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문화수준은 그 나라의 화장실 문화와 병행한다는 말이 있다. 내가 미국의 화장실 문화를 처음 경험한 것은 1960년대 초 잠깐 제수잇계 대학엘 다닐 때였다. 내가 사는 방보다 더 깨끗한 화장실은 겨울에는 난방장치가 잘돼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싫을 정도였다. 나는 당시 이 화장실에서 한 학생이 점심으로 싸온 도시락을 먹는 것까지 목격했었다.
이 대학의 화장실의 정결도가 날 황홀케까지 만들었던 것은 내가 자주 드나들던 고전음악 감상실 ‘르네상스’의 화장실 경험에 크게 자극을 받아서였다. 이 곳 화장실은 남녀 공용이었는데 사람이 용무를 보고 있는데도 어떤 여자손님은 거침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 자기 일 볼 곳으로 가곤 했다. 그 때 느끼던 낭패감이야말로 절망에 가까운 것이었다. 화장실 하나 변변치 못하면서 베토벤과 차이코프스키는 들어 무얼 하나라고까지 생각했었다. 나보다 먼저 미국에 온 내 여동생은 지금도 “미국 와서 가장 좋았던 것 중의 하나가 정결한 화장실이었다”고 되뇌곤 한다.
사람들이 잘 안 들여다보고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일수록 깨끗한 것이 좋다. 우리 몸 맨 아래 있지만 사실은 아름다운 발이 그 좋은 예인데 나는 그래서 여름에 샌들을 신은 남자와 여자의 발들에 자꾸 시선이 가곤 한다.
최근 월스트릿 저널은 미국의 바와 나이트클럽과 식당들이 화장실 직원을 쓰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밀워키와 신시내티에서부터 샌프란시스코에 이르기까지 술집과 식당등에서 이들의 서비스가 재생하면서 하나의 산업으로까지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매력적인 용모의 젊은 직원들이 “헬로, 서” 또는 “헬로, 맴” 하면서 손님의 손에 액체비누를 뿌려주고 수도꼭지를 틀어준 뒤 타월을 건넨 다음 향수까지 뿌려 준다. 그런데 이들을 고용해 본 업소들이 좋은 반응을 보이면서 최근에는 식당 등에 화장실 직원을 파견하는 회사들이 여러 개 생기고 있다는 것. 뉴욕의 로열 플러시는 현재 40여개의 식당과 클럽에 직원을 파견하고 있고 켄터키 플로렌스의 블랙 타이 서비스는 화장실 직원 훈련 프로그램까지 마련했다. 식당 도어맨 출신으로 블랙 타이 서비스의 사장인 채즈 워드는 회사의 전국 체인화를 계획중이라고 한다.
신문은 관계자들의 말을 빌려 클럽 등이 화장실 직원을 채용하는 경우가 느는 까닭은 그것이 클럽의 이미지 고양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직원 채용비가 저렴한 것도 또 다른 이유인데 하룻밤 화장실 직원 채용비는 20~40달러 정도. 대부분의 화장실 직원들은 수입을 손님의 팁에 의존하는데 괜찮은 날은 150~200달러까지 번다. 평균팁은 1달러.
그러나 화장실 직원 채용에 대한 반작용도 작지 않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지극히 사적인 일을 보는데 누군가 지켜본다는 것처럼 당혹스러운 일도 없다. 나도 과거 베이가스의 카지노 화장실에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용무를 보는데 직원이 다가와 솔로 등을 털어 주는 바람에 볼 일을 제대로 못 보고 말았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해 공연히 동정심을 갖게 되면서 아울러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흔히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이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 샌드위치 프랜차이즈 서브마린의 사장과 이 더운 여름에 샌드위치 탈을 쓰고 길거리에 서 있는 샌드위치 맨과 같다는 말인가. 그 말은 맡은 일에 충실하라는 뜻이겠지만 나는 그것이 말 좀 할 줄 아는 사람이 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직업 때문에 장군 같은 권위를 으쓱대다가 하룻밤 새 내면이 부식되는 상실자로 전락해 버리는 노인의 이야기를 절실하고 통렬하게 그린 희비극이 ‘마지막 웃음’(The Last Laugh·1924·사진)이다. 독일의 F.W. 무르나우가 감독한 이 무성영화는 베를린 고급 호텔의 도어맨(에밀 야닝스)이 고령으로 호텔 지하 화장실 직원으로 배치되면서 겪는 지위 상실로 인한 비극을 그린 도덕적 우화다.
금단추에 온갖 장식을 한 제복을 입고 마치 아이가 장군놀이 하듯 으스대던 도어맨이 삽시간에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화장실 손님들의 시늉을 들면서 의기소침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야닝스의 강렬한 연기와 물 흐르듯 만유하는 카메라 동작이 뛰어난 영화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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