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페이스북을 보다가 똥차라는 단어에 눈길이 멎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님이 타던 ‘다마스’를 가져와 남편이 타는데, 20년 넘게 탄 차여서 페인트가 벗겨지고 녹슬어 외관이 흉해졌다. 아내는 똥차가 우아하게 사는 자기 이미지를 떨어뜨리는 것 같아 싫었다. 긴 얘기 짧게 하자면 똥차를 바꾸는 것보다 구두쇠 남편을 바꾸는 게 빠를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댓글 창에 의견이 분분했다. 나는 아내와 남편의 마음이 묘하게 이해되었다.
우리 집에도 연식이 오래된 ‘Chevrolet Express Van’이 있다. 딸보다 한 살 어리니 21년을 남편과 함께 보냈다. 쉐비 밴은 업무용 승합차다. 왜 ‘깡통밴’이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으나 달릴 때 짐칸에서 깡통 흔들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서가 아닐지 짐작해 볼 뿐이다. 남편은 깡통밴, 나는 똥차라고 부른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집 앞 도로변에 서서 제자리 지키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다. 우박이나 스톰이 오면 승용차는 차고에 넣기 바쁜데 깡통밴은 신경을 안 쓴다. 높아서 지붕을 볼 순 없지만 아마 곰보가 되었을 거다. 세월이 흐르니 우리 차도 페인트가 벗겨지고 검붉게 녹슬기 시작하더니 이내 몰골이 사나워졌다. 먹고살 만한데도 남편은 차를 바꾸거나 도색을 하지 않았다. 잘 굴러가는 짐차에 돈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사는 게 어려웠던 시절, 그 차를 $17,000에 샀다.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남편에게 그 차는 오랜 세월 생활전선에서 동고동락해 온 전우요, 가족과 직원을 먹여 살리는 데 일조한 공신이요, 돈을 벌게 해준 효자여서 애정이 남달랐다. 그 차가 없었다면 장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인들도 우리 밴 신세를 안진 사람이 없을 정도다. 짐을 옮길 때마다 차를 빌려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부인을 빌려줘도 차는 안 빌려준다는데, 남편은 늘 차 키를 내주었다.
딸이 어릴 때 교회 젊은 부부들과 호숫가에 놀러 간 적이 있다. 말이 호수지 강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가족들은 텐트를 치는데 우리만 없었다. 밴 짐칸에 매트리스를 깔고 자면 된다고 생각했다. 고기 구워 저녁을 먹고, 장작 피워 불멍도 하고, 밴 옆면에 프로젝터를 쏘아 아이들 영화도 보여주고, 별보며 이야기꽃을 피울 때까진 별문제가 없었다. 늦가을이라 해가 떨어지면 추워서 담요를 덮어야 할 날씨였다. 모두 자러 텐트에 들어간 후 우리도 차 안으로 들어갔다. 찬 바람을 막아주니 호텔이 따로 없었다. 잠이 얼핏 들었다가 너무 추워서 깼다.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깡통처럼 얇은 표면이 얼어 냉동고 역할을 했던 거다. 그때 알았다. 한데지만 땅에는 지열(地熱)이 있어 차 안보다 낫다는 것을. 텐트에서 잔 사람들은 아침에 삼겹살을 굽고 남은 김치로 찌개까지 먹었다는데, 우린 그 새벽에 집으로 돌아왔다.
똑같은 일을 20년 하면 사람도 병이 날 판에 차라고 멀쩡할까. 천정에선 천이 내려앉고, 브레이크 베어링이 나가고, 범퍼가 망가지고 여기저기 고장 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좋은 정비소를 찾아 저렴하게 고쳤다. 도색까지 하니 새 차 같았다. 나 역시 녹슨 차가 꼴 보기 싫고 창피해서 궁상이 백단이라고 구시렁거렸다. 남편이 그 차를 보내지 못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인정해 주지 않은 게 미안했다. 여전히 손으로 뱅뱅 돌려야 창문이 열리는 똥차지만 남편은 오늘도 그 차를 타고 출근했다. 아무쪼록 우리 효자차가 아프지 말고 남편 곁에 오래오래 있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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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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