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계를 싫어하고 또 무서워한다. 그래서 기계를 다루는 솜씨도 조막손 솜씨다. 집에서 쓰는 랩탑도 불과 몇 달 전에야 샀다. 시대에 뒤지는 공룡과도 같은 인간이다.
기계란 편리한 것이긴 하지만 사람이 너무 기계에 의존하다 보면 인간성이 수척해지게 마련이다. 요즘은 대화를 비롯해 사람들 간의 모든 것이 컴퓨터에 의해 대행돼 인간적인 접촉이 자꾸만 실종되고 있다.
같은 집 안에서 가족에게 e-메일을 보내고 연애편지와 크리스마스 카드도 e-메일로 보내니 우표 값은 덜 들겠지만 그것들을 받는 감촉이 차갑고 정이 안 간다. 그러고 보니 나도 편지를 안 쓴지가 꽤 오래 된다.
요즘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블랙베리와 아이폰에 매달려 산다. 극장과 식당엘 가도 그렇고 심지어 차를 운전하고 길을 가면서도 그것으로 계속해 정보와 대화를 수신하고 또 송신한다. 그런 모습들이 마치 혼이 없는 로봇들 같아 보노라면 기분이 섬뜩해진다.
또 영국 성공회에서는 고백성사도 컴퓨터로 받는다고 한다. 고백성사는 죄를 지은 인간과 신의 대리인인 신부 간에 이뤄지는 영적인 행위다. 그런데 이런 영적 행위마저 이젠 기계에 의해 대행될 지경이니 이러다가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 날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겠다.
이런 내가 바로 얼마 전부터 퇴근해 집에 돌아가자마자 컴퓨터에 매달리게 됐다. 그 연유는 이렇다.
얼마 전 친구 C가 집으로 저녁 초대를 했다. 저녁을 먹은 뒤 위스키를 마시며 서로 얘기를 나누던 중 친구는 “흥진아 너 유튜브로 옛날 노래 한 번 들어 볼래” 하면서 랩탑을 들고 나왔다. 난 유튜브라는 것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볼 수 있는 것인지를 몰랐었다.
친구는 컴퓨터를 켠 뒤 유튜브 웹사이트를 열어 흘러간 팝송들을 골랐다. 나 보고 신청곡도 받는다고 해 둘은 서로가 옛날에 즐겨 듣던 팝송들을 아이들처럼 좋아하며 밤새 들었다. 컴퓨터에 연결된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학창시절의 ‘올디스 벗 구디스’를 듣자니 감개가 무량했다.
더구나 신기한 것은 우리가 즐겨 듣던 폴 앵카, 짐 리브스, 마티 로빈스, 단 깁슨, 닐 세다카 및 바비 다린과 팻시 클라인 등의 노래들을 옛날에 그들이 무대에서 공연하던 모습을 담은 비디오와 함께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젠 대부분 세상을 떠난 가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노래를 듣는다는 것이 거의 초현실적인 기분마저 느끼게 했다.
친구는 “이것이야 말로 타임머신이 아니고 무엇이겠니”라며 감탄했는데 친구 말대로 로맨틱한 노래의 날개를 타고 옛 학창시절 음악 감상실과 다방에 앉아 있던 때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음악 감상실 돌체와 여심과 초원과 수련 다방들이 눈앞을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친구와 나는 분위기와 노래에 취해 새벽 2시가 넘도록 음악 감상을 했는데 내친 김에 클래시컬 뮤직까지 즐겼다. 나이가 먹으면 남는 것은 추억뿐이라더니 친구와 나는 어느덧 추억의 영역에 발을 디딘 자들이 되어버렸다.
그 뒤로 나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제일 먼저 유튜브를 열곤 한다. 스피커도 베스트 바이에서 사다 컴퓨터에 연결했다. 팝송과 클래시컬 뮤직뿐 아니라 흘러간 한국 뽕짝 가요와 함께 샹송과 칸초네와 독일 노래까지 닥치는 대로 즐기고 있다.
토스카니니가 엄격한 자세로 지휘하는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운명’ 교향곡 제4악장과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지휘자인 푸르트벵글러의 베토벤을 비교해 보기도 하고 스테파노가 부르는 ‘남 몰래 흐르는 눈물’과 찍찍 거리는 LP로 나오는 질리가 부르는 나의 애청곡 ‘라르고’를 들으며 감격해 하고 있다. 음악 감상실이 따로 없는데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다.
쿵작쿵작 하는 한국 뽕짝은 확실히 술맛 나는 노래다. 아직 앳된 모습의 문주란이 술에서 덜 깬 듯한 음성으로 부르는 ‘공항의 이별’, 배호가 구성지게 부르는 ‘안개 낀 장충단 공원’ 그리고 권혜경의 애처로운 ‘산장의 여인’과 나훈아가 열창하는 ‘머나먼 고향’을 듣고 있자니 서울에서의 나의 대학과 선생 그리고 기자시절이 떠올라 눈시울이 적셔진다.
추억이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인데 내가 유튜브로 센티멘털 저니를 할 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질 못했다.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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