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체리맛 코카콜라가 먹고 싶었다. 체리와 코카콜라가 잘 어울리는 짝이니, 체리맛 코카콜라도 미국에서 1985년 발매 이후 꾸준한 인기를 누려오고 있다. 사실 정식 발매 이전에도 미국식 밥집인 다이너나 영화관 등에서는 인기 음료로 이미 팔리고 있었다. 보통의 코카콜라에 체리시럽을 타 맛을 내는 방식이었다. 그리하여 미국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나는 실로 거대한 슈퍼마켓의 냉장고에서 체리맛 코카콜라를 찾아 계산을 하고 벌컥벌컥 들이켰으나 무엇인가 이상했다. 한국에서 먹어 왔던 코카콜라에 비해 훨씬 더 단맛이 강하기도 했지만 특유의‘쏘는’, 즉 알싸한 느낌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게 뭐지? 혹시 체리맛이라 그런 걸까? 보통 코카콜라를 비롯 다른 탄산음료도 마셔 보았으나 강한 단맛과 쏘는 느낌은 똑같았다. 그제서야 나는 마시기를 멈추고 병의 성분표를 찾아 읽었다. 그렇게 액상과당(High Fructose Corn Syrup·고과당 옥수수시럽)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액상과당은 전지전능한 식품 원료로 자리를 잡았다. 값은 싸면서도 단맛은 75% 더 강력한 덕분에 설탕의 자리를 스멀스멀 꿰어차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설탕보다 싼 데다가 처치 곤란한 옥수수의 부산물이라는 이해관계가 맞물려 액상과당의 입지는 적어도 당분간 흔들리지 않을 전망이다. 게다가 액상과당은 비단 탄산음료뿐만 아니라 일반 식품에도 설탕 대신 널리 쓰이고 있다.
과연 괜찮은 걸까? 설탕도 많이 먹으면 위험한 식재료라는 인식이 팽배한 요즘, 대체 감미료의 세계는 좀 더 혼란스럽다. 칼로리가 있는 액상과당은 물론 칼로리가 없는 페닐알라닌 등이 인체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도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액상과당이 췌장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한편 분자식으로 따져 보면 당의 일종이니 설탕보다 더 나쁠 건 없다는 의견도 있다. 이처럼 현재 가장 논쟁적인 식품 원료라 할 수 있는 액상과당의 이모저모에 대해 살펴보자.
사실 우리는 굳이 탄산음료 없이도 액상과당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다. 멸치볶음이나 연근조림 등 한식 밑반찬과 특히 떡볶이에 빠질 수 없는 식재료인 물엿 덕분이다. 혹시라도 호기심에 물엿을 맛본 적 있다면 실망했을 것이다.
뭐야, 달지 않잖아? 그렇다. 물엿은 정말 실망스러울 정도로 단맛이 전혀 나지 않지만 나름의 확고한 쓰임새가 있다. 각종 음식의 자작한 국물에 더하면 특유의 윤기와 질감을 보태 준다. 이처럼 특유의 물성을 지니고 있지만 달지는 않은 단점을 화학으로 보완한 원료가 바로 액상과당이다.
액상과당은 1957년 세상에 처음 등장했다. 미국의 과학자 리처드 O. 마셜과 얼 R. 쿠이가 이성질화효소를 개발했으니 옥수수시럽의 포도당을 과당으로 재배치하는 게 가능해졌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비롯한 마이클 폴란의 식문화 연작, 뉴욕타임스의 음식 전문 저자 바크 비트먼의 ‘동물, 채소, 정크푸드’ 등의 책에는 액상과당이 출현할 수밖에 없었던 좀 더 적나라한 속사정이 소개되어 있다. 미국이 20세기 초와 중반 양대 세계대전을 통해 강국으로 발돋움하면서 농업이 본격적으로 거대화 및 기업화되었다. 그런 가운데 옥수수가 정부 지원을 받으며 주류 작물로 부상했고 이를 소비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줄을 이었다.
왜 각고의 노력까지 기울여야 했을까? 기본적으로 이 옥수수가 인간이 아닌 소의 비육용이었기 때문이다. 고기 사이의 비계인 마블링을 발달시켜주는 옥수수라는 말이다. 그래서 식용으로 쓸 수 없었으니 소비를 위한 각종 우회로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예가 식품첨가물이다. 옥수수 바탕 식품첨가물이 약 170여 종에 이르게 쓰이는 가운데 대표되는 것이 덱스트린(dextrine) 계열이다. 전분을 열이나 산으로 가수분해해 만드는 다당류로, 말토덱스트린이 샐러드 드레싱 등의 액체에 증점제로서 걸쭉함을 불어넣는 데 쓰인다.
