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푹 자고 일어난 주말의 늦은 아침 햇빛이 환히 들어 밝고 따사해진 욕실에 들어선다
사각 사각 …. 머리에 북실북실 뭉개낸 샴푸 거품을 한 웅큼 떠서 얼굴과 턱선에 바른 뒤 왼손가락의 촉각이 전해주는 대로 까끌한 부분을 찾아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면도기를 움직이자 얼굴은 이내 미끈미끈 해진다. 정수리에 뿌려진 더운 물이 어깨를 타고 등골을 따라 발끝까지 전신에 흘러내리자 밤새 몸 안에 갖혀있던 한숨이 ‘아~’ 하는 낮은 신음을 타고 터져 나온다.
어제 저녁엔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을 위해 오클랜드에 갔다가 중간엔 변호사 사무실이 있는 더블린에도 다녀오느라 밤이 이슥해서야 집에 닿았다. 한 150마일 정도 달렸나? 이렇게 오래 애를 쓰고 많은 이들이 바라고 있으니 일이 잘 진행됐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가져보지만 가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수가 발생하는 경우가 왕왕 있어 성사될 때까지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고 노심초사해야 하는 것이 덩치가 큰 커머셜 부동산 딜의 묘미이자 애환이다.
세상에나. 이번의 바이어는 어찌나 열심히 사는 분인지… 꼭두새벽에도 필요하면 문자를 보내며 열의를 보인다. 20대 초반에 도착한 이민 기간이 벌써 40년 가까이 흘렀고 미군에도 보병으로 자원 복무한 경험이 있다하여 다 그렇게 되는 건 아니겠지만, 번득이는 무테 안경 너머 예리한 표정으로 그가 구사하는 영어가 얼마나 유창한지 나는 언뜻 언뜻 놀랄 때가 많았다. 세련되고 맥을 빨리 짚어나가는 한국어 구사능력이야 두말 할 나위도 없다. 2000년 초반 IMF 사태로 그룹이 공중분해되던 안타까운 기간 중 내가 그분의 본사 사옥에 있는 그룹 전담 은행 점포를 맡아 3년여 기간 동안 일하면서 적어도 일반인보다는 깊은 정보를 접할 수 있었던 대우그룹의 고 김우중 회장이 아마 젊은 시절 이렇게 열심히 뛰며 세계경영을 위해 매진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시감에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중키에 살짝 머리가 벗겨진 외모도 아주 꼭 닮았다.
오클랜드에서 집으로 오는 방향을 택할 때 나는 몇 초간 망설였다. 다리를 맨 나중에 건너는 밋밋한 880 프리웨이를 택할 것이냐, 아니면 약간 도는 듯하지만 샌프란을 거쳐서 101번 프리웨이를 타고 내려오느냐? 전광석화, 어느새 나도 모르게 차는 달빛 교교한 베이 브리지를 올라타고 있다. 차창 밖 무심한 바다를 내려보니 마피아의 전설적인 두목 알 카포네가 40세인 1939년까지 수감됐다 매독으로 병 보석된 연방 교도소 자리가 아직도 유적으로 남아있는 알카트라즈 섬이 샌프란시스코 베이에 오도카니 떠있다. 저 멀리 내해가 태평양으로 빠져나가는 곳에는 아름다운 금문교가 한장의 그림엽서처럼 수줍은 자태로 야경을 멋지게 장식하고 있다.
금문교야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지만 나는 기막히게 웅장한 베이 브리지의 위용과 미학에도 일찌감치 반해서는 건널 때마다 탄성을 지르게 된다. 오클랜드에 갈 때면 일부러라도 꼭 들르는 한인마켓에서 산 두텁떡 한팩을 뜯어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을 바라보며 한입 아웅 맛있게 베어 먹는다. 연두색 콩고물이 운전하고 있는 무릎에 솔솔 떨어진다. 오늘 저녁은 이걸로 마쳐 이제 관성이 붙은 다이어트에 박차를 가할 생각이다. 아직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마의 210 파운드벽은 2파운드 차로 한달 넘게 깨지는 못했지만 나는 이번 팬데믹 기간 중 오히려 10파운드 가까이 체중을 줄였으니 이만하면 상당히 남는 장사다. 비결이라면 열심히 걷되 식탐을 절대 줄여야하고, 그래도 몸안에서 식욕이 아우성 칠 때는 무조건 또 밖으로 나가 산책하며 먹지 않고 달래주는 것인데 나름대로 참 효과가 있었다.
한동안 코로나 백신을 먼저 맞을 수 있는 65세 이상 시니어 분들이 그렇게 부럽더니 목련이 지고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서 캘리포니아의 백신사정이 한결 나아져 50세 이상은 지금, 그리고 보름 뒤에는 누구나, 접종 예약을 할 수 있다는 낭보가 날아 들었다. 인터넷에서 10여분 클릭클릭을 반복한 끝에 나는 드디어 20여일 뒤 1차 접종을 받는 스케줄을 받을 수 있었다. 아직 백신 사정이 녹록치 않은 한국의 친구들에겐 괜히 미안한 생각도 들지만 드디어 내 생애 최대의 사변이 끝나가는 밝은 빛이 저 멀리 터널 출구에 비치기 시작했다. 지독한 인고와 연단이 강요된 이 세월, 망각하고 싶은 이 세월을 함께 버텨내온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바이러스 3차 대전 전승 축제가 벌어질 것만 같은 타임스퀘어에 나가 개선한 수병처럼 기쁨의 입맞춤을 나누고 싶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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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업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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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림프는 아직도 그러죠. 5000만명이 죽을 것을 내가 55 만명으로 막았다고. 초창기때는 내가 미국 대통령인한 미국민이 코로나로 죽는 날은 없을거라 큰소리 쳤었는데...
자국민 50만명이 죽어 가도 자기 자랑에 여념이 없던 트럼프 망령도 이젠 떨쳐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