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절망과 슬픔 그리고 고독과 죽음으로부터 우리의 영혼을 벗어나게 하는 한 줄기 빛이라는 것을 깨닫고자 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헨릭 고레츠키(Henryk Gorecki·사진)의 교향곡 제3번 ‘슬픈 노래들의 교향곡’(Symphony of Sorrowful Songs)을 들어보라고 권하겠다.
폴란드 작곡가 고레츠키가 지난 1976년에 작곡한 무척 느린 전 3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은 하나의 경건한 기도와도 같다. 기도 후 응답을 받는 감사와 환희를 느끼게 되는 성스럽고 신비한 음악이다.
이 교향곡 하나로 뒤늦게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고레츠키가 지난 12일 76세로 사망했다. 내가 고레츠키의 제3번 교향곡을 알게 된 것은 지난 1990년대 중반 타임지에 실린 글 때문이었다. LA의 한 방송국에서 이 교향곡을 내보내자 차에서 이를 듣던 많은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방송국에 작곡가의 이름을 묻는 전화를 잇달아 걸어왔다는 내용이었다.
글을 읽자마자 레코드 가게에 가서 넌서치(Nonesuch)가 발매한 음반을 샀다(이 음반은 당시 전 세계적으로 120만여장이 팔렸고 미 클래시칼 차트에 1년간 계속 탑에 올랐는가 하면 심지어 영국에서는 팝차트 6위에 오르기도 했다.)
소프라노 던 업쇼가 노래하고 데이빗 진맨의 지휘로 런던 신포니에타가 연주하는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느낀 감동은 진공상태와도 같은 무기력감이었다. 나는 지금 이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고 있다. 나의 죄와 어둠과 하찮은 집념들을 대속해 주는 음들이 수도승의 만보처럼 숙연한데 특히 천상의 음성을 지닌 업쇼가 부르는 만가가 가슴을 친다.
전 3악장이 엄청나게 느린 렌토로 이어지는 교향곡은 소프라노의 독창을 오케스트라가 반주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소프라노는 제1 악장에서는 성모 마리아(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고레츠키는 여기서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리아의 고통을 얘기하고 있다)를 나타내고 제 2악장에서는 2차 대전 때 폴란드에 세워진 나치 수용소에 수감됐던 18세난 헬레나 완다 블라주시아코브나의 기도를 그리고 제3 악장에서는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어머니의 호소를 노래한다.
특히 새벽 공기처럼 청징하고 비통하게 아름다운 것은 제2 악장의 노래다. 이 노래의 가사는 헬레나가 자기 감방 벽에 써놓은 마리아를 향한 짧은 기도이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순수하신 천국의 여왕이시여 나를 영원히 보호하소서. 우아하신 성모 마리아여 축복받으소서.”
지난 1997년 10월3일 고레츠키가 직접 지휘하는 교향곡을 당시 대학생이던 아들과 들을 기회가 있었다. USC 음대가 마련한 ‘고레츠키 가을’ 연주회 및 심포지엄을 위해 고레츠키가 방미, 학교내 보바드 강당에서 USC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당시 연주를 듣고 쓴 글을 재록한다.
교향곡은 슬프고 고통스러운데 이런 것들은 단순히 슬프고 아픈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들을 너머 듣는 사람에게 평화와 위로를 준다. 단조롭다시피 한 현들의 최면적 반복 음이 숨이 막힐 정도로 길고 느리고 어둡다. 음들은 낮고 둔중하면서도 맑고 정열적이다. 현들의 집합 음이 영적이요 신비한 화음을 이루면서 완벽한 미를 창조하고 있다.
소프라노 엘리자베스 하인스의 노래는 영혼이 깨어지듯 절망적이면서도 정결하다. 그 것은 통곡이요 비명이며 간구인데 칠흑 같은 어둠을 비수처럼 찌르고 들어오는 빛의 줄기들의 감촉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구원과 속죄와 희망의 가능성을 찾게 된다. 이 음악이 인간의 비인간성에 대한 반성으로 해석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지휘봉 없이 지휘하는 고레츠키는 마치 이제 처음으로 음들을 창조해 내듯 손과 어깨를 비롯해 온 몸에 힘을 가득히 주면서 엄격하게 오케스트라를 이끌어나갔다. 그런 제스처에서 필사적인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는 마치 누에가 실을 토해내듯 베이스로부터 시작해 차례로 첼로와 비올라와 바이얼린의 음들을 서서히 자아냈다. 나는 현의 음들의 거미줄에 걸린 날벌레가 되고 말았다.
음들이 수없이 반복되면서(단순한 것과 함께 고레츠키 음악의 특징이다) 지연되는 종결부는 침묵으로 끝이 났다. 고행을 마친 수도자의 환희감이 이런 것일까. 종교적이요 감정적인 경험을 하면서 왜 이 음악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지를 알았다. 종교적 믿음에서 영감을 얻으면서 미니말리스트적 음악을 만드는 고레츠키의 단순함 속에 가득한 아름다움과 풍요를 심호흡하면서 내 영혼이 정화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KUSC-FM(91.5)은 27일 하오 4시30분 고레츠키를 추모하면서 1997년에 고레츠키가 지휘한 이 교향곡을 방송한다.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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