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가 본 영화는 모두 340여편. 그러나 이렇게 많은 영화들 중 내 살갗의 속까지 파고들어 나를 격렬하게 감동시키고 또 감탄케 한 영화 10편 고르기가 쉽지 않다. 나의 취향이 늘 예술적이요 감정을 뒤흔드는 소품을 선호해 올해도 이런 영화들이 기억에 남는다.
올해 내가 속한 LA 영화비평가협회(LAFCA)를 비롯해 전미 대도시의 영화비평가협회가 일제히 베스트로 뽑은 영화가 페이스북 창안자인 마크 저커버그(26)의 삶을 다룬 ‘소셜 네트웍’(The Social Network).
2011년도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으로 현재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 영화는 그러나 내겐 특별한 느낌을 주지 못했다. 모든 면에서 흠 잡을 데 없이 잘 만든 영화이긴 하지만 감정적으로 근접감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그런데는 아마 내가 컴맹을 간신히 면한 데다가 페이스 북이라는 기계에 의한 인간 소통의 수단을 좋아하지 않는 나의 편견이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010년은 한국 영화계의 경사가 미국에서 일어난 해다. 비록 장동건의 할리웃 데뷔작인 ‘워리어스 웨이’는 흥행서 참패했지만 봉준호 감독의 ‘마더’가 보스턴과 샌프란시스코의 영화비평가협회에 의해 올해 베스트로 뽑혔다. 그리고 LAFCA는 ‘마더’에 나온 김혜자를 2010년도 최우수 여배우로 선정, ‘마더’는 겹경사를 맞았다.
이 밖에도 이창동이 감독하고 윤정희가 주연한 ‘시’도 뉴욕의 링컨세터 필름 소사이어티에 의해 올해 최우수 영화 중 하나로 선정됐다. 그리고 역시 이창동이 만든 전도연 주연의 ‘밀양’은 뒤 늦게 뉴욕에서 개봉, ‘세계 영화계의 중요한 인물이 만든 위대한 영화’라는 평을 받았다.
나의 베스트 10을 좋아하는 순서대로 적는다.
1.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말더듬이 영국 왕 조지 6세(콜린 퍼스)와 그의 괴짜 언어 치료사(제프리 러쉬) 간의 관계. ‘소셜 네트웍’과 오스카 작품상을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2. ‘아 앰 러브’(I Am Love)-이탈리아 거부 방직회사 회장의 중년 러시아계 아내(틸다 스윈튼)가 자기 아들의 친구를 사랑해 모든 것을 버린다. 이탈리아 영화로 스윈튼의 연기가 압도적이다.
3. ‘키즈 아 올 라이트’(The Kids Are All Right)-여자 동성부부(아넷 베닝과 줄리안 모어)가 인공수정으로 얻은 10대 남매가 자신들의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앙상블 연기가 아름답다.
4. ‘파이터’(The Fighter)-매사추세츠의 막노동자 출신의 권투선수 미키(마크 왈버그)와 그의 약물 중독자 형 디키(크리스천 베일) 그리고 똘똘 뭉친 이들 가족 간의 관계와 복싱을 그린 실팍한 실화.
5. ‘인셉션’(Inception)-남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이 사람의 생각을 훔쳐내는 도둑들이 이번에는 목표 인간의 의식 속에 새 생각을 심는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
6. ‘칼로스’(Carlos)-1970년대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베네수엘라 태생의 테러리스트 칼로스(본명 일리치 라미레스 산체스)의 실화. 6시간짜리 프랑스 영화.
7. ‘타운’(The Town)-세계 넘버원 은행강도 타운인 보스턴 인근의 찰스타운을 무대로 은행강도와 도주와 추격이 박진감 있게 펼쳐진다. 벤 애플렉 감독 주연.
8. ‘래빗 호울’(Rabbit Hole)과 ‘블루 밸런타인’(Blue Valentine)-둘 다 부부관계의 단절과 부식을 그린 어둡고 내면 성찰적인 드라마로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다.
9. ‘고스트 라이터’(The Ghost Writer)-대필작가(이완 맥그레고)가 전 영국 수상(피어스 브로스난)의 자서전을 집필하면서 수상의 과거 비밀이 노출되고 이어 자신의 생명마저 위협을 받는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
10. ‘마드므와젤 샹봉’(Mademoiselle Cahmbon)-프랑스의 한 작은 도시의 초등학교 여교사와 건축 노동자인 학부모 유부남 간의 고요하면서도 격정적인 비련.
이들 외에 내가 올해 특히 애정을 가지고 본 영화들은 다음과 같다.
▲‘키스’(Kisses)-더블린 교외에 사는 10대 초반의 이웃 소년과 소녀의 하룻밤 가출기. 아일랜드영화. ▲‘나싱 퍼스널’(Nothing Personal)-혼자 배낭여행을 하는 홀란드 여자와 아일랜드의 작은 섬에 혼자 사는 병약한 남자 간의 무언의 관계. 아일랜드 영화. ▲‘공원 벤치의 가이와 매들라인’(Guy and Madeline on a Park Bench)-존 캐사베티즈와 자크 데미의 영화를 연상케 하는 환상적인 어른들을 위한 뮤지컬 흑백 동화. ▲‘소녀’(The Girl)-스웨덴의 시골에서 여름동안 혼자 집을 지키는 어린 소녀의 성장기. 그리고 윤정희의 섬세하고 민감한 연기가 돋보이는 ▲‘시’.
이 밖에도 ‘소셜 네트웍’과 스웨덴 영화의 리메이크인 소녀 흡혈귀와 왕따 소년의 로맨스를 그린 ‘렛 미 인’(Let Me In) 및 귀신 로맨스 드라마인 아일랜드 영화 ‘에클립스’(The Eclipse) 그리고 둘 다 인디 드라마로 앙상블 캐스트의 ‘플리즈 기브’(Please Give)와 ‘마더 앤 차일드’(Mother and Child) 등도 좋은 영화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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