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일 주말에 영화 ‘해밀턴’(Hamilton)이 디즈니플러스에서 개봉됐다. 이 영화는 초유의 대박신화를 쓴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라이브공연 필름으로, 2021년 10월 극장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자가격리 중인 미국인들을 위해 1년 앞당겨 스트리밍 개봉한 것이다.
남가주 팬들에게는 특별히 고마운 것이, 이 뮤지컬의 두 번째 LA 공연이 코로나 때문에 취소됐기 때문이다. 3월12일부터 할리웃 팬태지 극장에서 공연 예정이던 ‘해밀턴’은 개막 직전 캔슬됐고, 일정이 9월부터 내년 2월말까지로 재조정됐지만 보나마나 또 취소될 게 뻔하다.
‘해밀턴’은 미합중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먼지 쌓인 역사책에서 튀어나와 신명나는 랩으로 국가의 가치와 정의를 논하는 뮤지컬이다. 토니상 16개 부문에 후보지명돼 11개상을 수상했고, 그래미상과 퓰리처상을 비롯해 상이란 상은 거의 다 휩쓴 화제의 힙합 뮤지컬이다.
나는 지난 2017년 LA에 처음 왔을 때 관람했는데 사실을 말하자면 반 이상 알아듣지 못해 답답했던 기억이 있다. 미리 공부하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속사포같이 쏘아대는 랩 배틀과 가사들, 수많은 등장인물과 빠른 페이스를 따라가느라 적잖이 허둥댔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개봉소식이 반갑다. 공연을 다시 한번 찬찬히 감상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알렉산더 해밀턴(1755~1804)은 미합중국의 헌법 제정과 재무구조의 기초를 확립한 초대 재무부장관, 대통령이 아닌데도 10달러지폐에 얼굴이 새겨진 역사적 인물이다. 하지만 뮤지컬 ‘해밀턴’이 각광받는 이유는 그가 단지 대단해서만은 아니다.
모두 백인들인 건국의 아버지들을 전부 유색인종으로 캐스팅한 것은 놀라운 게임의 반전이었다. 해밀턴은 물론이고 조지 워싱턴(초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3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4대 대통령), 아론 버(3대 부통령)와 주변인물들을 흑인, 라티노, 아시안이 맡아 노래한다.
뮤지컬을 쓰고 작곡하고 주연한 린-마누엘 미란다는 “우리의 배역은 지금 현재 미국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오늘의 미국이 들려주는 과거 미국의 이야기”, 244년전 백인 이민자들이 시작했지만 지금은 다양한 인종이 함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 미국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해밀턴 스토리를 ‘원조 이민자의 이야기’로 부각시킨 점이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모두 부유층 출신이었던 것과 달리 해밀턴은 카리브해의 작은 섬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지극히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러다 독립전쟁에서 조지 워싱턴의 최측근 참모로 활약한 후 변호사가 되고 정계에 진출, 초대 재무장관으로 임명되는 등 순전히 자수성가로 ‘건국의 아버지’ 대열에 오른다.
미란다는 그 자신이 카리브해 푸에르토리코에서 이주해온 이민가족 출신으로, 해밀턴을 오늘날 수많은 미국인 이민자의 원조, 이민자의 영웅으로 묘사하는 데 성공했다.
이 뮤지컬에서 ‘그것이 일어나는 방’(The Room Where It Happens)이란 노래가 나온다. 46개나 되는 넘버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곡이다. 그런데 잠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제목 아닌가?
맞다. 바로 얼마 전 출간된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제목이 ‘그것이 일어난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이다. 볼턴이 뮤지컬에서 차용했는데 제목은 같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뮤지컬에서 ‘그것이 일어나는 방’은 미국의 미래를 결정지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만찬을 노래한다. 반면 볼턴의 책 제목은 미국의 미래를 망쳐놓은 역사상 가장 무능한 트럼프 행정부의 부정과 부패의 현장을 고발하고 있다.
뮤지컬에서 노래하는 ‘그 방’은 1790년 6월20일 토머스 제퍼슨의 자택에서 열린 만찬을 말한다. 이 자리에서 오랜 정적인 재무장관 해밀턴과 국무장관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 등은 미국을 조각한 중요한 두가지 협상(최초의 중앙은행 설립과 수도의 워싱턴 DC 결정)에 타협한다. 노래는 해밀턴을 시기하는 아론 버가 이런 정치담합이 이루어지는 ‘그 방’ 즉 이너서클에 자신도 끼고 싶다며 안달하고 한탄하는 내용이다.
영화 ‘해밀턴’의 개봉은 더 이상 시의적절할 수 없다. 전국에서 인종차별종식 운동이 한창이고 역사바로세우기가 진행되는 한편, 이민자 특히 아시안에 대한 공격이 줄을 잇고 있다. 바로 그 독립기념일 주말에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모어 산에서 인종적 문화적 분열을 조장하는 연설을 쏟아냈다.
누가 미국의 주인인가? 누가 미국의 역사를 만들어 가나?
‘해밀턴’은 다음과 같은 노래로 막을 내린다. “누가 살고(Who lives), 누가 죽고(Who dies), 누가 당신의 이야기를 전하는가?(Who tells your story?)”
여러 세대가 지난 후 우리의 이야기를 누가 어떻게 전할 것인지,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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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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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산다는 것은 특권이였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도 부러워했고 전 세계인도 미국을 선망했다. 헌데 지금은 오히려 한국에서 미국에 사는 나를 걱정하고 염려해준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들불처럼 걷잡을수 없이 퍼져가는 와중에 바이러스에 걸리면 죽을 걱정보다 병원비 걱정이 앞서는 현실 그래서 많은 환자들이 치료도 기피하고 집에서 끙끙 앓는 현실. 더 보태서 트럼프의 백인우월정책으로 애꿏은 한인들이 봉변을 당하는 지금 걱정된다
‘그것이 일어난 방’ - 서울특별시장 집무실 뒷방 침실 이야기 하시는 줄 알았네. 피해자는 살고, 가해자는 죽고 특검이 이야기를 전해줘야지...