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리 가족과 인연이 있는 앨을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화제가 지난 주 80세로 사망한 영화배우 말론 브랜도에게로 돌아갔다. 앨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전형적 미국인인데 자기는 사람들이 브랜도를 ‘배우 중의 배우’라고 칭찬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진짜 좋은 연기란 연기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지미 스튜어트와 존 웨인이 더 자연스러운 연기자들이라고 자신의 보수성을 내비쳤다.
앨은 이어 브랜도가 비록 명연기자일 지는 모르겠으나 자기는 그를 인간과 직업인으로서 경멸한다고 덧붙였다. 브랜도가 배우라는 직업에 충실치 않은 것은 삶에 대한 불성실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앨은 내친김에 한마디 더 해야겠다는 듯이 비평가들이 칭찬하는 ‘지옥의 묵시록’이야말로 자기가 본 브랜도의 영화 중 가장 괴이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도 이 의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감이다. ‘지옥의 묵시록’은 내가 보기엔 중얼중얼 대는 식의 이해 난감한 사이비 철학적 반전영화다.
브랜도는 제임스 딘과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함께 스크린의 남성 연기에 새 의미를 부여한 트로이카의 말 한 필이다. 딘과 클리프트가 각기 25세와 45세로 요절한 것에 비하면 브랜도는 과체중으로 너무 오래 산 셈이다. 나는 브랜도를 중학생 때 ‘워터프론트’(1954)를 통해 처음 만났다.
첫 크레딧 장면을 유린하며 거칠게 들끓는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부터 단숨에 나를 사로 잡았다. 흑백 촬영과 검은 코트에 흰 면장갑을 낀 백합 같은 여대생 에바 마리 세인트와 점퍼차림의 깡패 브랜도의 청순한 사랑 그리고 브랜도와 조연진들의 뛰어난 연기와 사실적이요 긴박감 넘치는 내용 등이 어린 나를 압도했다. “야 이런 영화가 다 있구나”하고 감탄하면서 브랜도의 부끄러워하는 듯한 연기에 넋을 잃고 말았다. 이 영화는 뉴저지 호보켄 부두깡패 부두목인 형 찰리 때문에 내기 권투에서 일부러 진 뒤 형의 덕을 보며 주먹으로 사는 브랜도가 차 안에서 형에게 속삭이듯 말하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유명하다. “이봐 찰리, 난 진짜 권투선수가 될 수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보라구. 지금 난 건달에 지나지 않아.”
브랜도가 영화계를 경악케 만든 연기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에서의 폴란드계 스탠리 코왈스키 역으로였다. 공장 노동자로 밥 먹고 맥주 마시고 볼링과 포커하고 섹스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 코왈스키가 뉴올리언스의 여름 습기 때문에 앞가슴이 땀으로 흥건히 젖은 티셔츠를 입고 야생동물처럼 씩씩거리는 모습에서 동물적 흡입력이 강렬하게 발산된다. 섹스신 없이도 굉장히 육감적인 영화로 브랜도의 연기는 그 전까지의 모든 남자 배우들의 연기를 짓밟아 뭉개버린 혁명적인 것이었다. 티셔츠가 찢어져 탄탄한 상반신을 드러낸 코왈스키가 마지막에 자기 옆집으로 달아난 아내를 향해 “스텔라-”하고 악을 쓰는 소리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브랜도의 영화는 그가 오토바이 갱 두목으로 나오는 ‘난폭자’(The Wild One·1954·사진)다. 가죽 점퍼를 입고 캡을 쓴 브랜도의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는데 이 영화는 브랜도의 ‘이유 없는 반항’이라고 하겠다. 아직 반항기를 채 못 갖춘 중학생인 내게 처음 반항의 매캐한 쾌감을 맛보게 해준 영화였다.
브랜도는 두번째 오스카 주연상을 받은 ‘대부’(1972)의 돈 코를레온 역을 맡기 위해 로비를 해야 했다. 제작사인 패라마운트는 브랜도가 장사가 잘 안 되는 배우인데다가 너무 뚱뚱하고 또 제멋대로 굴어 금기인물로 취급했었다. 패라마운트의 찰리 블러돈 회장은 브랜도가 머리에 검은 구두약을 바른 뒤 입안에 클리넥스를 집어넣고 웅얼웅얼 대는 모습을 찍은 스크린 테스트용 필름을 보고 나서야 그를 선택했다. 돈이 궁했던 그가 받은 출연료는 5만달러.
배우들이 감독되기를 좋아하는 버릇은 예전부터 있어서 브랜도도 ‘애꾸눈 잭’(1961)이라는 복수 웨스턴을 감독했었다. 이 심리 웨스턴은 당시 비평가들과 관객 모두로부터 외면을 받았지만 나는 좋아한다.
브랜도는 천하의 바람둥이였다. 본인도 생애 수백명의 여자를 유혹했다고 실토한 바 있는데 ‘바운티호의 반란’(1962)을 찍을 때 타히티의 전 여성 인구의 절반과 잤다는 설이 있다. 그런데 브랜도의 여자 선택 취향이 묘한 것은 그가 결혼했거나 사귄 여자가 모두 유색인종이라는 것. 그의 부인 중 하나로 배우였던 안나 캐시피는 인도계이고 살인죄로 재판을 받은 아들 크리스찬의 어머니는 타히티 여자이며 그가 말년에 관계해 아이를 낳은 가정부도 유색인종이다. 브랜도는 배우라는 직업을 호구지책으로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걸작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3)를 마지막으로 게으름을 피우며 타고난 재주를 버리다시피 했다. 팬들은 큰 예술적 손해를 본 셈이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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