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은행을 털지요.” 영화 ‘바니와 클라이드’에서 클라이드가 경제공황시대 은행에 집을 차압당하고 보따리를 싸 유랑 길에 나서는 농부에게 한 말이다.
1930년대 초반 미 남서부를 무대로 은행들을 털었던 연인강도 바니 파커와 클라이드 배로는 페이 더나웨이와 워렌 베이티가 주연한 영화 때문에 로맨틱한 갱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그 반대다. 둘은 비록 서로를 사랑하기는 했지만 매우 탐욕스러운 살인광들이었다. 우스운 것은 명색이 은행강도인 둘이 턴 최고의 액수가 고작 3,800달러였다는 점.
둘에 비하면 진짜로 멋있었던 신사 은행강도는 에드가 후버 미연방수사국(FBI) 국장팀이 4개월간의 인간사냥 끝에 사살한 존 딜린저다. 역시 경제공황시대 시카고 등 미 중서부지역을 주름잡고 다니며 은행과 열차를 털었던 딜런저는 자기를 의적 ‘로빈 후드’라고 생각했었다.
그는 은행을 털 때 고객 돈은 손대지 않았는데 당시 시민들은 가차없이 재산차압을 행사하는 은행을 증오해 딜린저는 신문에서마저 옹호 받을 정도였다. 그는 예의 바르고 유머가 있으면서도 강인해 법망을 피하기 위해 아마추어 의사로부터 얼굴 성형수술을 받으면서도 아프다는 소리 한마디 안 했던 터프가이였다.
FBI 사상 가장 중요한 케이스였던 딜린저 인간사냥은 1934년 7월22일 무더운 여름 밤 11시께 시카고의 바이오그래프 극장 부근에서 끝났다. 애인과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오던 딜런저를 잠복해 있던 FBI 요원들이 덮쳐 그는 4발의 총알을 맞고 죽었다. 그가 본 영화는 클라크 게이블이 나온 갱영화 ‘맨해턴 멜로드라마’ 였다.
경제공황시대 미 중서부를 무대로 은행과 열차강도 및 납치극을 벌이며 요란한 범죄의 물결을 일으켰던 유명 갱스터들과 이들을 잡으려고 혈안이 됐던 FBI의 활동을 경찰 보고서처럼 자세하고 사실적으로 적은 흥미진진한 책 ‘공공의 적’(Public Enemies-The Penguin Press)을 읽었다. 기자 출신의 브라이언 버로가 쓴 이 책은 592페이지의 방대한 양으로 버로는 마치 사건기자가 현장취재 후 심층 보도하듯 적나라하고 일체의 사견 없이 적고 있다. 우리는 이 시대 갱스터들(시카고의 신디케이트와 이탈리안 마피아가 생성되기 전)을 주로 영화를 통해서 알고 있다. 그러나 할리웃은 사실보다는 센세이셔널한 미사여구 수법을 동원, 이들을 로맨틱화했었다.
책을 읽고 새로 알게 된 것은 이들 은행강도의 범죄물결 기간이 1933년 6월에서 1935년 1월까지 불과 20개월이었다는 점. 그리고 따로 각기 행동한 것으로 알고 있는 유명 갱스터들이 서로 연관이 있었다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됐다.
재미있는 것은 은행강도가 직업인 갱스터들이나 그들을 뒤쫓는 FBI 요원들이 모두 그 당시만 해도 거의 코믹할 정도로 서투른 점이 많았다는 점. 갱스터들은 열차에서 현찰 배낭 대신 우편물 배낭을 강탈하는가 하면 신출내기들로 구성된 FBI 요원들은 그들이 몇 달째 쫓고 있는 갱스터들이 차를 타고 옆으로 지나가도 모르고 놓치기가 일쑤였다. 그러다가도 서로 가차없이 기관총질을 하는 대목을 읽을 때면 아이들의 도둑과 형사놀이를 보는 느낌이다.
이 책은 딜린저와 바니와 클라이드 외에 ‘머신-건 켈리’ ‘프리티 보이’ 플로이드, ‘베이비 페이스’ 넬슨 그리고 앨빈 카피스가 바커 가족 일당과 함께 조직한 바커갱 등과의 ‘범죄와의 전쟁’을 날짜와 시간까지 적어가며 상술했다. 이 ‘범죄와의 전쟁’은 1933년 6월17일 상오 7시15분 캔사스시티 유니언 스테이션 주차장에서 발생한 소위 ‘캔사스시티 대학살’을 계기로 시작됐다. FBI 요원을 비롯한 5명이 숨진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범죄와 전쟁을 하면서 FBI는 비로소 현대화했다. ‘범죄와의 전쟁’은 1935년1월 후버 지휘하에 뉴올리언스서 카피스가 체포되면서 끝났다.
이 책과 걸맞는 왕년의 걸작 갱스터 영화 6편이 워너 홈비디오(WHV)에 의해 DVD 박스세트로 나왔다. 제임스 캐그니가 주연한 ‘공공의 적’(The Public Enemy·사진), ‘백열’(White Heat), ‘더러운 얼굴의 천사들’(Angels with Dirty Faces), ‘번창하는 20년대’(The Roaring Twenties)와 에드워드 G. 로빈슨이 나오는 ‘작은 시저’(Little Caesar) 및 험프리 보가트가 나온 ‘화석의 숲’(The Petrified Forest) 등은 명우들의 좋은 연기가 있는 불후의 명작이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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