그리고 각고로 기울인 노력의 한가운데에 바로 액상과당이 있다. 1950년대에 개발되었지만 액상과당이 본격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건 1970년대이다. 미국은 땅덩어리가 넓고 기후대가 다양해 온갖 작물을 재배 및 수출할 수 있는 농업강국이다.
하지만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나 무우를 경작할 수 있을 만큼은 덥지 않으니 전량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단가가 올라가면서 가격 부담이 커지는 한편 남아돌아가는 옥수수를 처치해야 하는 이해관계가 맞물려 액상과당이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액상과당 도입의 선두주자는 탄산음료업계였다. 엄정하게 말하자면 하등의 영양가치가 없는 탄산음료이지만 미국인의 삶에는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따라서 물보다 싼 이 음료의 단가를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맞추려면 가장 비율이 높은 원재료의 단가를 낮춰야만 했다. 그렇게 액상과당이 설탕을 대체하면서 1975~1985년에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늘날은 마치 문어발처럼 거의 모든 식품 산업군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액상과당의 입지가 당분간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천년만년 흥할 것 같지는 않다. 사실 미국을 기준으로 이미 액상과당의 소비는 꾸준한 하락세이다. 1999년에 미국인 1인당 연간 소비량이 17㎏으로 정점을 찍은 액상과당은 2012년 12.3㎏, 2018년에는 10㎏으로 42%의 소비 감소를 보여주었다. 참고로 같은 해의 백설탕 소비량은 18.3㎏이었다. 이러한 소비의 감소에는 무엇보다 액상과당의 평판이 영향을 미쳤다.
액상과당의 평판이 나쁜 이유는 여러 갈래이다.
첫째, 무엇보다 단맛과 감미료 전체가 건강 악화의 원흉이라는 오명에 시달리고 있다. 한때는 지방이 시달려 온 오명을 설탕이 그대로 이어받은 가운데 ‘이번에는 진짜’라는 의견이 팽배하다. 설탕이 췌장의 인슐린 분비에 영향을 미쳐 지방을 형성한다는 주장이 궁극적인 체중 증가의 기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말하자면 원조인 설탕부터 피할 수 없는 오명을 직시하고 있는 현실이다.
둘째, 그렇다 보니 설탕 자체도 소비자와 힘겨운 평판 대결을 벌이고 있다. 한때는 깨끗함의 상징이었던 설탕의 흰색도 이제는 백미 등과 더불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셋째, 액상과당은 일반 소비자들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화학반응을 통해 생산된다. 비교적 단순한 물리적 공정인 정제를 통해서 만드는 설탕마저도 건강에 나쁘다는 오명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에게 팽배한 '화학'에 관한 선입견, 즉 ‘몸에 나쁜 것을 만들어 내는 수단’에 맞서 이미지를 제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옥수수정제연합에서는 2010년 이미지 쇄신에 나서기도 했다. 액상과당을 ‘자연에서 추출했다’며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한편 로비를 통해 ‘옥수수 설탕(Corn Sugar)’이라 개명도 시도했다. 하지만 2012년 미국 식약청은 이를 반려했다.
액상과당이든 옥수수 설탕이든, 고과당 옥수수시럽은 궁극적인 질문에 아직 정확하게 답하지 못했다. 과연 앞서 살펴보았듯 정말 더 건강에 나쁜가?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기본적으로 췌장, 더 나아가 체중 증가에 나쁜 영향을 미치므로 설탕 자체부터 섭취를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런 가운데 화학적인 구성만 놓고 보았을 때 건강에 다른 당류보다 더 나쁜 영향을 미칠 이유는 없다는 의견이 있다. 과당과 포도당이 약 1대 1(42대 58)로 결합되어 있으므로 꿀이나 설탕과 분자 결합에는 큰 차이가 없음을 근거로 내세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해법은 아주 쉽고 상식적이다. 설탕이든 액상과당이든 일단 단맛 자체를 우리의 식탁에서 최대한 많이 덜어 내면 된다. 그럼 액상과당이 정말 건강에 더 나쁜지 아닌지를 놓고 고민할 이유조차 없어진다. 사실은 그렇게나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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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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