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데이가 한 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식품산업통계정보에 의하면 2023년 2월과 3월, 헤이즐넛 초콜릿 페레로 로쉐의 매출은 1월과 4월에 비해 600% 이상 급증했다. 1년 매출의 52%를 이 두 달 동안 벌어들이니 초대목이 아닐 수 없다. 초콜릿이 그다지 비싸지 않은, 대중적 먹거리인 덕분이었는데 최근 그 입지가 점차 흔들리고 있다.
일단 원료인 코코아의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다. 지난달 18일, 뉴욕선물시장에서 코코아 가격이 톤당 1만2,987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연초 대비 206% 오른 가격이다. 기후변화로 저조한 작황, 재배지 감소 등으로 인한 공급 부족이 원인이었다.
■초콜릿 식민지의 역사
진짜 문제는 따로 있으니 바로 초콜릿 소비의 윤리적 측면이다. 초콜릿 산업의 기반인 카카오콩 농사 전반에 아동 노동력이 심각한 수준으로 착취되고 있다. 알고 나면 다디단 밀크초콜릿이 다크초콜릿처럼 쓰게 느껴지는 한편, 정녕 초콜릿을 계속 그대로 먹어도 좋을까 싶은 회의가 들 지경이다. 그만큼 구조적인 아동 착취가 매우 심각한 현실이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초콜릿에는 이상한 구석이 있다. 카카오콩의 주원산지는 분명히 아프리카인데, 왜 유명한 초콜릿 브랜드는 전부 유럽 아니면 미국에 있을까? 당장 떠오르는 대형 브랜드인 네슬레, 캐드베리, 허쉬만 따져 보아도 각각 스위스, 영국, 미국에서 비롯되었다. 벨기에도 박물관이 있을 정도로 초콜릿이 특산품이면서 소규모 공방에서 장인이 만드는 고급 초콜릿도 흔하다. 프랑스도 사정이 비슷하다.
카카오콩이 전혀 나지 않는 나라에서 어떻게 초콜릿 산업이 이렇게 발전했을까? 저 먼 옛날부터 원산지에서 착취와 수탈을 통해 공급받은 원료를 가공해 초콜릿을 만들어 온 덕분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초콜릿의 역사는 기원부터 상당히 참혹했다. 미국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유럽에 최초로 초콜릿을 소개했는데, 실질적 전파는 1520년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에 의해 이루어졌다.
에르난 코르테스와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한 에스파냐인 정복자(콩키스타도르)들이 아즈텍 왕국(지금의 멕시코)을 정복하면서 카카오콩이 본격적으로 유럽에 유입돼 사랑을 받았다. 그 결과 수요가 폭증했으나 정작 원산지인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이를 맞춰줄 수가 없었다. 정복자들이 유럽에서 들여온 병균 탓에 원주민의 최대 90%가 사망한 탓이다.
이에 대응하고자 스페인은 엔코미엔다(encomienda)라는 위탁 노역 체계를 활용해 본격적인 착취를 시작했다. 17, 18세기로 접어들면서는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와 네덜란드까지 나서 초콜릿 확보를 위한 식민지 개척에 나섰다. 브라질과 카리브해,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에 카카오 나무를 심어 재배하는 한편 흑인 노예들을 농사에 동원시켰다.
19세기에는 산업화로 코코아 압착기나 콘칭(conching·초콜릿을 휘저어 부드럽게 만드는 공정) 기계가 개발되면서 초콜릿의 입지가 달라진다. 사치품에서 대중 음식으로 거듭나는 한편, 액상에서 현재의 고체 바 형태로 휴대성까지 갖추었다. 덕분에 초콜릿 수요가 늘었으니 유럽의 제국들은 수요 혹은 탐욕을 안정적으로 채워 줄 경작지를 찾아나선다. 그렇게 열대우림이 풍성하고 이미 유럽의 손아귀에 들어 있었던 서아프리카가 낙점되었다.
몇 세기에 걸쳐 유럽 제국들이 입지를 다진 끝에 코트디부아르(영어명 아이보리코스트)와 가나는 세계 카카오콩 생산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전 세계 카카오콩의 60%를 책임지는데 상당 부분 착취한 아동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노동에 동원되는 것 자체도 문제이지만 환경 또한 열악하기 그지없다. 카카오콩 농사에 빠질 수 없는 살충제에 늘 노출되어 있는 한편 날카로운 칼이나 도구를 쓰고 무거운 짐을 날라야 한다.
서아프리카 카카오콩 경작의 아동 착취 현실이 본격적으로 고발된 건 2001년이다. ‘노예의 맛: 초콜릿이 타락한 사정'이라는 보고서가 미국의 권위 있는 언론상인 조지 폴크상을 수상했다. 보고서에는 밀수업자들이 어린이들에게 보수와 숙식, 교육 등을 약속해 데려온 다음 강제 노동에 동원시키는 현실이 담겨 있었다.
세월이 흐르며 끔찍한 아동 착취의 현실에 대한 고발이 줄을 잇고 있지만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수입의 상당 부분을 초콜릿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 탓이 크다. 코트디부아르와 가나는 카카오콩 생산이 GDP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옛 유럽 제국의 자리는 이제 거대 다국적 초콜릿 브랜드가 차지했다. 캐드베리와 페레로, 허쉬, 마스와 네슬레의 일명 ‘빅 파이브즈'가 세계 생산 초콜릿의 절대다수를 거머쥐고 있다.
워낙 현실이 열악하고 오랜 세월에 걸쳐 착취가 이루어져 왔기에 빠른 개선과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바뀌어야만 하는 현실을 위해 두 갈래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첫 번째는 법적 절차다. 2021년 코트디부아르의 아동 8명이 한 국제인권단체(IRA)를 통해 앞서 언급한 초대형 초콜릿 브랜드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말리 출신의 이들은 속임수에 넘어가 코트디부아르로 동원돼 노예 수준의 착취를 당했다고 밝혔지만 미국 대법원은 소송을 기각했다. 미국 기업인 허쉬와 카길이 제소되었지만 영토 밖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착한 초콜릿을 위한 노력한편 공정무역 등의 인증 절차를 통해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하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현재 아주 낙관적이라 보기는 어렵다. 취지는 좋지만 인증 받는 초콜릿의 비율이 매우 적어 일반 소비자에게 잘 닿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런 제품들마저 카카오 유통의 과정이 속속들이 투명하지 않은 탓에 착취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보기 어렵다.
이처럼 어둡디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은 희미하게나마 빛을 발하고 있다. 농가와 직접 거래해 확보한 카카오콩으로 초콜릿을 만드는 소규모 공방, 완전히 투명한 재배 및 유통 과정을 거친 카카오콩만을 쓰는 초콜릿 브랜드 등이다. 예를 들어 국내에도 판매되는 ‘토니스 초코론리'는 네덜란드의 기자 테운 반 드 쿠켄이 설립한 초콜릿 브랜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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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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