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행정부에는 문화부가 없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한국에도 문화체육관광부가 있고, 중국과 일본은 물론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브라질 핀란드 이스라엘… 대부분의 나라에는 문화 담당 행정부처가 있다. 심지어 이티오피아와 북한에도 문화성이 있다.
그런데 미국 내각의 15개 부처 중에 문화부는 없다. 그 부처들은 농무부, 상무부, 국방부, 교육부, 에너지부, 보건사회복지부, 국토안보부, 주택도시개발부, 내무부, 노동부, 국무부, 교통부, 재무부, 보훈부, 법무부이고, 이외에도 환경보호청, 중소기업청, 중앙정보국, 관리예산실, 무역대표부, 유엔대사, 경제자문의장, 대통령 비서실이 주요 내각부서로 꼽힌다.
인류의 삶과 공동체에서 문화예술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이 얼마나 큰지에 비추어보면 미국에 문화부가 없다는 사실은 참 놀랍고 이상한 일이다. 대신 그 비슷한 역할을 하는 연방기관이 있기는 하다. 국립예술기금(NEA)과 국립인문기금(NEH)이 그것이다. 하지만 내각의 주요 부서들과 견주어볼 때 이들의 기능과 위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고, 툭하면 예산삭감과 폐쇄 대상의 일순위에 놓이곤 한다.
미국의 식자층과 유력 일간지 문화비평가들은 새 행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연방 문화부의 창설을 희망하는 칼럼을 기고해왔다. 지난달에도 LA타임스의 마크 스웨드 음악평론가는 이를 강력히 주장하면서 문화부 장관 후보로는 클래식 분야에서 혁신을 주도해온 데보라 보다 뉴욕 필하모닉 회장과 웨인 브라운 미시건 오페라 회장을 추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이 염원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저 정치인들은 정치하느라 너무 바빠서 문화예술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는 존 F. 케네디가 친 문화적인 정책을 펼쳤고, 그 외 행정부에서 문화예술은 언제나 가장 뒷전이었다.
미국 정부가 문화부를 두지 않는 이유는 미국의 문화예술이 너무나 대중적이고 상업적이며 민주적이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 영화예술이 순수예술을 압도하는 상황, 다시 말해 ‘할리웃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역사적으로 특수층 전유물이었던 유럽 문화예술의 전통이 미국에는 아예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이 분야를 철저히 ‘시장의 원리’에 맡기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자국 문화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 관련부처를 설립하고 지원하는 데 비해 미국은 문화를 개인의 사적활동으로 보고 자유방임하는 것이다. 국민 스스로 문화 활동을 선택하고 즐기는 동안 국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정책이 따로 없는 문화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민간의 예술지원에 대해 굉장히 너그러운 세금혜택을 부여한다. 많은 재벌들이 예술기관에 거액을 기부하는 것이 그 때문으로, 정부 지원보다 민간의 지원이 훨씬 더 큰 나라가 미국이다.
반면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의 문화강국들은 예술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이 많게는 70%에 이를 정도로 공공 지원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반면 개인들의 후원은 훨씬 적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정부의 지원이 점차 줄어들면서 유럽 국가들도 미국식 민간 후원방식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심지어 미국에 사무실을 두고 직접 모금활동을 펼치기도 하는데 영국 테이트 뮤지엄이 만든 ‘테이트 아메리카 재단’이나 스페인의 ‘프라도 뮤지엄의 친구들’, 프랑스의 ‘루브르의 미국친구들’과 ‘오르세의 미국친구들’이 대표적이다. 이 기관들은 유럽 뮤지엄을 좋아하는 미국인들을 포섭해 해마다 수백만 달러씩의 후원금을 거둬간다.
민간의 후원은 예나 지금이나 문화예술의 융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그래도 미국에 연방 문화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이 가장 필요한 시기인지도 모른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분야가 문화예술부문이고, 일년 가까이 공연예술을 접하지 못해 피폐해진 국민들을 아우르며 위로할 수 있는 통합된 기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 한 줄의 시, 한 소절의 음악, 한 점의 그림을 마주했을 때 영혼이 고양되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바로 지난 20일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우리는 그런 경험을 했다. 샛노란 코트를 입고 단상에 오른 시인 어맨다 고먼이 낭랑한 목소리와 아름다운 손짓으로 시를 낭송하기 시작했을 때, 삼엄하고 황량하기만 했던 취임식장이 갑자기 환해지면서 반짝반짝 빛나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겐 그런 순간들이 절실하다. 인간은 정말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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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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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름다운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