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로 정명훈(사진)의 꿈은 비로소 30년 만에 이뤄졌다.
내가 정명훈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982년 3월 당시 LA 필의 연주회장이었던 다운타운의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의 백스테이지에서였다. 그 해 3월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정씨와 바이얼리니스트인 그의 누나 경화씨가 본보 주최로 패사디나의 시빅 오디토리엄에서 가진 리사이틀 전에 그와 인터뷰를 했었다.
그 때 28세였던 정씨는 당시 LA 필 상임지휘자자인 칼로 마리아 줄리니 밑에서 부지휘자로 활동하다가 그 자리를 내놓고 객원지휘자로 있을 때였다. 정씨는 그 때 “나의 꿈은 항상 공부를 많이 하고 연주 경력을 충분히 쌓은 후 조국에 돌아가 우리나라의 교향악단을 세계적인 위치로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소원을 피력했었다.
그가 이제 나이 60이 다 돼 지난 19일 자신이 상임지휘자로 있는 서울시향과 함께 디즈니 콘서트홀에 데뷔를 했다. 이는 LA 필에 의해 공식 초청된 객원 아시안 오케스트라로선 최초의 디즈니 홀 연주로 서울시향이 정명훈씨의 소망대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위치로 발돋움했음을 뜻한다. 그의 오랜 꿈이 마침내 열매를 맺은 것이다.
정씨 자신도 이 꿈이 음으로 실현되는 이 날 연주에 만족했을 뿐 아니라 나를 비롯한 객석을 가득 메운 한국인 청중들도 가슴 뿌듯한 감동과 자부심을 느낀 밤이었다. 본보 후원으로 열린 연주회가 끝난 뒤 장재민 본보 회장이 마련한 리셉션에서 정씨는 “오늘 연주에 지극히 만족한다”면서 “오케스트라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열정이다. 한국 사람들은 정열적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민족으로 정열적인 면에서 우리는 LA나 보스턴을 이미 앞질렀다고 하겠다”고 자부했다.
한편 장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서울시향의 디즈니 홀 데뷔가 자랑스럽고 반갑다”면서 “정 지휘자는 이번엔 25년 만에 LA를 찾았지만 앞으론 적어도 10년 뒤에 방문해 주기를 바란다. 25년 후면 그 땐 우린 다 여기에 없을 것”이라고 말해 참석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정씨는 서울시향의 디즈니 홀 데뷔에 감회가 썩 깊어 보였다. 그는 “내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를 만들어보자는 서울시의 뜻에 따라 서울시향을 처음 맡았던 6년 전만해도 그 수준이 창피했을 정도였다”면서 “그러나 이제 우리는 큰 발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정씨는 이 날 연주에 크게 만족한 듯이 다소 흥분한 것처럼 보였는데 그에게서 마치 아이를 낳아 훌륭하게 키운 어머니의 보람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어렸을 때 부지휘자로 있던 무대에 자기가 새로 창조하다시피 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한국을 대표하는 교향악단을 이끌고 되돌아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정씨는 “내가 부지휘자로 있을 때 할리웃보울을 포함해 100번 정도는 지휘했는데 그 땐 사정이 어려워서인지 그 몇 년간 한국인 청중은 100명도 못 봤다”면서 “그동안 우리 모두 크게 발전, 오늘 객석을 가득 메운 한국인들을 보니 너무 감격스럽다”고 기뻐했다.
정씨는 “이어 오케스트라의 활동은 그 무엇보다 후원단체에 매달려 있다”면서 “오늘 연주를 후원해 준 장재민 회장에게 감사하며 아울러 후원 방면에선 한국보다 앞선 미국의 여러분이 서울시향을 적극 도와 달라”고 당부했다.
정씨는 “나라가 잘 산다는 것은 첫째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요, 둘째 문화 수준으로 그런 의미에서라도 한국의 오케스트라를 키워야 한다”면서 “나는 음악에 사는 사람이니 나를 마음껏 이용해 달라”고 거듭 한국 동포사회의 지원을 강조했다.
정씨의 말을 들으면서 그가 음악인답게 매우 정열적이요 또 솔직하고 인간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리셉션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는 정씨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한 뒤 “마에스트로가 무척 자랑스럽다”고 말하자 정씨는 “오케스트라 키우기가 참으로 힘들다. 그러나 이제 서울시향이 이렇게 성장해 큰 보람을 느낀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 날 프로그램은 살아 있는 소리의 그림과도 같은 드뷔시의 ‘라 메르’와 월츠치고는 상당히 어두운 라벨의 ‘라 발스’에 이어 2부에선 차이코프스키의 ‘비창’교향곡으로 짜여졌다. 정씨의 지휘는 단아하면서도 극적이었다.
물론 클라이맥스는 가슴을 활짝 절개하고 속의 피맺힌 심장까지 내보여주는 ‘비창’이었는데 젊은 단원들이 대부분인 시향은 열정적이요 패기만만하게 연주했다. 다소 과열된 연주로 절제와 조화가 아쉬웠다. 지난 3월 파리에서 북한 관현악단과 파리 오케스트라의 합동연주를 지휘한 정씨의 다음 꿈은 서울시향과 북한의 오케스트라로 구성된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의 합동연주. 그의 또 다른 꿈이 결실을 맺어 음악을 통한 조국 통일의 염원이 이뤄지기를 기원한다.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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