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5일은 선체에 신의 이름을 써 붙이고 ‘신도 침몰시킬 수 없는 배’라고 호언장담하던 영국의 초호화 대형 여객선 타이태닉(Titanic)이 북대서양에서 빙산과 충돌, 침몰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맞아 지난 4일에는 제임스 캐메론의 ‘타이태닉’(1997)이 입체영화로 재개봉됐고 ABC-TV는 오는 14일과 15일 4부작 미니시리즈 ‘타이태닉’을 방영한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현재 ‘타이태닉’이 출항하기 전까지의 얘기를 다룬 TV용 12부작 미니 시리즈 ‘타이태닉: 피와 강철’(Titanic: Blood and Steel)이 제작 후반작업에 들어갔다.
또 이 참사를 다룬 영국 영화 ‘잊지 못할 밤’(A Night to Remember·1958)과 바바라 스탠윅과 로버트 왜그너가 나오는 미국 영화 ‘타이태닉’(1953)이 블루-레이로 나왔고 이 사건을 심층적으로 다룬 300분짜리 기록영화 DVD ‘타이태닉: 완결판’(Titanic: The Complete Story)도 출시됐다. 그리고 TV에서는 각종 특집프로가 방영되고 있으며 여러 관계 서적들도 출판됐다.
‘타이태닉’의 비극이 100년이 되도록 세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까닭은 우선 그것이 해양사고사 중 가장 장대하고 극적이라는데 있다. 그리고 죽음을 맞은 인간의 존엄성과 용기와 자기희생과 함께 계급 차이로 인한 승객들의 생사 갈림길에서의 우선권도 우리의 관심사다. 기록에 따르면 1등과 2등실 아이들은 모두 살았으나 3등실 아이들은 53명이 사망했다.
인간의 자기희생이라는 고귀한 행동은 글이나 영화로 볼 때면 멋있지만 막상 자신보고 하라면 물러서게 되는 힘든 일이다. 나는 타이태닉에 관한 영화를 볼 때면 늘 과연 나라면 구명정의 내 자리를 여자와 아이들에게 양보했을까 하고 자문하곤 한다. 그래서 영화에서 보는 영국 남자들의 자기희생이라는 고지식할 정도로 근엄한 젠틀맨십에 감탄을 하게 된다.
11층 건물 높이에 선체 길이 855피트의 ‘떠다니는 도시’라 불린 타이태닉(사진)은 아일랜드에서 제조돼 1912년 4월10일 2,200여명의 승객을 싣고 뉴욕을 향해 영국의 사우스햄튼에서 출항했다. 그리고 떠난 지 나흘만인 14일 자정께 거대한 빙산과 충돌, 2시간30여분 만인 15일 새벽 2시께 침몰했다. 생존자는 700여명. 사망한 1,500여명의 승객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신대륙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진보의 상징이자 인간의 자연 본질에 대한 최후의 승리라고 으스대던 타이태닉은 구세대와 신세대를 가르는 지렛대였다. 역사학자들은 ‘타이태닉’의 항로는 단순히 사우스햄튼-뉴욕이 아니라 구세계로부터 신세계로 이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 ‘잊지 못할 밤’의 원작을 쓴 작가 월터 로드는 “타이태닉의 침몰로 고요하던 구세대가 끝나고 혼란의 신세대가 도래하게 되었다”면서 “이로 인해 인류는 불확실의 새 세상을 맞게 되었다”고 말했다.
기술이 할 수 있는 것의 최고 완성체로서 ‘가라앉지 않는 배’인 타이태닉의 침몰은 어떻게 보면 인간의 기계 숭상에 대한 경고라고도 볼 수 있다. 한 성직자는 타이태닉의 비극을 “신의 인간의 득의에 대한 처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타이태닉에 관한 여러 영화 중에서도 가장 사실적이요 극적인 것이 다큐드라마 형식을 한 로이 와드 베이커의 흑백작품 ‘잊지 못할 밤’이다. 타이태닉의 출항에서부터 침몰까지를 역사적 사실주의에 입각해 드러매틱하고 긴장감 가득하게 묘사한 감동적인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인 생존자 중 한 명인 2등 항해사 찰스 허버트 라이톨러로는 영국의 베테런 스타 케네스 모어가 나온다. 이에 비하면 역시 흑백인 1953년작 미국 영화는 재미는 있지만 멜로드라마다.
그런데 ‘잊지 못할 밤’을 보면 제임스 캐메론이 ‘타이태닉’을 만들면서 이 영화의 상당히 많은 장면을 그대로 빌려다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타이태닉이 얘기될 때마다 반드시 거론되는 것이 여객선의 오케스트라가 침몰하는 배의 갑판에서 연주한 곡의 이름이다. 구명정을 탄 생존자들이 멀리서 들은 기억에 따라 몇 개의 곡명이 알려졌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곡이 찬송가인 ‘니어러 마이 갓 투 디’다. 캐메론은 자기 영화에서 이 곡을 쓰고 있다.
‘잊지 못할 밤’ 블루-레이에는 생존자들의 증언과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제작 배경 그리고 타이태닉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이 상세히 수록됐다. 어린 두 딸들과 함께 구명정을 타고 살아남은 3등실 승객이었던 한 스웨덴 여자는 “3등실 서비스도 나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분명히 확실했던” 타이태닉의 침몰은 인간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상황의 노리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발전과 진보의 오만에 앞서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이 비극을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이다.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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