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디지털 카메라와 랩탑만 있으면 보도 가능
편향적 시각 인정하나 기존 매체 사각지대 보완도
무정부 단체 ‘블랙 블록’(Black Bloc)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기 위해 지난 달 27일 워싱턴 DC에서 거행한 대규모 시위행진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 시위대의 일거수 일투족을 뒤쫓았다. 그런데 그 기자들의 장비와 취재대상을 꼼꼼히 살펴보면 두 부류의 언론집단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한 집단은 CBS, CNN, 워싱턴포스트 등 메이저 언론사에 소속돼 월급을 받으며 취재활동을 하는 기자들이고, 또 다른 집단은 소형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여기 저기 뛰어다니며 마치 홈 무비를 찍듯 취재하는 사람들이다.
언론사 기자들을 ‘기업 언론인’이라 지칭하며 자신들과 구별시키는 이들은 ‘인디펜던트 미디어 센터’(IMC)를 대표하는 독립 언론인들이다. IMC는 주로 인터넷을 통해 전파되는 일종의 지구촌 자원봉사 편집국으로 기존 언론들이 간과하는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시위대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그들의 주장을 녹음한 이들의 취재 내용은 곧 워싱턴, 버몬트주의 벌링턴과 예루살렘에서 방영된다.
대안 언론은 수세기를 두고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 왔지만 최신판은 1999년 11월,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 회의 반대 시위 때 탄생했다. 당시 참여했던 액티비스트들이 2000년 4월에 워싱턴에서 열릴 세계은행회의 반대 시위에 맞춰 ‘워싱턴 IMC’를 조직했던 것. 현재 미국의 34개 도시를 비롯, 전 세계 6개 대륙에 77개 센터를 거느리고 있으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도 각각 하나의 센터를 두고 있다.
각 지역 IMC는 고유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고 이들은 다시 www.indyemedia.org란 중앙 웹사이트에 통합되어 있다. IMC 측은 매달 수십만명이 이 사이트를 방문하며 지난 주말 워싱턴 시위처럼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면 방문객이 급증한다고 밝힌다.
이들이 인간 역사상 나타났던 거의 모든 의사 소통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한 사람이 운영을 책임지지 않고 모든 중요한 결정은 합의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지시하는 경우는 없다. 기사가 거부당하는 법도 없다. 누구나 자유롭게 무엇이건 취재해 인터넷에 올리면 곧바로 웹사이트에 순서대로 실리게 된다.
"미디어를 원망하지 말고 미디어가 되라"는 슬로건을 구체화한 이 같은 방식은 누구나 인터넷에 접속해 문서, 음성, 사진, 비디오를 쉽게 올릴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개발되면서 가능해졌다. 예산도 없이 반(anti) 기업형 언론의 기치를 내세우며 운영되고 있는 이 미디어 유토피아는 몇몇 우호적인 자본가들이 기증한 서버와 인터넷 영상 처리 장치에 의존하고 있다.
IMC의 가장 큰 특징은 반기업, 반제국주의 운동 등과 같은 항의시위를 우호적인 시각에서 다룬다는 점이다. 그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규모 투쟁들도 놓치지 않고 보도한다. 뉴스를 취재하고 전달하는 방식은 기존 미디어와 같지만 그 내용에서 판이한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어차피 내용을 어떻게 짧게 편집할 것인가란 선택의 요소가 개입되긴 하지만 많은 기자들이 권위적인 결정에 대해 거세게 저항한다. 그래서 두서 없는 내용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이러한 무정부주의도 IMC가 노리는 효과라 할 수 있다.
IMC의 워싱턴 DC 본부에선 인터넷 응용 컨설턴트인 브라이언 롱(30)과 인력 알선사업을 하는 아네트 노만드(29)가 편집진으로 일하면서 자신들에게 허용된 최소한의 재량권에 따라 웹사이트의 외양을 정한다.
웹페이지 오른쪽의 ‘뉴스와이어’ 칼럼에는 IMC에 올라온 모든 기사들이 시간 순으로 배열돼 있다. 편집진이 ‘비방’의 요소가 있다고 판단한 것만 삭제된다. 버려지는 기사는 하나도 없으며 뉴스와이어 코너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된 기사들은 몇 차례 추가 클릭을 하면 찾을 수 있도록 따로 배치해 놓았다. 웹사이트에는 2년치의 기사가 온전히 보관되어 있다.
기사를 시간 순으로 늘어놓는 것은 특정한 기사를 부각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편집진이 특별히 좋다고 평가한 기사들은 웹사이트 중간부분에 최신 것부터 순서대로 배치해 놓았다. 노만드는 "기업 미디어는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선 보도하지만 그 이유를 제대로 알려주진 않는다"면서 "우리는 그 이유들을 알려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IMC는 그들이 편향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음을 솔직히 인정한다. 오히려 그런 점이 정직한 형태의 저널리즘이라고 믿는다. 이스라엘이 웨스트 뱅크를 점령한 것에 반대하는 것도 이들이 지닌 다른 시각이다.
하지만 반대편 의견도 함께 싣는 주류 언론의 방식이 독자들을 편견으로부터 보호하는 방법이 아닐까. 지난 71년 베트남 전쟁 반대데모 때부터 대안 언론활동을 시작한 에디 베커(52)는 이 새로운 방식을 포용하는 많은 베테런 중 한 명이다. "누구든 자기만의 고유한 취재 기준을 지니고 있다.
이들을 비판하고 싶은 사람 또한 누구나 웹사이트의 같은 곳에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그들의 항의가 예를 들어 신문 3면의 ‘정정’란 같은 곳에 파묻히진 않는다. ‘이 기사는 거짓말’이란 의견을 기사 바로 뒤에 붙일 수 있는 것"이라면서 "진실은 이 같은 상호작용을 통해 드러날 수 있으며 이런 방식이 훨씬 민주적일 수 있다"고 강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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