶었다. ‘돌체’는 영화관 다음으로 내 성장기의 가장 중요한 요람과도 같은 곳이었다. 여기서 나는 팝송과 세미클래식을 들으면서 성장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 겪었다. 그러나 국적 불명의 도떼기시장이 된 명동의 골목골목을 샅샅이 헤집고 다녔지만 50여년 전의 ‘돌체’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나의 흔적을 못 찾고 헤매는 발길을 과거의 누적된 피로가 짓눌렀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의 빈 노약자석 앞에서 공연히 머무적거리던 나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자리에 앉았다. ‘아, 나는 마침내 노인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러나 황혼이 그렇듯이 저무는 것은 슬프다. 이번 졸업 50주년 행사에 해외의 우리를 초청, 알뜰히 돌보아준 진형섭 동기회장과 회장단 그리고 서울 동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친구들아 정말 고맙다.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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