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동란을 다룬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LA와 뉴욕 등 미국의 대도시에 상영되면서 이곳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 극장을 꽉 메우고 있다고 한다. 자세히는 몰라도 관객의 대부분은 나처럼 이 전쟁을 겪은 사람들일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나는 소위 ‘잊혀진 전쟁’이라 불리는 한국전의 직접적인 피해자 중의 한 사람이다. 나는 이 사변 통에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 9.28 서울 수복 때 인민군이 북으로 후퇴하면서 피난을 채 못간 나의 아버지를 납치해 가버렸다. 그 뒤로 지금까지 나는 본의 아니게 내내 ‘애비 없는 자식’으로 살고 있다.
나는 올해 초 아메리칸 필름마켓에 출품된 이 영화를 보면서 어쩔 수 없이 내 어린 시절을 되돌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 습관이 되다시피 한 나의 아버지에 대한 가상법 상념이 다시금 떠올랐다. 나의 아버지는 참으로 멋쟁이였는데 만약 그때 아버지가 남북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나의 인생이 지금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다.
내 방에는 6.25 직전 아버지와 내가 장충단 공원에서 찍은 빛 바랜 사진이 놓여 있다. 지금 내가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이 사진의 모습인데 나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6.25가 참 나쁘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려서 아버지가 갑자기 사라졌는데도 채 슬퍼할 줄도 몰랐었다.
참으로 우리 나라의 역사는 눈물과 고통의 역사이다. 우리 민족 전체가 겪은 이 눈물과 고통의 가장 최근의 역사가 6.25다. 아버지와 아들이 형과 아우가 원수가 되어 총부리를 서로에게 돌렸던 지옥의 멜로 드라마 같은 사건이 6.25사변이다.
영화에서 형 진태는 인민군이 되고 동생 진석이는 국방군이 되는데 이런 일은 당시 적지 아니 있었다. 나는 이들 형제의 비극을 보면서 6.25때 유행하던 노래를 혼자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확하지는 못하지만 가사는 대강 이렇다. ‘형님은 인민군으로 동생은 국방군으로/ 아버지는 피난 가다 돌아가시고/ 집은 불태우고 가족은 간 곳이 없네/ 동생아 울지 마라-’
그때부터 지금까지 곰의 자손이자 같은 피를 나눈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의 남과 북의 동포는 원수지간으로 살아오고 있다. 원수 원수 하니까 또 이런 노래도 생각이 난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중간이 생각이 안 난다)/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을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동포가 쫓고 쫓아 무찔러야 할 원수가 된 것인데 피보다 더 진한 것이 사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에선 정치인들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해코지하고프면 무조건 상대를 빨갱이로 몰아붙였다. 6.25의 동족상잔이 남겨놓은 흉한 후유증이다. ‘빨갱이’라는 딱지가 한 번 붙으면 그 당사자의 인생은 끝이 난 것이나 똑 같았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 자기 아버지가 간부급 공산주의자로 월북을 한 급우가 있었다. 그래서 이 급우는 학교에까지 따라 다니던 정보부원의 감시를 받아야 했었다. 나처럼 아버지가 납치를 당한 사람들의 가족도 모두 블랙 리스트에 올랐었다. 연좌제라는 것이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우리 나라는 참으로 좋아졌다.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부를 수가 있으니 말이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빨갱이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북에 대해서 무조건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해선 이견이 있다. 6.25의 비극을 직접 겪은 피해자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고 남한을 방문한 북한 관리에게 달걀세례를 퍼붓는 것 등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 아픔과 슬픔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 정치판을 보면 사상논쟁을 정치적 목적으로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승만 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에 입맛이 써진다.
자신들의 괜찮은 현상 유지를 위해 조국의 통일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타이틀이 창피스럽다. 통일은 그렇게 빨리 오지도 않겠지만 그렇다고 아예 아니 올 것도 아니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니 더욱 절실히 조국 통일이 그리워진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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