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냉가슴
응급실에 도착하니 일단 안심이다. 심장에 문제가 있어서 병원에 도착하니 의사와 간호사가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다.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데 목사님들이 응급실에 도착을 하셨다. 그러는 사이 엄마는 약하게 모르핀을 맞으셔서 고통 없이 주무시고 계시다. 달려온 분들이 다들 놀란 얼굴로 응급실에 그리고 보호자 대기실에서 함께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엑스레이도 찍고, CT 촬영을 했는데도 원인을 찾지 못했다. 날이 밝으면 스트레스 검사와 다른 검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새벽 1시 엄마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시는 것을 보고 다들 집으로 돌아가셨다.
잠도 못 자고 소파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언니가 내가 도착하니 달려 나온다. “엄마, 오늘 돌아 가시는 줄 알았어. 온몸이 마비가 되면서 숨을 못 쉬는 거야.” “진작 911 부르지.” “무섭잖아, 내가 얼마나 놀라고 떨었는지 알아? 형부 생각도 나고, 괜찮을 거라고 엄마가 그래서 기다렸지.
널…” “내가 뭐 의사야? 무슨 일 있으면 나 기다리지 마, 내가 해결사도 아닌데 왜 다들 나만 기다려?” “애들은 또 얼마나 놀랬는데!” “애들은 자?” “애들이 울고불고 난리였어. 그 와중에 승혁이는 빨래를 개키더라. 자기가 할머니 말 안 들어서 할머니가 아프시다고. 그것도 울면서. 할머니. 아프지 마세요. 이제 할머니 말 잘 들을게요. 라고 하면서…”
김장독 김치를 먹은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입속이 찡한지. 위급했던 상황을 생각하니 우리 식구들이 얼마나 놀랐을까 가슴이 먹먹하다. 자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쓰러져 자고 있다.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그대로인 채 말이다. 그러나 저러나 엄마에게 아무 일 없어야할 텐데…
다음날, 전화기가 불이 났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얼마나 딸들이 엄마를 고생시켰으면 심장발작을 일으켰냐고 하시는 분도 계셨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인데 왜 이리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다. 친정아버지 돌아가시고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언제나 바쁘고 정신없는 작은 딸과 하루 종일 일하고 늦게 집에 오는 큰딸과 올망졸망 손주 넷, 게다가 엄마는 간병일까지 하고 계셨으니 몸에 얼마나 무리가 많이 갔을까를 생각하니, 참…
엄마는 원래 그런 줄 알았다. 우리 엄마는 신앙심이 깊고, 언제나 밝고, 긍정적이고, 매사에 유머스럽게 말하고, 사람들에게 넉넉히 베풀 줄 알고, 사랑이 많고, 남의 아픔을 잘 헤아릴 줄 아는 엄마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아버지의 빈자리도 딸들의 힘든 상황도 여러 가지 열악한 환경도 잘 뛰어 넘을 수 있는 엄마라고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수퍼우먼이라고 언제나 각인이 되어 있었다. 엄마가 쓰러지시니 엄마의 아픔이 엄마가 사람들에게 심지어 나에게 조차도 말하지 못하고 힘들어 했던 그 무언가가 많았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저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속상한 것, 힘든 것, 아픈 것, 어려운 것들을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히고 지내온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 승욱이가 나를 힘들게 할 때 너는 엄마를 왜 이리 힘들게 하냐고, 너는 왕자고 나는 하녀냐? 내가 너의 몸종이냐? 라고 했던 내 모습이 참 부끄러워. 승욱이의 모습이 내 모습인 것을 알게 되었어. 나도 조금만 힘들면 엄마에게 손을 뻗치고 엄마의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좋을 대로 행동한 것들이 마구 생각이 나. 엄마 힘들었지? 엄마 그동안 외로웠지? 엄마 마음을 다 헤아려주지 못해 너무 죄송해요. 승욱이의 눈짓, 몸짓, 표정에도 눈치 빠르게 반응하던 내가 엄마에게 그것의 반의반도 해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요. 언제나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참 중요한 것들을 간과하고 지냈던 것 같아. 엄마 얼른 벌떡 일어나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정확한 원인을 찾을 수가 없단다. 급기야 엔지오그램이란 것을 해서 심장 안을 들여다보고 정밀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엔지오그램은 요즘 같은 세상에 수술이라고도 부르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시술이라고 다들 걱정 말라고 하신다. 얼마나 심장이 막힌 걸까. 벙어리 냉가슴을 뻥 뚫어줄 시술이 내일이다.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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