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을 초월한 캐스팅은 할리웃이 전래적으로 행해온 습관이다. 할리웃의 이런 관행은 인류 보편주의 정신에서가 아니라 흥행을 위한 장삿속에 기인한 것이다.
오는 연말 개봉을 앞두고 지금 촬영 후반 작업중인 콜럼비아사의 영화 ‘게이샤의 추억’(Memoirs of Geisha)의 세 주인공 게이샤역이 모두 비일본인 배우에게 주어진 것도 바로 할리웃의 이런 히트 위주 성향 때문이다. 댄 고든의 베스트 셀러가 원작인 ‘게이샤의 추억’은 소녀시절 가난한 어촌에서 교토의 게이샤 양성소로 팔려와 1930년대 일본 최고의 게이샤가 된 가공 인물 사유리에 관한 얘기다.
그런데 감독 롭 마샬이 사유리 역에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중국 배우 지이 장을, 사유리의 라이벌 하추모토역에 역시 중국 배우 공 리를 그리고 사유리의 보호자인 마메하역에 말레이시아 배우 미셸 요를 각기 선정, 할리웃의 또 다른 아시아 왜곡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본 고유 문화인 게이샤역을 모두 비일본인 배우들이 맡았으니 일본 사람들의 심기가 크게 불편할 것은 당연지사.
할리웃의 소위 ‘문화 너머’ 배역 선정은 무성영화 시대부터 있어 왔다. 흑인역은 백인들이 얼굴에 검을 칠을 하고 연기했는데 할리웃 최초의 토키 ‘재즈 싱어’에서도 알 졸슨이 얼굴에 새카만 칠을 하고 나와 ‘마이 매미’를 노래 불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같은 경우.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는 미남부의 전형적인 ‘서던 벨’인데 이 역을 미국의 내로라 하는 스타들인 캐서린 헵번, 베티 데이비스, 수전 헤이워드 및 폴렛 고다드 등을 제치고 영국 배우 비비안 리가 맡아 당시 작품의 무대인 애틀랜타 사람들의 노기를 자극했었다. 러시아 사람인 의사 지바고역을 이집트계인 오마 샤리프가 맡은 것과 지난해 나온 ‘네벌랜드를 찾아서’에서 스코틀랜드 작가 J.M. 배리로 미국인 자니 뎁이 나온 것도 같은 경우다. 또 얼마 전 개봉된 빈 디즐 주연의 액션 코미디 ‘특공대원 보모’에서는 북한 스파이 부부로 중국계 배우들이 나왔다.
또 셜리 매클레인은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인도 공주로 나왔고 말론 브랜도는 멕시코 농민혁명의 지도자 사바타로 나왔었다. 그런데 ‘비바 사바타’에는 멕시코 태생의 앤소니 퀸이 브랜도의 형제로 나와 오스카상을 탔다.
그리고 잭 팰랜스는 액션이 박진한 재미 만점의 영화 ‘프로페셔널’(The Professionals-최근 DVD로 출시)에서 멕시코 산적두목으로 나왔는데 그는 웨스턴 ‘애로헤드’에서는 아파치 인디언 추장으로 출연했었다.
특히 웨스턴의 아메리칸 인디언 추장으로 백인 배우들이 많이 나왔다. 할리웃의 웨스턴들은 대부분 좋은 미국인들이 인간 미물들인 인디언들을 때려잡는 내용이어서 ‘애로헤드’가 나왔었을 때는 인디언은 물론이요 뜻 있는 백인들의 격렬한 비난을 받았었다.
백인 인디언 추장 중 가관인 것이 록 허드슨. 그는 지미 스튜어트가 나온 걸작 ‘윈체스터 ‘73’에서 잘 먹어 살이 찐 하얀 피부의 인디언 추장으로 나왔는데 나는 지금도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상반신을 드러낸 그가 서툰 영어를 쓰는 장면에서 키들키들 웃게 된다. 앤소니 퀸은 게리 쿠퍼가 나온 ‘평원아’에서 샤이엔 인디언으로 나왔고 척 카너스는 ‘제로니모’에서 제로니모로 주연했다. 어릴 때 용산의 성남극장에서 재미있게 본 웨스턴 ‘아파치’서 백인에게 굴하지 않은 아파치 전사로 나온 배우는 버트 랜카스터였다.
그리고 지미 스튜어트가 주연하고 백인 제프 챈들러가 실존했던 현명한 인디언 추장 코티즈로 나온 ‘부러진 화살’은 인디언 문제를 심각히 다룬 몇 안 되는 웨스턴이었다.
국적을 초월한 캐스팅 때문에 특히 인상에 남았던 영화가 ‘전송가’이다. 한국전 고아들의 영웅인 미공군 헤스 대령의 실화인데 여기서 치마 저고리를 입은 한국 여인으론 말론 브랜도의 전처였던 애나 캐쉬피가 나왔었다. 피부색이 그나마 비슷했던 것이 다행.
그러나 할리웃 캐스팅 사상 최고 걸작은 ‘정복자’에서 징기스칸으로 나온 존 웨인이라 하겠다. 웨인이 몽고형 콧수염을 하고 긴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 기가 막혀 웃음조차 안 나온다. 징기스칸의 애인으로는 새파란 눈의 빨강머리 수전 헤이워드가 나왔다.
중국과 일본이 서로를 적대적 감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게이샤의 추억’이 일본에서 개봉되면 어떤 반응을 받을지 궁금하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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