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성비 좇아 유명브랜드의 대체품 찾는 ‘듀프’ 유행
▶ 의류·화장품·안경 등 다양한 제품서 ‘저렴이 버전’ 등장
▶ 대체품 리스트 공유하고 ‘오픈런’도…SPA 매출 ‘껑충’

최근 MZ세대(1980년대초∼2000년대초 출생)에서 실용 소비를 중시하는 요노(YONO·You Only Need One)가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사진은 작년 12월 서울 시내의 한 제조·유통 일원화(SPA) 브랜드 매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머리로는 샤넬, 현실은 다이소를 산다."
샤넬 '립 앤 치크밤'(약 6만원)과 유사해서 다이소에서 입소문이 난 손앤박 '컬러밤'(3천원)을 두고 엑스 이용자 'boo***"가 쓴 말이다.
고물가 속 가성비를 좇아 대체품을 소비하는 '듀프'가 새로운 유행으로 떠오르고 있다.
듀프(Dupe)는 '복제'라는 뜻의 '듀플리케이션'(Duplication)의 줄임말이다. 이른바 '듀프족'은 가격은 저렴하지만 고가 브랜드에 버금가는 품질을 가진 대안 제품을 찾아 소비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듀프족은 '저렴이 버전', '브랜드맛', '명품st'라는 말이 붙는 대안 제품 정보를 SNS에 공유하는가 하면 제품 발매일에 맞춰 매장으로 '오픈런'을 하기도 한다.
기존 브랜드의 유사 제품이라는 점에서 '짝퉁'과 다르지 않다는 비판이 있지만 능동적인 소비 행태로 봐야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달 26일 청량리 다이소 매장. 홀리카홀리카의 아이섀도, 기능성 화장품 리들샷 등 소비자들이 자주 찾는 제품은 계산대에 문의하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이른바 해외 명품 브랜드의 대체품으로 알려진 저가 국산 브랜드들이다.
다이소 입점 화장품은 시중 제품과 비교해 소용량이면서 개당 5천원을 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다음날 청량리 롯데백화점. 직장인 이은지(28) 씨는 두 손에 '포터(일본 브랜드) 저렴이 버전'으로 입소문이 난 유니클로 가방과 지난달 출시된 'JW앤더슨(영국 브랜드) 맛' 의류를 한가득 들고 있었다.
이씨는 "복제품을 산다고 창피하지 않다. 똑똑한 소비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듀프 유행에 불을 지핀 건 월마트의 '워킨백'(Wirkin·월마트+버킨백)이다.
에르메스의 수천만원짜리 버킨백과 비슷한 디자인인데 가격은 78달러(약 11만원)다.
작년 8월 워킨백이 출시된 이후 틱톡에서는 이를 소개하는 영상이 다수 올라왔다.
틱톡커 '스타일드바이크리스티'가 올린 워킨백 '언박싱(포장을 푸는 것)' 영상의 조회수는 900만 회를 넘었다.
걸그룹 블랭핑크의 제니가 광고 모델로 활동하는 안경 브랜드 '젠틀몬스터'의 저렴이 버전으로 유명해진 '블루엘리펀트'도 인기다. 서울숲에 첫 매장을 연 이후로 작년 한해 동안 16곳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젠틀몬스터가 30만원대인 반면, 블루엘리펀트는 5만~7만원 선을 유지하고 있다.
두 브랜드에 디자인이 비슷한 제품이 있어 한때 같은 공장에서 생산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향수 부문에서는 4만∼6만원 선의 자라(ZARA)가 강세다.
유튜브에서는 디올, 조말론, 구찌 등 수십만원짜리 명품 브랜드 향수와 자라 향수를 비교하는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아예 값비싼 향수를 베낀 '카피향수'도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1만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브랜드는 물론 '르라보 상탈', '딥티크 발다프리크', '바이레도 모하비고스트' 등 특정 제품까지 카피한 대체품들이다.
듀프 소비는 실용적인 소비를 중시하는 '요노'(YONO·You Only Need One) 가치관과 맞닿아 있다.
'요노'는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뜻으로, 과감한 지출에 거리낌 없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의 시대가 저물고 새롭게 부상한 트렌드다.
고물가와 맞물려 소비 가치관이 변화한 것이 '듀프족' 부상의 원인으로 꼽힌다
사회초년생 최은아(26) 씨는 "고가 브랜드와 비슷하다고 알려진 인디 브랜드 제품을 SNS에서 접하고 홀린 듯 주문한 적이 있다"면서 "명품 하나쯤 있어야 한다는 인식은 사라지고 개성과 실용성을 더 추구하는 1020들이 늘어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최근 가수 청하가 바른 립 제품이 2만원도 안 되는 토니모리 제품으로 화제가 됐는데, 이런 사례를 보면 경기도 어려운데 꼭 비싼 브랜드를 사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패션 부문에서 듀프족을 겨냥한 상품이 많이 나오고 있다.
'룰루레몬 스타일 후드 티셔츠', '까르띠에 맛 시계'와 같이 타 브랜드와 비슷한 느낌만 내고 디자인 개발에 투자하는 비용이 없으니 가격이 낮을 수밖에 없다.
유니클로는 르메르, 질샌더, JW앤더슨 등 유명 해외 브랜드 디자이너와 협업해 듀프 맛집으로 자리매김했다.
가성비 의류 판매에 주력하는 '무신사 스탠다드', '스파오', '탑텐' 등 제조·유통 일원화(SPA) 브랜드 매출도 성장하고 있다.
무신사 스탠다드의 작년 1∼10월 오프라인 매출은 재작년 동기 대비 3.5배로 늘었다.
스파오의 작년 12월까지의 매출은 재작년 동기 대비 25% 증가했고 탑텐도 작년 매출이 재작년보다 11% 증가했다.
이수진 서울대 소비트렌드센터분석센터 연구위원은 3일 "짝퉁은 명품 브랜드 로고나 상품까지 그대로 카피했기에 음지의 소비지만, 듀프는 소비자가 능동적으로 제품을 찾는 행위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자랑거리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기가 나쁠 때 가품 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이전에도 보이는 현상"이라면서 "모조품과 듀프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기업에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여지보다 소비자 선택권 확장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을 기대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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