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자 겨우내 마당 끝에 키 높이로 쌓여 있던 눈 더미에 틈새가 생겨났다. 그 틈새가 커질수록 봄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기대를 했으나 기다리던 봄은 그렇게 쉽게 오지 않았다. 큰 비가 서너 차례 더 지나간 뒤에서야 화석처럼 남아있던 눈 언덕이 마침내 흔적없이 사라졌다. 드디어 봄이다.
길가의 몇 몇 상점들이 출입문을 반쯤 열어 놓았으나 선뜻 그 문을 밀치고 들어가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닫혀진 가게들과 임대 사인을 내건 빌딩 사이를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갔고, 그들을 바라보는 상인들의 눈빛도 건조했다. 그러나 삭막하던 상가 모퉁이의 드레스 샵 쇼윈도에는 화사한 옷을 갈아 입은 마네킹들이 나란히 서서 봄이 왔음을 알린다.
터키인 부부가 운영했던 샌드위치 가게가 끝내 문을 닫았다. 유리상자 같은 작은 가게에서 10시간 넘게 일하던 부부의 모습 대신 임대 사인이 가게를 반쯤 가리고 있었다. 대장금을 좋아하고, 한국 드라마를 우리보다 더 많이 알던 주인 여자는 김치를 만들어 먹는다고 자랑했었다. 잡채 만드는 법을 알려준 아내에게 연신 감사의 인사를 하던 50이 넘어 보이는 여자는 대학 졸업반인 딸 사진을 보여주며 젊었을 때는 자기가 더 예뻤다고 말하며 웃곤 했었다. 이제 불 꺼진 창 너머로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 아파할 뿐이다.
상가 모퉁이에 자리한 꽃집의 오픈(Open) 사인을 보면 안쓰럽다. 30년 가까이 같은 자리에서 영업하며 풍성하고 다양한 종류의 꽃을 갖추어 놓아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북적이던 가게였다. 코비드 이후에 영업시간이 점점 짧아 지는 것을 보며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조금만 더 버텨 주기를 마음 속으로 응원했었다. 나 역시 유난히 꽃을 좋아하는 아내 덕에 자주 꽃을 사러 가던 곳이었는데, 내가 살 꽃을 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면 이내 주인 여자가 다가와 그 날의 ‘신상(?)’을 권해 주곤 했다. 물론 나는 꽃을 사러 갔지만 어쩌면 그녀의 친절이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모처럼 꽃집 문을 열고 들어 선 순간 여자의 얼굴이 조금 여위였으나 예의 웃는 얼굴로 반갑게 맞아주어 너무 오랫만에 온 것이 미안했다. 늘 사던 풍성한 장미 대신 작은 장미 다발을 골랐다.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는 내게 주인 여자가 나를 불러 세우더니 안개꽃 한 다발을 건네주었다. 내가 어리둥절 하자 햇빛이 너무 좋아서 선물하는 거라고 했다. 뜻하지 않은 횡재에 꾸벅 인사를 하고 서둘러 나온 후에야 작은 장미 다발을 고른 내가 여자에게는 안쓰럽게 보였을 지도 모른다고 짐작이 되었다. 얼굴이 붉어졌다.
책상 위의 중앙에는 컴퓨터가 놓여있고, 왼쪽에는 읽지 않은 책을, 오른 쪽에는 다시 읽고 싶은 책을 두곤한다. 다시 그 책 위에는 버려야 할 습작 원고와 교정해야 할 원고를 쌓아 두었는데 책상을 정리하다가 원고 밑에 가려져 있던 책을 보았다. 지난 해 크리스마스 즈음에 선물 받은 책이었는데 다시 읽자던 것이 그만 원고에 가려져 있어서 잊고 있었다. 비록 만난적은 없었지만 일전에 ‘e-book’을 받은 적도 있어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크리스 마스를 앞두고 동인지 까지 보내 주셨었다. 그 때가 연말이어서 제2차 대유행이 예고 되어 있었고, 경계 수위가 최고조 였던 시절에 우체국까지 가서 책을 보낸다는 것은 보통의 정성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작가의 수고로 값진 선물을 받았고, 살아가는 데 가장 귀한 가치가 무엇인지 새삼 느끼며 책을 다시 펼쳤다. 작가의 귀한 마음이 글에서도 빛나고 있었고, 깊고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진정성만이 사람이 사람에게 무릎을 꿇게 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시간을 되돌아 보면 1년 전 이즈음에는 이탈리아를 여행중이었다. 코비드가 세상에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던 시절이었고, 풍문처럼 떠도는 뉴스로는 중국의 어느 변방의 일이어서 그렇게 위협적이지도 않았었다. 10년만에 다시 본 로마와 바티칸은 골목과 골목이 만나는 곳마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거리를 걸으면 로마 사람이 보였고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나도 로마 시민이 된듯 싶었다. 오래된 유적 앞에서 시간의 흔적을 더듬던 기억도, 작은 골목에서 부딪쳤던 따뜻한 미소와 이유를 모르는 웃음 소리도 어제의 일쳐럼 생생하다.
시간이 지나도 남는 것은 그때 나누었던 따뜻한 눈길이었다. 그 눈길 만큼이나 벗꽃 나무 아래에서 양산을 들고 서 있던 젊은 엄마는 봄 보다 먼저 오는 설레임이다. 빛바랜 사진 속에서 젊은 엄마는 활짝 웃고 있지만 젊은 엄마를 보는 나이 든 아들의 가슴으로는 꽃잎이 뚝뚝 떨어진다. 그래서 봄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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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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