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디가 아름다운 리햐르트 슈트라우스(그의 교향시 ‘죽음과 정화’는 나의 애청곡이다)의 오페라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Ariadne auf Naxos)는 오페라 속의 오페라라는 독특한 양식을 지닌 코믹 오페라다. 슈트라우스가 자신의 콤비인 오스트리아의 서정시인 후고 폰 호프만슈탈(‘장미의 기사’ ‘그림자 없는 여인’)의 대본에 곡을 붙인 이 오페라는 내용도 재미있고 음악도 매우 친근감이 간다. 내용이 음악의 예술성과 상업성 또 순수예술과 대중오락의 갈등과 대립을 다룬 것이어서 오페라라는 장르와 그것을 즐기는 관객들마저 풍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원래 호프만슈탈은 자기가 번역한 몰리에르의 연극 ‘부르좌 귀족’을 공연한 뒤 제2부로 오페라 ‘아리아드네’를 공연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슈트라우스의 반대로 몰리에르 연극 대신 오페라적 서막과 ‘아리아드네’로 바뀌었다. 이런 사실과 오페라 내용이 비슷해 더 재미있다(루이 14세와 그의 궁정음악가 륄리 그리고 몰리에르의 관계를 그린 프랑스영화 ‘춤추는 왕’ Le Roi Dance의 화려한 사운드 트랙이 최근 Deutshe Grammophon에 의해 나왔다).
그런데 이 오페라는 지난 여름 런던의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가 공연하기 얼마전 주연 여가수 교체로 화제가 됐었다. 당초 아리아드네 역으로 미국의 소프라노 데보라 보이트가 선정됐었으나 뒤늦게 로열 오페라측이 보이트를 너무 뚱뚱하다는(220파운드) 이유로 갈아치워 오페라계에 큰 논란이 있었다.
아리아드네는 희랍 신화 속 크리트의 미노스 왕의 딸이다. 그녀는 테세우스를 사랑해 그를 미노타우어의 미로에서 구해 내나 연인으로부터 무인도 낙소스에서 버림받은 채 죽기만을 기다린다. 오페라 ‘아리아드네’는 이런 신화에 희가극을 짬뽕한 튀기 같은 작품이다.
로스앤젤레스 오페라가 공연하는(2일 한차례 공연이 남았다) ‘아리아드네’의 서막은 19세기 비엔나에서 무명의 현대도시로 바뀌었다. 한 부자가 집에 초대한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오페라 공연을 작곡가에게 의뢰한다. 그런데 이 주인이 돌연 변덕을 부려 오페라와 딴따라 코미디를 섞어 공연하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공연은 불꽃놀이를 즐기기 위해 밤 9시에 꼭 끝나야 한다는 것. 이것 때문에 작곡가와 프리마돈나(그녀는 후에 아리아드네로 나온다) 대 코미디 극단의 생기발랄한 여주인공 제르비네타 간에 말싸움이 벌어진다. 그러나 제르비네타의 애교에 넘어간 작곡가가 오페라나 코미디나 다 예술이라고 타협,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서막은 끝난다.
이어 오페라는 세 명의 요정이 지켜보는 가운데(한국인 소프라노 최주희가 나온다) 아리아드네가 동굴 앞에 누워 죽기만을 기다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아리아드네가 부르는 긴 아리아는 바그너의 무게를 지녔는데 몸매가 풍만한 소프라노 페트라-마리아 슈니처가 볼륨 있는 성량으로 잘 소화해 낸다.
상사병에 걸린 아리아드네를 결사적으로 위로하는 것이 제르비네타(전력 투구하며 노래하는 소프라노 류보프 페트로바의 음성이 맑고 고운데 약간 덜 다듬어진 듯). 연애파인 제르비네타는 “세상에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 왜 한 남자에게 매달리느냐”고 아리아드네를 어르고 힐난하지만 순정파인 아리아드네는 요지부동(사진). 그러나 아리아드네는 하늘에서 윈드서핑 보드를 타고 내려온 바커스와 눈이 맞아 올림퍼스에 올라 그 뒤로 내내 행복하게 살았단다.
이 오페라는 여자판이다. 남자의 주요 역은 서막과 오페라에서 각기 테너와 바커스로 나오는 테너뿐이고(한국인 베이스 장진영이 서막서 종복으로 나온다) 나머지 노래들은 거의 다 여가수가 부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리아드네와 제르비네타와 함께 작곡가도 메조소프라노가 노래 부르는데 작곡가 역의 리오반 브라운의 목소리가 잘 익었다. 지휘는 켄트 나가노가 했는데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파트너인 에드윈 챈이 만든 세트 디자인이 단순하면서도 참신하고 배경 스크린을 이용한 효과와 의상도 매우 좋다.
이 오페라의 현대적이면서도 신선한 연출은 영화 ‘프렌치 커넥션’으로 오스카 감독상을 받은 윌리엄 프리드킨이 했다. 그는 이미 2년 전에도 로스앤젤레스 오페라가 2편 동시 공연식으로 선보인 ‘푸른 수염 공작의 성’과 ‘지아니 수키키’의 연출을 맡은 베테런이다. 영화감독 생애 후반기에 ‘제이드’등 여러 편의 졸작만 만든 프리드킨은 이 김에 아예 오페라 연출자로 전업을 하는 것이 더 낫겠다. 그런데 프리드킨은 패라마운트의 사장 셰리 랜싱의 남편이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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