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가주의 고위 정치인 두 명이 나파 밸리의 최고급 식당 ‘프렌치 런드리’에서 가진 럭서리 디너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고 곤욕을 치렀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런던 브리드 샌프란시스코 시장이 그 주인공들로, 뉴섬 주지사는 지난 11월6일, 브리드 시장은 바로 다음날인 7일에 각각 친지의 생일축하 디너에 참석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대중과 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두 사람이 가주 주민들과 시민들에게 철저한 방역의무를 요구해놓고 자기들은 가까이 붙어 앉아 회동했다는 것, 그리고 추수감사절에 함께 사는 가족 외에는 모이지 말라고 당부당부 해놓고 자기들은 3가족 이상이 모인 파티에 참석했다는 사실이다.
엄밀히 따지면 당시 나파 카운티에서는 실내와 실외 식당영업이 허용된 상태였으므로 이들이 보건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높은 잣대로 모범을 보여야할 공직자들이 돌아서서 위선적으로 처신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 사실이 보도된 후 뉴섬과 브리드는 즉각 사과하는 성명을 내고 잘못된 처신이었음을 인정했지만 이미 정치 이력에 큰 대미지를 입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사람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것은 이들이 갔던 식당이 공교롭게도 같은 ‘프렌치 런드리’(French Laundry)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나파 밸리 욘트빌에 있는 ‘프렌치 런드리’는 유명 셰프 토마스 켈러가 운영하는 미셸린 3스타 레스토랑이다. 켈러는 뉴욕에도 ‘퍼 세이’(Per Se)라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역시 미셸린 별 3개 식당이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하면, 미셸린 3스타는 전 세계에 135개밖에 없고 프랑스와 일본에 가장 많은 각각 29개, 미국에 두번째로 많은 14개가 있는데 그중 2개가 켈러의 식당인 것이다.
그런데 미셸린 별의 영예보다 더 ‘프렌치 런드리’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예약 불가능’의 신화다. 이 식당은 홀수 달의 첫날에 두달치 예약을 오픈하는데(예를 들어 7월1일에 9~10월분 오픈) 포털이 열리자마자 빛의 속도로 클릭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모든 테이블과 시간대가 부킹돼버린다. 온라인이 아니던 시절에는 그날 식당 앞에 여행가이드, 소믈리에, 콘시어주들이 줄 서있다가 예약을 도리해간다고 들었다. 부호 고객들을 위해 미리 선점해놓는 것이다.
이러니 보통 사람들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고, 나파 밸리 여행간 김에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은 아예 접는 게 좋다. ‘프렌치 런드리’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은데 가서 먹어본 사람은 드문 이유가 그 때문이다.
도대체 뭐가 그리 대단한지 메뉴를 한번 보자. 기본이 셰프 ‘테이스팅 메뉴’인데 일인당 350달러에 9코스를 서브한다. 재료를 업그레이드하면(트러플 첨가, 와규 비프 등) 훨씬 비싸지고, 여기에 와인 페어링까지 하면 두 사람 식사비용이 1,000달러는 족히 넘는다. 와인 페어링은 고객이 원하는 수준에 따라 일인당 75~1,000달러에 맞춰준다.
프라이빗 다이닝룸에서의 디너는 일인당 450달러, 12월19일로 예정된 ‘화이트 트러플과 캐비아 디너’는 일인당 1,200달러, 볼랭저 샴페인과 캐비아가 나오는 ‘뉴 이어스 이브 디너’는 800달러다. 모든 예약은 식사비용을 선 지불해야하고 취소는 안 된다.
어떤가? 수많은 사람들이 실직하고, 가게들이 문을 닫고, 빈곤층이 갈수록 늘어나는 팬데믹 위기에 심한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런데 뉴섬 주지사와 브리드 시장이 이와 비슷한 급의 다른 식당, 예를 들어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베누’(Benu)에 갔다고 치자. ‘베누’는 ‘프렌치 런드리’의 수셰프였던 한인 2세 코리 리가 2010년 창업한, 역시 미셸린 3스타에 세트 메뉴가 325달러인 최고급 식당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여기서 식사를 했어도 그렇게 집중적인 질타가 쏟아졌을지는 조금 의문이다. 그만큼 ‘프렌치 런드리’가 상징하는 바가 사람들의 분노를 증폭시켰을 것이란 얘기다.
한편 식당 이름이 왜 ‘세탁소’인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1907년 욘트빌 6400 워싱턴 스트릿에 위치한 건물을 사들인 프랑스인 부부가 증기세탁소를 열고 건물 이름을 ‘프렌치 런드리’라고 지었다. 이 건물을 1974년 단과 샐리 슈미트 부부가 매입해 식당을 오픈하면서 ‘프렌치 런드리’란 이름을 그대로 두었다. 주부였던 샐리 슈미트는 음식 비평가들로부터 크게 호평 받았고, 당시 북가주 일대에서 꽤 유명한 셰프가 되었다.
1992년 슈미트 부부가 은퇴하려고 건물을 내놓았을 때 한창 떠오르던 토마스 켈러가 아름다운 텃밭과 정원이 딸린 건물에 홀딱 반했다. 슈미트 부부 역시 다른 오퍼들을 물리치고 켈러가 2년 동안 60명의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올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1994년 자신의 첫 레스토랑을 오픈한 켈러는 오랜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프렌치 런드리’란 이름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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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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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민주당 엘리트, 정치인, 로비스트의 모임장소가 되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